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도서관 02

by 산너머

야간연장 출근 시간은 오후 한 시였다. 이용자가 많을 시간대지만 목백일홍 도서관하고 사뭇 달랐다. 데스크 턱이 낮았고, 데스크 바로 앞부터 탁자가 놓여 있었다. 이용자가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넓은 탁자가 두 줄로 자료실 창가 끝까지 놓여 있다니, 낯선 풍경이었다.

이용자 눈, 코, 입이 어디 붙었는지 다 보이고, 내 얼굴도 다 보이는 여기서 업무를 봐야 한다. 전화받기도 조심스럽고 가만히 앉아 있기도 그렇고 책을 보는 것도 곤란할 것 같고, 어떻게 이렇게 동선을 짰는지 답답하다. 하긴 실무자들, 즉 사무실 직원들이 현장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서 이렇게 탁자를 놓았을 것이다. 그래도 불만 없이 일해야 한다.


종합자료실 데스크 책상은 세 개. 컴퓨터도 책상에 한 대씩, 전화는 한 대가 놓여 있다. 입구 쪽 책상에 앉아 야간연장 첫 업무를 시작했다. 이용자들이 줄을 설 정도로 많았다. '했던 일이다. 도서관만 바뀌었을 뿐 똑같은 일이다.’ 속으로 나를 달래 가며 당황하지 않고 실수 없이 일 처리를 했다.

서가 정리할 시간이 되었다. 취미와 예술 도서가 담당 서가였다. 목장갑을 끼고 서가에 서서 청구기호를 보니 뒤죽박죽 엉망이었다. 아니 이렇게 배열을 안 보고 뭘 했을까? 어떻게 책을 찾을 것이며 이용자들이 책 찾기 힘들다고 민원을 안 넣었나? 으씨~ 힘들게 생겼다. 9월이라 에어컨이 돌아갔지만 땀이 흐를 정도로 책을 뺐다가 다시 넣기를 수천 번. 길 잃은 수천 권의 책을 제자리에 옮겨 주었다. 데스크에 앉아서 이용자 응대하는 시간과 서가 배열 시간이 한 시간씩 바뀌지만 한가한 밤에는 서가에 매달려서 책 정리를 했다. 종합자료실 직원들이 곁눈으로 쳐다봤다. 쓸데없는데 힘을 쓰고 신경을 쓰냐는 눈빛이었다.

“서가 배열 애쓰지 마세요.”

“책이 제자리에 없는데…. 이용자가 뭐라 안 하나요?”

“여긴 원래 그래서 그러려니 해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이상해 보여요.”

“그래요? 그렇군요.”

이상해 보이든지 말든지 사흘 동안 한 권도 틀리지 않게 청구기호를 맞췄고 책을 가지런하게 세워 놓았다. 오 일째 되던 날 오후 네 시쯤 처음으로 세 번째 데스크에 앉아서 숨을 돌리고 있는데,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책이 있는지 없는지 물어본다.

“검색대에서 검색하시면 됩니다.”

검색대를 알려 드렸다. 오른쪽 창가 쪽으로 자료검색대가 세대나 비어있었고 젊은 분이라 안내했고, 사실 책 검색은 본인이 하는 게 맞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맨날 핸드폰만 보고 놀기만 하면서 검색을 안 해줘?”

“검색대가 비어있어서 말씀드린 겁니다. 알았습니다. 책 제목 알려주시면 검색해 드리겠습니다.”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놀고만 있고 말이야!”

이용자는 이미 화가 나 있었다. 나는 이 도서관으로 출근한 지 며칠 안 됐고, 이 자리에 오늘 처음 앉았다. 억울했다. 그러나 이용자로선 그동안 직원들을 보니 놀기만 하는데 본인이 낸 세금이 빠져나간다고 생각하니 억울했나 보다. 나도 억울, 이용자도 억울.

“죄송합니다. 책 찾아드리겠습니다.”

얼른 서가로 뛰어가서 책을 찾아와 두 손으로 드렸다. 나보다 먼저 이 도서관 이 자리에서 일하던 사서들은 못 본 척이었다. 위로 한마디 없었다. 여긴 이런 곳이었다. 일하면 이상하고 일 안 하는 게 당연한 자리.

한동안 이 이용자는 나만 보면 눈을 부릅뜨더니 나중엔 데면데면해졌다. 못마땅해하는 눈길을 피하며 내 일만 했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일은 뭣도 아니다. 내가 잘못하지 않았기에 죄송하다는 말은 한 번만 하면 된다.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았다. 잘못하지 않았으면 한 번만, 잘못했으면 상대방이 풀릴 때까지 수없이 많이 하면서. 세월이 흘러 다시 떠올려봐도 너무 비굴하지 않았고 딱 적당했다.


코스모스꽃이 막 피던 9월이 지나갔다. 코스모스 도서관 기간제로 들어온 지 한 달이 가고 처연한 10월이 왔다. 출퇴근 발길은 가을의 중심부로 바삐 움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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