내 이름은 강순희. 강 씨 집안은 뻥이 세고 증오심이 강하다며 딸들은 순하게 살라고 순자 돌림으로 이름을 지었다. 순진, 순례, 수철(아들), 순희, 순자, 순미. 부모님이 바라는 대로 딸들은 대체로 순하게 살았는데 명이 짧았다. 언니 둘 다 오십을 넘기지 못했다. 막냇동생 순미는 44살에 죽고, 올해 72살인 순자만 살아있다.
중간에 아들이 한 명 있는데, 아들은 빼어나게 강한 철이 되라고 강수철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부모님 욕심대로 강했다. 바람도 신나게 피웠고, 누나와 동생을 잡아 족쳤다. 젊을 때 사람을 한 명 죽였다는데, 그건 본인이 묻고 가면 아무도 모를 일인데, 작년에 올케언니한테 말했단다. 치매로 정신이 오락가락해 떠든 거니까 진짜인지 뻥인지 모른다. 오빠 성격을 봐서는 그러고도 남을 것 같다.
친가 쪽이든 외가 쪽이든 장사해서 성공한 사람도 없고, 조상 중에 벼슬을 한 사람도 없다고 한다. 성격만 지랄 같고 뒤끝이 있어 별것도 아닌 일을 쌓고 쌓아서 복수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며 이를 박박 갈았다.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것 같다. 친할아버지가 그랬고 외삼촌이 그렇다. 오빠가 똑같고 딸 중엔 내가 닮았다. 닮을 수밖에 없다. 씨와 밭은 못 속이니까.
순자도 성질이 지랄이다. 쓸데없는 욕심이 많고 공짜만 바란다. 나처럼 망치를 휘둘리지는 않으니까 나보다는 훨씬 제정신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랑인지 자기를 만만히 보지 말라는 뜻인지는 몰라도 저번에 남편과 말다툼을 하다가 부엌칼을 가져와 목에 대고 죽여버린다고 했단다. 한 번만 그런 게 아니고 사는 동안 몇 번 그랬다고 한다.
그리고 말이야? 나랑 시시비비를 따지며 싸울 수도 있지 않은가? 집에서든 길거리에서든 길길이 뛰다가 매몰차게 가버리는 불같은 성질을 갖고 있다. 또 한 가지 생각할수록 뻔뻔한 게 있다. 글쎄, 밥값을 낼 줄 모른다. 한번 내가 냈으면 다음엔 자기가 내야 하는데, 요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지갑을 꺼내지 않는다. 나쁜 년. 두 번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을 하다가도
“언니? 아픈 데는 어때? 밥은 뭐 해 잡수셨어? 언니? 보고 싶어.” 하고 전화가 오면 마음이 약해져서 다시 만나서 내가 먼저 밥을 산다.
“언니 잘 먹었어. 다음엔 내가 살게.”
그러고선 두 달 동안 언니? 무릎이 아파서, 언니? 교회에서 성경 공부하느라고, 전화만 하고선 오질 않는다. 싸가지 없는 년. 내가 다섯 번을 사면 순자는 한번 산다. 전화가 와도 받지 말아야겠다.
나는 겉으론 얌전한 고양이 같지만 속엔 망치를 품는 무서운 성격의 소유자다.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지만 나는 나를 잘 안다. 정당방위였을 뿐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 속담대로일 뿐이다. 이런 나도 절대 지키는 게 있는데 가족한테는 망치를 품은 적 없다. 그러나 순자는 남한테는 못 그러면서 제 남편이나 나한테 성질을 내고 지랄이다. 제부한테 칼을 들이댔다고 해서 너도 피는 못 속인다고 했다. 하나밖에 안 남은 자매지만 그리 살갑지 않다.
오빠는 정신이 헐거워져 고향에서 꼼짝 못 하고 산다. 한 해에 한두 번 가다가 이제는 전화만 하고 안 간다. 먼데 사는 친척은 남보다 나을 것도 없거니와 나 살기도 벅차다. 오면 오고 가면 가는 순자는 가끔 만났었는데, 제부가 아파서 안부 전화만 하고 있다.
보름달도 기울기 마련, 계절도 변하기 마련, 색도 바래기 마련이다. 나도 이제 늙어서 성질이 가라앉았고 살인 욕구는 부유하지 않고 지난날을 회상한다. 뭐니 뭐니 해도 도서관 다닐 때가 제일 찬란했던 시절이었다. 5년만 있으면 팔십인데 뭘 바라겠는가. 할 일도 딱히 없고 하고픈 것도 별로 없다. 복수심에 성질 꼿꼿했던 지난 일들을 느지막하게 추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