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쪽은 딸 다섯, 아들은 한 명. 그러니까 언니가 둘, 오빠가 하나, 여동생이 둘이다. 친정엄마는 남아선호 사상이 너무 심해 아들만 바라보고 딸들은 굶든지 먹든지 관심이 없었다. 하다못해 엄마는 아들에게 딸을 이간질해, 오빠는 여동생은 물론 누나에게도 낫을 들고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우리는 친정에 애정도 미련도 없었고 막내 여동생 순미는 고향 쪽 하늘은 보기도 싫다고 했다. 순미는 내게 친구였다. 취향, 취미가 맞았다. 꽃과 동물을 좋아하고, 동생도 나도 친구가 별로 없다는 것이 서로 의지하게 된 이유기도 했다. 순미는 구두쇠 남편이랑 갈등이 많았고, 나는 헤픈 남편이랑 사니 마니 하다가 말게 되어서 순미를 더 의지하게 되었다. 순미는 탤런트 김희혜를 닮았고, 김자영처럼 옷을 입었다. 진심으로 나를 걱정했고 이틀이 멀다고 한두 시간씩 전화 통화를 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한동네에서 살아 일주일에 몇 번씩 만났고, 순미는 아들 둘, 나는 딸과 아들 둘을 데리고 들로 산으로 놀러 다녔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두 시간 거리에 살았어도 한 달에 한두 번은 만났다.
다시 겨울이 온 도서관 종합자료실 데스크는 사람들이 오고 가는 유리문 밖이 바로 계단이라 여닫을 때마다 문 크기만큼 찬바람이 들어왔다. 봄이 오면 야간연장 기간이 만료돼 새로 직원을 뽑는다고 한다. 지금 일하는 야간연장은 삼 개월 후에나 이력서를 넣을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골고루 주기 위한 시의 방침이었다. 다니고 있는 직원에겐 안 좋은 일이지만 나 같은 사람에겐 기회가 주어진다. 임시직 주간보다 기간제 야간연장 월급이 많았다. 이런 좋은 기회를 노리며, 2000년 겨울을 보내던 중 순미의 폐암은 재발했다. 2001년 봄, 병원에서는 치료 방법이 없다고 했다. 나는 야간연장 취업을 미뤘다. 순미는 마흔이었다.
동생은 살든지 죽든지 마지막 방법으로 자연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혼자는 들어갈 수 없고, 첫째 동생 순자와 내가 산속으로 같이 가기로 했다. 셋이서 이불 보따리를 싸고, 잡곡 한 통과 수박 한 통, 믹서기를 들고, 전라도 깊은 산속 민박집으로 향했다. 하루에 네 번 버스가 다니는 산 끝 종점. 세 여자는 침울한 낯빛이었다. 산속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들어서니 목백일홍 가로수가 길을 안내해 줬다. 꽃은 피어 있지 않았다. 민박집 앞으로 계곡이 흐르고 보라색 벌개미취꽃이 막 피고 있었다.
여자 셋은 아침, 점심, 저녁 손을 잡고 울면서 기도를 했고, 아침, 점심, 저녁 잡곡밥을 해 순미 밥은 믹서기에 갈았다. 수박도 입에 걸리지 않게 곱게 갈았다. 입안이 다 헌 순미는 씹어 먹지 못했다, 아침을 먹고 비탈길을 걸어 약수 물을 받아 산속에 돗자리를 펴 같이 심호흡을 했다. 내려오면서 약초를 뜯어 밥을 해 먹고, 오후에도 산속에 앉아 다람쥐를 만나고, 산 뽕잎과 솔잎을 따 저녁밥을 지었다. 밤에는 계곡 물길 따라 걸으며 자연에게 의지했고, 모든 책임을 하늘에게 떠넘겼다.
도서관 취업을 못 한 게 그리 아쉽지 않았다. 불치병이 기적적으로 낫길 바랐다. 목백일홍 도서관 관장님도 수술을 마치고 항암치료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명자나무엔 꽃이 폈을 것이고, 뜰에 꽃씨를 뿌리지 못했지만, 관장님도 잘 이겨내길 바랐다. 종교인은 아니지만, 세상에서 할 수 없는 일은 하늘과 자연에 맡길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나중에 관장님이 어떻게 됐는지 소식을 들을 수 없었지만, 도서관으로 복귀를 못 했단다.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무서워서 알고 싶지 않았다.
아침 일찍부터 산속 민박집 느릅나무에 까마귀가 떼를 지어 앉아있었다. 몹시 시끄러웠다. 순미는 저를 잡으러 온 저승사자 소리 같다고 했다. 까마귀는 길조라고 위로했지만 섬찟했다. 한 달을 산나물밥과 산나물을 생으로 먹었다. 특히 산 뽕잎은 세 여자의 치아를 까맣게 물들였다. 서로 이빨을 보며 까르르 웃었다. 순자는 똥도 색깔이 무섭다고 했다. 셋은 손바닥을 치며 방바닥을 치며 웃었다. 나는 설사를 했다. 순미는 피가 섞여 나온다고 했다. 그렇게 진한 색 여름이 왔고, 목백일홍꽃이 오글오글 피었다. 순미는 선홍색 꽃이 예쁘다며 살아나면 집 마당에 목백일홍 나무를 심고 싶다 하면서 언니? 내가 살 수 있을까? 했다. 벌개미취꽃이 물가로 한가득 피었다. 그래, 벌개미취꽃도 심자? 꽃을 물끄러미 보던 순미는 보라색은 차갑고 고독해 보인다고 했다.
장맛비가 내렸다. 한 달이 또 흘렀다. 대추꽃이 떨어지더니 대추가 콩알만 하게 달렸다. 순자는 남편 반찬을 해주고 온다고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로 가고, 나는 애들이 보고 싶어 두 주일에 한 번씩 올라왔다. 순미는 희망이 안 보인다고 서울로 올라가고 싶어 했다. 끈적이고 끈질긴 병이 두 달 만에 차도를 볼 수 없었지만, 순미는 삶을 놓아버렸다.
우린 보따리를 싸 들고 각자 제자리로 돌아왔다. 올라오는 길에 목백일홍꽃은 두 팔을 들어 손을 흔들었다. 선홍색으로 연분홍색으로 꽃분홍색으로 흔들어 댔다. 여자 셋 얼굴빛은 더 칙칙하고 탁해져 있었다. 순미 얼굴색은 묶은 된장 색, 이빨은 셋 다 물에 푼 먹물색이었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 멀긴 왜 이렇게 멀어…. 덥긴 왜 이리 숨 막히게 덥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