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황제인 양 떠받들고, 딸은 하인 취급하는 엄마가 미웠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꼼짝을 못 하는 나약하고 무능력한 사람이라 자식들은 아버지를 무시했다.
결혼한 큰언니는 산을 넘어 산길을 돌고 돌아 뒹골에 살았다. 큰언니가 어쩌다 친정에 오면 나와 동생들은 언니 그림자로 따라다녔다. 이틀 밤 자고 뒹골로 넘어간다고 하면 우린 부엌문에 매달려 눈물을 흘렸다. 언니는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또 올 텐데 울지 말라며 추수 지나면 언제든지 뒹골에 놀러 오라고 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동네 어귀를 지나 산 고개 쪽으로 가는 언니를 하염없이 바라봤고 언니도 몇 번씩 뒤돌아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언니를 쫓아가더니 언니 보따리를 잡아채 풀어보는 것이 아닌가. 언니는 두 손을 놓고 보따리를 뒤적이는 아버지를 힘없이 보고만 있었다. 엄마가 순진이 저년이 뭘 훔쳐 갔는지 모르니까 아버지보고 보따리를 뒤져보라고 한 것이다. 어린 우리는 너무 황당해 입을 벌리고 있는데, 오빠는 인삼을 와작와작 씹어 먹고 있다. 세상에나 기막혀라. 독종인 엄마나 야비한 아버지나 몸에 좋은 것이라면 뭐든 처먹는 오빠나 다 한통속이었다.
“셋 다 한 구덩이에 넣고 파묻어 버려야 돼!” 내가 소리를 질러댔다.
아니나 다를까 오빠는 먹고 있던 인삼을 집어던지고 우악스러운 손이 날아왔다. 앞이 노래지더니 하늘이 뱅글뱅글 돌아 쓰러졌다. 동생들은 언니 언니 하면서 붙잡고 울었던 건 기억나는데, 엄마는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바른 소리로 따지는 딸 하나쯤 죽어도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
인삼 철이 되면 엄마는 인삼을 두 채씩 사서 오빠만 먹였다. 귀한 먹거리나 몸에 좋은 것이 생기면 오빠는 침을 발라버렸다. 오빠는 황소를 때려잡을 정도로 힘이 장사였지만 딸들은 하나같이 약했다. 보리밥에 간장이 반찬이고 고추장에 비빈 푸성귀만 겨우 먹었다. 꽁보리밥이라도 눈칫밥을 먹지 않았으면 이리 약해지지 않는다. 엄마의 편애와 잔소리, 오빠의 폭력, 아버지의 무심함으로 인해 딸들은 마음도 몸도 밭에서 솎아 온 푸성귀처럼 히마리가 없었다.
도시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오빠는 주말이면 집으로 왔다. 오빠는 별채 방이 따로 있었는데 주중에 비어있는 방을 내가 쓰겠다고 했더니 “기집애가 어딜 부정 타게 감히 남자 방을!” 그러면서 못쓰게 했다. 아버지만 새로 지은 별채를 쓸 수 있었다. 오빠가 없을 때 그 방에서 뒷문을 열고 공방 대를 피우는 모습을 자주 봤는데, 아버지는 그 시간을 즐기셨다.
허름한 초가집은 봉당을 올라 부엌, 대청마루, 안방, 작은방이 일자로 놓여있었다. 볼품없는 흙벽으로 지은 작은 집이었다. 어릴 때 안방은 부모님, 나, 언니들, 동생들이 한방에서 자고 작은 방은 오빠 방이었다. 덩치들이 커지면서 안방에 다 잘 수가 없었다.
싸리문이 달린 돌담을 없애고 흙벽돌로 ㄱ자형 별채를 지었다. 안방 크기만 한 방 하나, 작은방만 한 광, 광 옆으로 굽어지게 외양간을 새로 들였다. 언니들이 작은 방으로 옮겨지고, 새로 지은 별채가 오빠 방이 되었다. 들기름 먹인 노르끼리한 한지 장판, 흙과 볏짚을 섞어 처발라 지은 집이 아니었다. 흙벽돌, 소나무 기둥, 창호지 바른 문도 노르끼리하니 반듯했다.
오빠는 도시에 있는 학교로 가고, 아버지와 엄마가 밭에 가면 오빠 방에 몰래 들어가 뒷문을 열고 산과 하늘을 봤다. 잠깐이지만 사는 맛과 멋이 났다. 사람 사는 기분이 나는 이 집은 오빠만 사람이었다. 여자인 우리는 사람이 아닌 가축 수준이었다.
한 구덩이에 세 사람을 묻을 수도 없고, 그들을 죽이고 싶은 마음 또한 새끼손가락만큼도 없다. 그래, 별채를 불살라 버려야겠다. 추수를 끝낸 가을이 오니 볏짚과 깻단이 별채 뒤로 바짝 붙어 쌓여있다. 오빠 방만 불살라버리고 싶었다. 곡식이 있는 광과 소가 사는 외양간은 태우면 안 되는데…. 뒷일은 하늘에 맡기고 여동생 둘을 꼬드겼다. 불 피워서 고구마를 구워 먹자고 했다. 오후 2시쯤 집엔 아무도 없었다.
“별채 아궁이에서 구워 먹을까? 언니?” 어린 순미가 생긋 웃는다.
“아니, 재미나게 밖에서 구워 먹자. 불장난도 하고 고구마도 구워 먹고.”
“그래, 언니. 재미나겠다.” 먹보 순자가 헤벌쭉이다.
부엌에서 성냥을 가져오고 별채 뒤란으로 가서 돌멩이로 아궁이 표시를 냈다. 동생들은 신나서 가는 나뭇가지와 굵은 나뭇가지를 가져왔다. 동생들 몰래 볏단을 몇 개 내려놓고 오빠 방 쪽으로 흩트려 놓았다. 볏짚에 성냥을 그었고, 가는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올렸더니 잘 탄다. 굵은 나무를 올리고 볏짚을 더 넣었더니 잘 탄다. 내가 먼저 깔깔깔 웃으니 동생들도 따라 까르르 깔깔 웃는다. 부지깽이로 불을 헤집었더니 동생들도 헤집는다. 동생들이 불장난한다고 정신없는 틈을 타 흩어놓은 볏단에 불씨를 붙였다. 마른 볏짚은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이렇게 잘 붙을 줄 몰랐다. 높이 쌓아놓은 볏짚과 깻단에 불이 확 달라붙더니 별채 초가지붕으로 순식간에 화르르 타 올라갔다, 동생들은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나도 놀라서 울었다. 거짓이 아니었다. 광도 타고 외양간이 탈까 봐 무서웠다.
“불이야~ 불이야~”
동네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양동이를 들고 달려오고, 쌓아놓은 마른 볏단을 분리하는 걸 놀란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자리를 벗어나서 뒹골 큰언니네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났다. 동생들 손을 잡고 뛰어서 산 고개를 넘었다.
언니가 반가워하다가 몰골을 보니 예삿일이 아님을 눈치챘다.
“아니, 니들 왜 그러니? 뭔 일 있니?”
말도 못 하고 울기만 하는데, 순자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집엔 사람이 없었지? 그래 그럼 괜찮아.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언니랑 같이 가자.”
언니는 막 지은 하얀 이밥을 한 고봉씩 떠주고, 아껴두었던 자반고등어를 구웠고, 막 익은 달롱이 김치 한 사발 우리 앞에 놓아주었다. 그래 밥이나 먹자 사람이 죽은 건 아니잖아. 소는 외양간에 없었어. 풀밭에 내가 매어두었잖아. 광에 있는 곡식이 문제이긴 한데 오빠 인삼이나 홀라당 탔음 속이 후련하겠다.
“육실할 년, 빌어먹을 년.”
엄마는 싸리 빗자루로 나를 때렸다. 웬일로 아버지가 엄마를 말렸다. 언니 뒤에 숨어 입을 꽉 다물고 별채를 휘둘러봤다. 오빠 방은 시꺼멓게 뼈대만 남았고, 광은 반쯤 타고 외양간은 그대로였다. 소는 외양간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쌀가마니와 곡식 항아리들이 타다만 광 한쪽에 아무렇게나 놓여있고, 마당에는 까맣게 탄 쌀이 멍석에 펼쳐져 있었다.
불장난하다 그런 거라 어쩔 도리가 없지. 어린 딸들이 그랬으니 파출소에 신고할 수도 없고 말이야. 자기네 집을 자기네가 태웠으니 쯔쯧. 동네 사람들이 어쩌니저쩌니해도 별수 없었다.
오빠는 다시 작은방을 차지했고, 오빠가 월요일에 학교에 가면 작은 언니와 내가 작은방을 썼다. 진작 이랬어야지. 근데 겨우내 온 집안에서 탄내가 났다. 탄 쌀로 밥을 지어서 숯 밥이었다. 휘발유를 섞은 탄내가 나서 먹기 싫었다. ‘왜? 휘발유 냄새가 나지? 성냥으로 불을 질렀는데…. 이상타.’
오며 가며 보이는 별채가, 대청마루에서 본 별채가 을씨년스럽고 괴상했다. 거기다 눈이 쌓였다가 녹으면 시체 썩은 물 같아 기괴했다. 봄이나 돼야 다시 짓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