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와~! 목백일홍꽃이다.”
꽃잎이 오글오글한 목백일홍꽃이 여름이 막 온 도서관 건물 모서리에 피어있었다. 일 미터 높이로 올린 화강암 화단에 목백일홍 나무가 있었는데, 몰랐다가 꽃이 피니 알아본 것이다. 봉긋한 둔덕에 예쁘게 균형 잡힌 한그루의 꽃나무. 회색 건물에 찐 분홍 조명을 쏜 듯 칙칙한 건물이 밑동부터 3층 높이까지 환하다.
“목백일홍꽃이 피었네요.”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안내대 반장님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꽃이 어쨌다고? 의아한 표정이다.
“아, 안녕하세요?”
아침부터 바쁜데 꽃이 뭐라고. 원래 있던 자리에 여름이라 꽃이 피었는데, 나만 감탄하는 감정이 뭐라고. 순간 쑥스러워 얼른 2층 계단을 올라가 창가에 서서 창밖을 내다보니 목백일홍 자태가 가까워져 더 자세히 보였다. 그래, 오늘부터 여긴 목백일홍 도서관이다. 나 혼자 정해 놓고 가볍게 종합자료실 문을 열었다.
6월부터 낮에 근무하는 직원이 새로 들어왔다. 여름엔 도서관이 성수기다. 더우니 바깥 활동이 불편해지고 학생들 방학 기간이라 다른 계절보다 서너 배 바빠진다. 새로 들어온 임시직 여직원은 취업 조건이 나와 비슷해서 도서관 일을 더 알려주고 싶고 친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친해졌다. 텃새와의 무거웠던 오전 시간이 가뿐해지고 출근하는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근데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는지, 어깨너머를 보고 있는지 헷갈렸다. 어떤 직원이 지나가는 소리로 눈이 이상하다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도서관 일을 열 번을 물어봐도 쉽게 알려주었다. 잘 가르쳐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텃새에게 받은 불공평한 일들이 봄꽃 잎처럼 사라졌다. 여름 내내 백일동안 핀다는 목백일홍꽃이 도서관 앞에 도착해 있지 않은가? 아무렴.
도서관은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그래서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을 손님도 아니고, 고객님도 아니고, 이용자라고 부른다, 겨울엔 더운물이 나오고 여름엔 층마다 시원한 정수기가 있다. 겨울엔 난로처럼 따듯하고 여름엔 에어컨이 산들바람이다. 아침 출근 시간에 같이 출근하고 퇴근 시간에 맞춰 도서관을 나가도 누가 뭐라 할 수도 없거니와, 눈치를 줘도 안 된다. 다만 조용해야 하고 도서관 이용 규칙은 지켜야 한다,
다리 올리고 대놓고 자면 안 된다(신발 벗고 코를 골고 잠). 머리를 감으면 안 되고(감는 사람이 있음), 자료실 안에서 잡담이나 전화 통화는 나가서 해야 한다. 애정행각도 금물이다(껴안고 있는 젊은이들이 꽤 많음). 주식은 물론 간식을 먹어도 안 된다(몰래 먹으면 뭐….). 이 정도. 더 있나? 이 정도만 지켜주면 시립도서관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아? 참! 책을 훼손하거나 훔쳐 가면 안 된다,
계절 중에 제일 바쁜 여름철엔 자료실마다 비치한 소파나 책상에 빈자리가 없다. 책은 서가에서 나와 아무 데나 누워있고 똑바로 세워놔도 금방 흐트러져 있다. 이용자들은 끝도 없이 대출과 반납과 도서관 이용하는 문의로 종합자료실 데스크는 분주하다. 그중 자료실에서 제일 인기 만발인 코너가 있다. 따로 분리된 서가. 바로 ‘신착도서’ 코너.
도서관 자료실 직원으로 유일하게 혜택을 먼저 받는 게 있는데, 방금 구운 새 책이 들어오면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새 책을 잡아 대출하면 책에선 방금 구운 빵 냄새가 난다. 책장 넘기는 손맛이 다르다. 아무도 안 쓴 물건을 만지는 그 신선함. 생각지도 않은 선물을 받은 것 같다. 이용자들도 새 책을 대출하면 꽃 선물 받은 것처럼 두 손으로 받아 품에 안거나 흠이 날까 조심스럽게 가방에 넣으면서 감사합니다, 향기롭게 인사를 한다. 나도 뿌듯해져 한 톤 높여 맑은 인사말이 나간다.
새로 들어온 직원은 말이 많은 편이었다. 일보다는 사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고 나는 들어주고 그러냐고 공감하는 척했다. 텃새처럼 투명 인간 취급당하기 싫었고 나랑 안 맞는다고 투명 인간 취급하기도 불편했다.
별난 얘기할 때 두 눈동자는 더 엇갈리게 허공을 봤다. 별난 이야기는 남자 이야기였다. 이 여직원 이름을 ‘눈동자’라 하겠다. 남자를 일회용으로 만나는 듯했다. 만나다가 맘에 안 들면 금방 헤어지는데, 이럴 때마다 기분이 더러워 복수한다고 한다. ‘나처럼 복수하는데 눈이 먼 여자가 또 있네 ‘ 하루에 수십 번씩 전화를 걸었다가 끊고 걸었다가 말도 안 하고 끊는다나. 어쩐지 출근할 때 도서관 입구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있는 걸 여러 번 본 적 있었다. 핸드폰이 있는데, 왜 공중전화로 하지? 했었다. 눈동자는 내게 솔직하게 말했다. 요즘 만나다가 헤어진 남자가 있는데, 엿 먹으라고 전화를 수시로 하고 그냥 끊는단다.
“헤어졌으면 그만이지 그렇게 하면 문제가 되지 않나요?”
눈동자는 눈을 치켜 허공을 보며 니가 뭘 알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대나무 자를 들고 다니며 책 꽂아주는 남자 직원에게 밥을 사달라고 했단다. 사 준다고 했다며 나보고 같이 가서 비싼 거 먹자고 했다.
“아뇨, 전 그런 건 싫어요. 그러면 안 될 것 같은데….”
눈동자는 나를 3초간 빗겨 보더니 뭘 그리 내숭을 떨어 하는 것 같았다. 눈동자가 남자 직원을 벗겨 먹든 벗기든 내 알 바 아니지만 끼고 싶지 않았다.
그 뒤부터 이른 아침이든 늦은 밤이든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받으면 끊고 받으면 아무 소리도 안 하고 숨소리만 났다. 섬찟했다. 말 없는 전화는 열흘간 계속 이어졌다. 처음엔 눈동자일 거란 생각조차 안 했다. 바쁜 여름내 별 탈 없이 의지하며 일을 했는데…. 딸각딸각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눈동자 이 여자인 게 틀림없었다.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친구는 이건 범죄라며 경찰서에 신고하자고 했지만 이런 일로 경찰서에 드나들기도 골치 아프고 증거도 없었다. 고심 끝에 친구가 눈동자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
“눈/ 동/ 자? 전화 걸었다가 끊고 했지? 한 번만 더 걸면 스토커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 알아들었어?”
얼굴에 가면을 쓴 뻔뻔한 인간이 여기 있었다. 눈동자는 나를 피해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했다. 양심을 삶아 먹었나 보다. 내게 변명이라도 대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려고 했다. 어디서 어떻게 양심 없이 살아왔는지 모를 인간이기에, 도서관을 나가면 길거리에 숱하게 지나다니는 하찮은 남일뿐이려니 하면서 나도 같이 가면을 쓰고 대했다.
텃새에게 응징하려 했던 일을 눈동자에게 해 주기로 했다. 포장한 망치는 신발장에 있었고 현장실습도 여러 번 했으니 그대로 실천하면 될 것이다. 텃새에게 실행하려고 할 때는 늦봄이었는데, 늦여름에 하게 되었다.
시립 도서관들은 대체로 교통이 안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목백일홍 도서관도 지하철을 타려면 으슥한 골목으로 지나가야 지름길이 나온다, 눈동자는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비 예보가 있는 날엔 다시 망치를 가방에 넣고 다녔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을 기다렸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고 우산을 쓰고 다니느라 시야가 좁아지고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다니기 때문에 다른데 신경 쓰지 않는다.
이번엔 옷도 준비했다. 눈에 띄지 않은 검은색 아들 잠바다. 왜소해 보이지 않으려고 박스 티도 속에 입고 바지도 헐렁한 무채색을 입었다.
이번엔 커다란 검은색 우산을 쓰고 지하철 타러 가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 화단에 자주달개비꽃이 활짝 피었다. 빗방울이 미끄러져 자주색 잉크가 떨어질 것 같다. 담장이 높은 집과 집 사이 좁고 어둑한 귀퉁이에 서서 왼손에 우산을 들고, 오른손에 망치를 꺼내 뒤로 감췄다.
몇 분 후 눈동자가 바쁜 걸음으로 우산을 받치고 온다. 나보다 키가 커서 머리통이 보였다. 마침 전화 통화를 하느라 다른 데 보지도 않는다. 잘됐다. 너의 운명이다. 눈동자 뒤로 바짝 붙어 망치를 휘둘러 뒤통수를 갈겼다. 빡! 철퍼덕. 영화에서 보면 소리를 지르고, 쓰러지면서 뒤를 돌아보던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논바닥에 세워 놓은 볏단 쓰러지듯이 힘없이 앞으로 풀썩 넘어졌다. 꼼짝하지 않는다. 핸드백을 뒤져 지갑을 뺐다. 떨어진 핸드폰은 집어 들고 뒤돌아 우산을 푹 쓰고 빠르게 오른쪽 골목으로 틀었다. 까만 비닐봉지에 망치와 면장갑을 넣고 반대편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마침 버스가 한 대 도착했다. 어디로 가는 버스인지도 모르지민 바로 올라탔다. 몇 정거장을 지나 너무 으슥하지 않는 정류장에 내렸다. 두어 번 와 본 곳이다. 비는 계속 오고 있다.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렸다가 볼일 보러 가는 척 침착하게 탔다. 시내에 있는 가끔 혼자 가는 바지락 칼국수 집에 가려는 계획이다. 혹시 오늘 내 알리바이를 대려면 퇴근 후 칼국수 먹으러 왔다는 증거를 만들어야 했다.
인적 없는 건물 사이로 들어가 우산을 푹 뒤집어쓰고 망치에 씌운 비닐과 신문지를 벗겨 검정 비닐봉지에 다시 넣고, 돈을 꺼낸 (버스 안에서 돈을 꺼내 내 지갑에 넣었음) 지갑도 봉지에 넣고, 공기를 빼가며 돌돌 말아 꽁꽁 묶었다. 핸드폰은 시멘트 바닥에 패대기를 쳤더니 부서졌다. 몇 번 패대기를 치고 물 빠져나가는 하수구에 버렸다. 버스 정류장으로 다시 와서 쓰레기통에 비닐봉지를 버렸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라 쓰레기통은 거의 다 찼다. 내일 안으로 수거해 쓰레기 매립장으로 가겠지.
칼국수 식당으로 들어왔다. 뒤죽박죽인 가방을 정리했다. 칼국수를 겉절이랑 먹었다. 맛이 있을 리 없다. 그냥 맛있는 척 먹었다. 삶은 언제나 척하면서 사는 것이다. 싫어도 좋은 척, 좋으면 더 좋은 척, 미워도 좋아하는 척, 지겨워도 좋은 척. 척척하며 사는 일이 잘 살아내는 것이다.
시내에서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타니 차창 밖은 어둠이 짙어가고 있었다. 망치는 원래 있던 신발장에 넣었다. 망치의 용도대로 못 박는 일에 쓸 것이다. 아까 망치를 씌운 비닐에 피가 묻어 있었나? 조금 묻어 있어서 섬찟하진 않았다. 죽을 정도로 친 것 같지 않고 정신만 잃은 것 같다. 내 목적은 살인이 아니고, 병신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목적이 달성될지는 두고 봐야겠다.
태연하게 출근했다. 사실은 잠이 안 와 수면제를 먹고 잤다. 수면제는 남편이 장사한다고 빚을 많이 져 집이 빚으로 넘어가면서 신경정신과에 가서 안정제와 수면제를 처방받았고 필요할 때 먹고 있었는데, 퍽치기를 했더니 잠이 안 와 먹고 잤다. 나는 마음이 약하고 인정을 잘하고 양심이 있는 여자다. 현실이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 뿐. 내 탓이 아니고 세상 탓이다. 내 팔자 탓이다.
눈동자는 출근을 안 했다. 사무실에서도 모른다고 한다. 나는 여느 때처럼 일했다. 도서관 일은 나의 천직이다. 누가 뭐래도 여길 그만두고 싶지 않다. 사람이 밉지, 일은 내 성질에 잘 맞는다.
며칠 만에 도서관 사무실로 눈동자 소식이 왔다고 한다. 머리를 다쳐 수술했고, 병원에 입원 중인데 왜 다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지갑이 없어져서 강도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생명엔 지장이 없고, 온전하게 정신이 돌아올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했다.
살면서 운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운이 좋네. 살면서 내 뜻대로 되는 게 없었다. 근데 내 뜻대로 되는 게 있네. 죽지 않았고, 강도로 위장하기 위해 지갑을 가져왔고, 이왕 가져왔으니 버리기 아까워 돈을 챙겼을 뿐이다. 돈은 이만 삼천 원이었다.
바쁜 여름은 갔다. 도서관을 환하게 비춰주던 목백일홍꽃도 시들고 초록 잎만 무성했다. 아침에 목백일홍꽃을 보면 밤새 잘 있었니? 했고, 점심 먹으러 갈 땐 너도 햇살 많이 먹어, 퇴근할 때는 뒤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어린이 자료실 책이 2층으로 반납되면 책을 들고 1층으로 갖다 주면서 계단에서 목백일홍꽃을 내다봤다. 이 나무 이름을 아무도 모른다. 사실 관심조차 없다. 세상엔 다양한 꽃이 있고, 사람도 여러 종류다. 눈동자 이름을 한동안 기억해 놨었는데, 지금은 모른다. 정신이 돌아왔다면 전화기에 대고 누군가에게 화풀이하고 있겠지. 버릇은 남 못 주니까. 이상하고 야릇한 이런 일은 도서관에서 일어난 사건 중 하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