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백일홍 도서관 04

by 산너머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지만 그럴 수 없다. 책을 들고 공원에 나가면 경치를 보느라 책을 펼치기만 할 뿐 색색으로 익어가는 나뭇잎을 보느라 책을 닫게 되는 계절이 가을이다.

도서관도 사실 비수기가 되고 이런 때 책을 옮겨야 하는 시기가 된다. 그해 내내 들어온 신착 도서 때문에 서가는 비좁아졌다. 아래위로 책을 빼고 옮기다가 새 책장이 들어오면서 전체 도서를 옮겨야 했다.

도서관 일 중에 육체적으로 제일 힘든 일이 나뭇잎이 색동저고리로 갈아입는 가을에 하게 되었다. 밖은 비바람을 견뎌낸 열매가 결실을 보는 10월, 종합자료실도 한 해 동안 다람쥐가 도토리를 열심히 모은 것처럼 서가 구멍은 책 넣을 곳이 없다. 공간을 확보해 적절하게 분배해야 한다.

둘씩 한 조가 되어 오전에 한 시간씩 돌아가며 책을 옮겼다. 오후엔 이용자가 많아 오후 시간은 피한다. 한 달이 걸렸다. 누군 몸살로 결근을 하고 누군 입원을 했다. 나 역시 뼈마디가 어디 붙었는지 알 정도로 빼 골이 쑤시지만, 결근 없이 출근했다. 나는 마른 편이다. 가리는 음식은 없지만, 소식하고 많이 움직이는 편이다. 보기엔 제일 아프게 생겼지만, 아파도 겉으로 표시를 내지 않는다.

전체 도서는 다 같이 옮기지만 배열 맡은 내 서가는 책을 찾기 좋고 보기 좋게 다시 옮기면서 정리를 해야 한다. 두 달 만에 종합자료실 책은 제자리에 옮겨 앉아 책과 책 사이가 여유 있고 깔끔해졌다.


자료실 책은 열한 가지로 분류가 돼 있다. 0번부터 999번까지. 심리철학, 사회, 과학, 취미, 문학, 여행, 원서 등등…. 문학이 있는 800번 대 서가가 내 담당이다. 책도 많고 제일 많이 대출되는 서가라 힘이 더 들지만, 문학을 좋아해 맡겠다고 했다. 솔선수범이라기보다는 문학책을 들여다보면 설레기 때문이다.

한 사람당 다섯 권 대출을 할 수 있는데, 언제나 문학으로 꽉 채운다. 심리나 철학책을 보면 이렇게 비워라. 저렇게 마음을 다 잡아라 해서 거의 안 본다. 몰라서 실천을 못 하는 게 아니다. 그런 부류의 책을 보고 있으면 불안하고 위축이 된다. 대출한 책 다섯 권을 골고루 본다. 한 권 다 읽고 다른 책을 보는 게 아니고 몇십 페이지씩 보다가 맘에 들면 끝까지 보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반납한다.

사람마다 취미가 다르듯, 책도 취향이 다 다르다. 살인사건 책만 읽는 사람, 심리 책만 읽거나, 무언가를 배우는 쪽을 좋아하거나 참 다양하다. 문학도 수필, 시, 추리소설, 한국소설, 외국 소설 여러 가지다. 난 수필을 주로 읽었는데 이젠 소설을 읽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 성장소설, 자연에 관한 이야기를 환장하게 좋아해서 밤을 새운다. 특히 외국 성장소설은 그 나라의 역사와 경제와 환경을 알 수 있어 다채롭고 흥미진진하다.


목백일홍 도서관 관장님을 자주 보게 되는 장소가 도서관 뜰이었다. 다양한 꽃이나 나무가 없어서 정원이라 할 수 없는 조촐한 뜰이다. 자주 뜰을 거닐며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샌가 관장님이 같이 들여다보고 있다

“쑥부쟁이가 국화과예요. 하얀색 얘도요.” 꽃을 앞에 두고 서로 인사를 시킨다.

관장님은 사람들이 자꾸 화단에 들어간다고 가시가 있는 명자나무를 심어야겠다고 한다.

“알아요. 봄에 피는 명자나무꽃.”

“어, 아시는군요. 명자를?”

고향 친구 이름을 부르듯 명자를 부르면서 같이 화다닥 웃었다.


빈 뜰만 보이면 저렴한 꽃모종을 사고, 추억의 고향 꽃씨를 어디든 뿌렸다. 식당에서 일할 때도 꽃을 심었고, 공장에서 조립을 하면서도 사초류, 망초, 민들레가 엉켜 있는 나무로 짠 공장 화단에 마거릿을 심고, 백일홍, 채송화, 과꽃 씨를 뿌리고, 수레국화가 뭔지도 모르고 꽃봉투 사진이 보라색 꽃이라 수레국화 씨를 심었다. 현실 회피 겸, 도피 겸, 꽃 가꾸기는 현실의 나를 벗어나서 살아있는 기쁨과 희망감을 줬다.


관장님이 명자나무를 심는다고 할 때 봄이 되면 명자나무 뒤에 꽃씨를 뿌리겠다는 꿈을 꾸었다. 늦가을에 관장님은 명자나무를 심었다. 가을에 심어도 얼어 죽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봄이 오기 전에 목백일홍 도서관을 그만 다녀야 했다. 계획처럼 야간연장 기간제로 들어갈 수 없었다. 관장님은 안 좋은 병이 생겨 입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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