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막 도서관 03

by 산너머

많은 이용자를 대하다 보면 대출이 잘못될 때가 종종 있다. 누구의 실수인지는 몰라도 책이 엉뚱한 이용자에게 대출이 되었다고 한다. 이용자는 대출한 적이 없다 하고, 책 5권은 대출 중으로 뜬다. 전화통이 뜨겁게 난리가 났다. 오종종한 관장이 가만있을 리가 없다. 1층 자료실로 손수 내려와 찢어지다 만 눈을 부라렸다.

“누구야? 누가 잘못한 거야?”

우린 일어나서 손을 앞으로 모으고 잘못을 인정한다. 오전에 자원봉사 둘, 이 선생과 나 이렇게 넷 중에 한 명이 실수를 한 게 맞지만, 자원봉사자에겐 잘못을 추궁하지 않는 게 관률이라, 기간제 직원 중 한 명이 잘못할 걸로 몰아가는 중이다. 특히 관장은 나를 보고 성질을 내고 있다. 평상시 관장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고, 떠받들지 않아서 찍힌 상태였다.

“강 선생이지? 똑바로 일 처리해.” 키가 작아서 턱이 높은 책상 위로 바람 빠져 물에 던져진 축구공같이 얼굴만 둥둥 떠 있다. 다시 봐도 큰 얼굴이 빈티 나게 생겼다. 보기 싫어 고개를 숙여 덧신 신은 발을 내려다봤다.

“이용자에게 전화해서 정중하게 사과하세요. 책은 강 선생이 변상하든지하고.”

내 잘못으로 못을 꽝꽝 박고 뒤돌아 가버렸다. 가끔 이유 없이도, 이유 있게도 책이 없어질 때가 있다. 며칠 찾다가 없으면 분실로 처리한 뒤 사서 제한을 걸어 놓으면 몇 주 뒤 서가에서 찾거나 반납으로 들어올 때가 있다. 이번 건도 분실자료로 걸어 놓고 회귀본능을 기다리면 될 일을 나한테 비닐봉지를 씌워 숨을 못 쉬게 해. 상종 못 할 인간. 개빡친다. 며칠 동안 선잠을 잤고, 보리차 물에 밥을 말아 넘겼다.


탕비실에 큰 원형 탁자가 있다. 그 위에 전기코가 두 개 있는 코드가 있고, 커피포트가 있고, 책을 붙일 때 실리콘 심을 전기로 녹여 쓰는 글루건이 있다. 훼손된 책이 원탁 위로 열몇 권씩 항상 있다. 간식도 커피도 책 수선도 여기에서 다 이뤄진다. 갑 티슈도 있고 두루마리 휴지도 있고 뚜껑 없는 작은 쓰레기통도 있다.


열몇 살 때 오빠 방에 불을 싸지른 전적이 있는 나다. 그까짓 책 몇 권이야 분실자료로 처리하면 될 일을 내 인격을 처리해! 월급도 얼마 안 되는 줄 알면서 변상을 하라니. 잘못했다는 증거 있어? 있냐고?


남편은 골초였다. 담배 피우는 게 낙이고, 술 먹는 게 맛이고, 비디오 보는 게 취미였다. 거실 장식장 서랍에 일회용 라이터와 성냥이 수두룩하다. 액체가 이빠이 든 라이터를 집어 들었다. 술집 상호가 보인다. ‘바 럽미텐더’. 가지가지 놀고 자빠졌다. 미국 근처도 안 간 것이, 엘비스 프레슬리 근처 느낌도 안 나는 것이, 겉멋이 잔뜩 들어간 남편 꼬락서니라니 안 봐도 비디오다. 럽미텐더 라이터를 망치를 넣었던 가방에 확 집어던졌다.


며칠 동안 탕비실 동태를 살폈다. 커피포트 코드가 꽂혀 있고, 글루건이 꽂혀 있는 찰나를 이용하려고 한다. 오전에 자원봉사자가 다 출근하는 날은 커피를 마시며 책을 수선한다. 일주일에 두세 번 자주 있는 일이다.


수요일이었다. 자원봉사자가 커피를 마시고 데스크로 나온다. 슬그머니 들어가 커피포트에 물을 종이컵 한 컵 분량만 남기고 물을 버렸다. 물이 많으면 이걸로 불을 끌까 봐. 글루건도 당연히 꽂혀 있었다. 이 기계는 십 분 이상 꽂아놔야 열이 올라 실리콘 심을 녹인다. 겉표지와 책 알맹이가 분리된 책 여러 권을 전기코드에 올렸다. 잘 타는 얇은 종이책만 골라서. 쓰레기통에 휴지도 많이 풀어놨다. 갑 티슈도 몇 장 뽑아서 전기코드에 올리고 럽미텐더 라이터를 켰다. 티슈가 화르르 타면서 책으로 옮겨간다. 빨리 타라고 책에다가도 불을 붙였다. 탄다. 럽미텐더 잘했어. 불이 붙는 걸 보면서 침착하게 걸어 나와 1층 화장실로 들어갔다. 안 나오는 오줌을 짜냈다. 1층에 불이 번지게 되면 밖으로 뛰어나가면 된다. 화장실에서는 입구가 가깝다.

도서관에는 소화기가 여러 군데 놓여있다. 인명사고는 나지 않을 것이다. 오전이라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서 없다. 데스크 앞에 대출 반납을 하려는 성인 이용자 두 분만 있었다. 탕비실은 데스크 안쪽에 있고 이용자가 들어올 수도 없다, 관계없는 사람을 헤치고 싶지 않다. 정당방위로만 응대를 할 뿐 난 양심적인 사람이다. 불이 나면 관장이 책임자이기 때문에 관장만 놀라고 골치 아프길 바란다.


변기에서 일어나 손을 천천히 닦고 있는데 화장실이 깜깜해졌다. 전기가 나갔구나. 화장실 문을 여니 도서관 전체가 암흑이 되었다. 오전 햇볕이 창가 쪽만 강하게 들어와 성당 유리창 같아서 순간 숙연해졌다. 데스크 쪽으로 오니 자원봉사자가 소화기를 들고 탕비실로 들어가는 게 보인다. 탕비실 위로 연기가 자욱하다. 불은 아쉽게도 몇 분 만에 꺼졌다. 전기가 나갔기 때문에 원두막 도서관은 영업 중지다. 사무실에서 급하게 프린트한 종이를 입구 유리문에 붙였다.

<죄송합니다. 전기가 나가서 금일 휴관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복구하겠습니다. 다른 도서관을 이용해 주세요>

거짓말. 불이 나서 도서관 문을 닫는 거잖아.


어둑어둑한 데스크에 서서 큰일 난 것 같은 표정으로 관장의 골치 아파함을 즐겼다. 오종종한 관장은 잔뜩 찌그러진 얼굴로 탕비실로 들어갔다. 지가 뭘 하겠어, 보기만 할 뿐 어쩌겠어. 자원봉사자가 커피포트를 꽂았고, 책 수선을 하려고 글루건을 꽂았고, 전기합선으로 불이 난 걸로 아는 거지 별수 있겠어. 고개를 빼 탕비실을 보니 원탁 위가 시꺼멓고, 바닥은 책이 탄 가루가 소화기 거품과 섞여 홍수가 휩쓸고 간 흔적 같았다.

자원봉사자들은 퇴근하고 이 선생에게 이를 어쩌지, 도서관은 어쩌고, 관장님 힘드시겠다, 며 안타까운 척 연기를 했다.

오종종한 관장은 물에 팅팅 불은 축구공이 돼서 떠다녔다. 그을음을 잔뜩 마신 관장을 곁눈질로 보다가 신나게 팔을 휘휘 저으며 퇴근을 했다. 전기 복구를 하고, 소화기 뿌려진 탕비실을 치워야 하고, 그을음 냄새를 제거해야 해서 며칠 걸릴 것 같다며 언제 출근할지 연락을 준다고 했으니... 퇴근하는 내 발은 흡사 미끄럼을 탄 듯하다


수요일에 불이 났고 3일 동안 고치고 치우고 해서 주말부터 도서관은 영업을 개시했지만 난 주중 출근이라 5일 동안 소파에서 누웠다가 뒤집었다가 먹다가 졸다가 월요일 출근을 했다.

불? 너? 자주 나면 좋겠다. 자연재해로? 자연재해가 아니고 뭐지? 산업재해라고 해야 하나? 암튼 3일 출근 안 해도 월급은 똑같이 나온다. 자주 불을 지르고 싶지만 들킬까 봐 한 번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탕비실 원탁은 네모난 탁자로 교체되었고, 커피포트는 위험하다고 못쓰게 했다. 글루건으로 책 수선을 하지 말고 접착제로만 하다가 영 안 되면 새 책을 사기로 했단다. 잘됐다. 책 수선 좀 적당히 하고 새 책으로 구매하길 바랐는데 잘 됐다. 이렇게 가끔 큰일이 나야 불편한 게 시정된다.


그 후 관장은 잠잠해 졌다. 뭐, 여전히 인사는 안 받지만, 명령조로 되지도 않는 일을 시키지는 않았다. 도서관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책임자는 너잖아? 그렇지? 관장 같지도 않은 차다 버려진 축구공 같은 것이. 꼬습다 꼬스워.


방화에 소질이 있는 거 아냐? 사실 나는, 망치로 사기그릇 깨듯 대갈을 깨고 싶은데…. 손맛이 아주 끝내주던데. 참고로 낚시를 한 번도 해 본 적 없다.

keyword
이전 20화원두막 도서관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