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은 책을 보는 곳이고 공부를 하는 곳이라 절간같이 조용하다. 수시로 서가에서 책을 꺼내 뒤적였다 다시 집어넣는 소리, 책 넘기는 소리, 필기도구가 노트에 지나가는 소리, 간간이 소지품 뒤적거리는 소리, 이용자들이 들어왔다 나가는 소리만 조심조심 난다. 어찌 보면 산사보다 더 고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용자는 떠들면 안 되고 일하는 직원들도 숨소리조차 가볍게 내야 한다. 간혹 생리현상을 자기네 집에서처럼 내는 이용자가 있는데, 몰상식한 인간이다. 책을 빌려 집에 가서 제 맘대로 뀌든지 뱉든지 하지 신성한 도서관에서(ㅎㅎ진짜 신성하다는 게 아님) 그런다는 것은 도서관 올 자격이 없는 인간이다.
전화벨도 진동으로 해 놓길 바라지만 간혹 벨 소리가 책들이 놀랄 정도로(ㅋㅋ진짜 놀란다는 게 아님) 자기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젤 높은 볼륨으로(가늠 귀가 먹었나?) 올려놓아서 모두를 주목하게 만든다. 전화받는 소리도 거리낌이 없다. 그럼 나는 얼른 달려가 일단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쉿. 그래도 눈치를 못 채면 가까이 가서 나가서 통화하라고 한다, 그럼 대부분 고개를 한번 숙이고 얼른 나간다.
저번엔 목청이 유난하게 큰 남자 이용자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손가락으로 쉬쉬해도 두 손을 펴서 나가시라는 행동을 취해도 끊지도 않고 나가지도 않는다.
“통화는 나가서 하세요.”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핸드폰을 귀에 그대로 대고 황당한 말을 한다.
“이 아줌마가 통화하지 말래.”
이런 돌대가리 같은 아저씨를 봤나.
“나가셔서 하시라고요.”
등짝을 한 대 치고 싶다.
“알았다고. 나가서 하면 될 거 아냐, 이 아줌마야.”
핸드폰을 잡아채서 패대기를 치고 싶지만 여긴 월급 받고 다니는 직장이다. 욕을 해도 참아야 하는 자리다. 내 속엔 살기가 가득 차 있지만, 누울 자리와 앉을자리와 서 있어야 할 자리를 알고 있는 아줌마다.
원두막 도서관의 장점을 나열하려고 이런 일을 먼저 나열하게 되었다. 여기는 아이들 책 놀이터이기 때문에 정숙할 필요는 없다. 걸어 다니는 발소리조차 조심하지 않는다.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줘도 되기 때문에 책 읽는 소리가 불경 읊는 소리처럼 들린다. 이 책 저책 꺼냈다 뺐다 하는 소리는 소음이 아니다. 아이와 엄마가 두런두런, 친구들과 조잘조잘. 1.5층 바닥 소리 콩콩 쿵쿵, 원두막에 올라가는 계단 소리 탕탕탕 텅텅. 온갖 소리가 어우러져 조용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일할 때 내는 소음은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직원들끼리 작은 소리로 사적인 이야기를 해도 상관없다.
업무를 보는 자료실 책상 뒤로 탈의실과 탕비실이 넓게 만들어져 있다. 사방을 조립식 벽으로 막아서 사생활 보호는 물론 도시락을 먹을 수 있고, 잡다한 사담을 나눠도 무방하다. 같이 업무를 보는 이 선생에게 두 시간에 한 번씩 이 공간에서 차도 마시고, 다리 뻗으며 쉬자고 했다. 이 선생도 그러자고 흔쾌히 합의를 봤다. 자료실에 있으면 숨이 차도록 바쁘지만 십 분씩 이런 시간을 만들어서 숨통이 트였다.
이 선생은 나보다 다섯 살 어렸다. 겉으로 봐선 여유롭고 풍족한 가정생활을 하는듯했다. 남편 직장은 출퇴근이 자유롭고 아들 둘이 있는데, 첫째는 명문대학을 가기 위해 일 년만 재수하기로 했다며 기숙학원에 들어가 있었다. 남편 직업에 대해 말을 한 적이 없다. 좀 수상하다. 이 선생은 운전을 해 도서관 출퇴근을 하는데 차가 크림색이었다. 선팅이 새까맣고, 번쩍번쩍 빛났다. 무슨 차였는데? 그 뭐냐? 세단인데…. 아, 맞다 현대 그랜저였다. 2000년대 그때는 그랜저가 최고였다. 그때는 이보다 좋은 차를 몰랐다. 이 선생이 몰고 가는 차를 꽁무니가 안 보일 때까지 쳐다봤다. 나한테는 상상만 할 수 있는 차였다. 남편은 연식이 오래된 봉고차를 끌고 다녔으니까. 그랜저는 몰고 다니고 봉고차는 끌고 다니는 거다. 그랜저는 현대, 봉고는 기아. 차에 대해 모른다 해도 그랜저와 봉고의 차이점은 안다. 갭이 달랐다. 차원이 다르고 노는 물이 달랐다.
이 선생은 건방지거나 잘난 척을 하지 않았다. 도리어 예의가 바르고 참을 땐 잘 참아냈다. 원두막 도서관 관장은 키도 작고 오종종하게 생겼는데 성격도 오종종했다. 관장은 우리에게 한 번도 인사를 한 적이 없거니와 인사를 해도 받지를 않았다. 도서관에 맞지도 않는 일을 시키면서 명령조였다. 그건 아니라고 하면서 나는 발끈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거니와 도서관 실무를 하는 우리가 더 잘 알지. 1.5층에서 내려다보면서 반말로 명령은 무슨 명령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아닌데요. 그게….”
이 선생이 내 옷을 확 잡아당기며 본인이 얼른 대답한다.
“네, 알았습니다. 관장님.”
아차 하면서 말을 참는다. 관장님은 나를 쳐다보다가 이 선생을 보다가 알았냐는 듯이 사무실로 올라갔다.
“우리가 참아요, 관장이잖아요. 그 자리에서 바로 의견을 내면 말대답으로밖에 안 보여요. 일단 알았다 하고 하는 척하면 나중에 안된다는 걸 아시게 돼요.”
참 옳고 맞는 대처다. 총책임자인 관장은 본인 보기에 불편하니까 하라고 하는 거고 우린 대답만 하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사무실에서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 선생은 성질이 차분한 사람이었다. 생물학적 태생이 다르니 다를 수밖에 없다. 차종도 다르고, 남편이 돈도 많이 갔다 주고…. 이런 유치한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