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7월. 소도둑

by 산너머

초여름, 산비탈이 풀로 가득 들어차면 겨우내 쇠죽을 먹던 소를 산 밑으로 데리고 간다. 속눈썹 긴 소는 앞장서서 풀밭 쪽으로 걷는다. 코뚜레와 연결된 끈을 적당한 나무를 찾아 묶어 놓으면 동그라미를 그리며 혀로 감아서 풀을 뚝뚝 끊어 맛나게도 먹는다. 목마를 것 같아 계곡물을 한 바가지 퍼다 주면 순식간에 빨아 마신다. 개는 혀로 할짝할짝 먹지만 소는 쭈욱 빨아서 먹는다.


가진 재산이라고는 소밖에 없는 마을에 소도둑이 들었다. 옆 냇가 동네 소가 없어졌다고 한다. 여름방학이라 소는 내 책임이었다. 한눈팔지 말고 단단히 지켜보라고 했다. 나무 그늘에 앉아 책도 읽고 늘어지게 낮잠도 잤다. 소도둑도 양심이 있겄지 옆 동네 소를 훔쳐 갔는데 또 오겠어. 들킬까 봐 조심할 거야. 산 밑 동네, 냇가 동네 소문이 쫙 퍼졌는데 또 올 리가 없잖아.


그날도 소를 산 밑에 묶어두고 나무 그늘에 앉아 있자니 더운 공기가 목덜미로 들러붙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밭두렁을 따라 논길을 지나 냇가에 가서 멱을 감고, 젖은 속옷 그대로 치마만 둘러 입고 소가 있는 산밑으로 오니 낯선 남자가 소를 끌고 가려고 하고, 소는 안 가겠다고 버티고, 놀라서 소리를 지른다는 것이

“어 어 어…. 누구세요?” 누구긴 대낮에 소를 끌고 가면 그게 도둑이잖아. “어! 도, 도, 도둑이야~”도둑은 이미 산 쪽으로 퉤 가는데 한 박자 늦게 소리를 질러댔다.

“도둑이야! 소도둑이야! 아부지? 오빠?”

오빠가 먼저 튀어나와 산으로 쫓아가고, 뒤이어 아버지가 쫓아갔다. 난 소리를 지르고 사람들의 난리 통에 소는 놀래서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우리 집 전 재산이 도망간 것이다. 큰일은 큰일이다. 겁이 나서 막 울었다. 오빠와 아버지는 도둑을 잡지 못해 파출소로 가서 신고하고 왔다고 한다.

“소 잘 보고 있으랬지? 어디 갔다 온 거여?”

“잘 보고 있었어. 왜 날 가지고 그래. 엉엉엉”

우는 수밖에 없었다. 더워서 멱감고 온 걸 알면 엄마와 오빠는 날 잡아 죽이려고 할 것이다. 소가 없어져서 속상해서 눈물이 더 나왔다.


온 식구가 저녁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데, 어둑어둑한 저녁 어스름을 등지고 소가 어슬렁어슬렁 마당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밥숟가락을 냅다 던지고 봉당으로 내려가 맨발로 소에게 달려가 끌어안았다. 뭔 징그러운 짓이냐는 듯이 소는 큰 눈을 데굴럭델굴럭 굴렸다.

“워디 갔다 온 거~여? 잘 왔다 자알…. 엉엉 잘~엉엉”

목이 꽉 막혀가며 또 울었다. 이제 되었다. 밥 안 먹어도 된다. 오빠가 소를 달래 외양간으로 데리고 가고, 아버지는 쌀겨와 옥수숫가루를 물에 섞어 소죽통에 한가득 부어주었다. 밤늦도록 소를 쳐다보고 또 쳐다보며 얼굴을 만져주었다.


다음날 파출소에서 사람이 나왔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려고 나왔다고 했다. 소도둑을 맞닥뜨린 사람은 나 하나라서 찾아온 것이다.

“키가 얼마만 해?”

파출소에서 온 경찰은 나이가 아버지 정도였다.

“오빠만 했어요”

오빠는 키가 크지도 작지도 않고 평균이었다.

“어떻게 생겼어?”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뭐라 대답을 못 하고 오빠를 쳐다봤다.

“오빠처럼 생겼어?”

“아니요. 오빠보다 착하게 생겼어요.”

“저…. 우라질 년이….”

엄마가 작은 소리로 흘리듯 욕을 했다. 오빠보다 착하다는 말에 저 정도 욕 가지고는 안될 텐데, 경찰 앞이라 순화를 시켜 고분고분했다.

“어머니는 가만히 계시고요. 잘 생각해 봐. 그래야 도둑을 잡잖아? 오빠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어? 어려 보였어?”

“많아 보였고요. 소도둑처럼 안 생겼어요.”

우락부락하지 않았다. 오빠처럼 덩치가 크지도 않았다. 오빠가 도둑놈같이 생겼는데….


똑소가 무사히 돌아왔고, 우리 소는 그때부터 똑똑해서 '똑소'라 불렸다. 경찰이 조사하러 마을에 직접 왔고, 산 너머 마을이든 냇가 건너 마을이든 발칵 뒤집혔으니 소도둑은 다시는 나타날 것 같지 않았다. 속으로 소도둑이 안 잡히기 바랐다. 나를 보고 놀라서 산 위로 뛰어가던 헐렁한 뒷모습이 눈에 자꾸 보였다. 경찰에게 피죽도 못 먹은 듯 말랐다는 말은 뺐는데, 우리 집보다 더 가난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똑소는 새끼를 여러 번 낳았다. 입에 입김이 펄펄, 똥구멍에 김을 풀풀 날리며 새끼를 낳았다. 왜 추운 겨울에만 낳았는지 모르겠다. 아지랑이 폴폴 피는 봄에 낳으면 얼마나 좋아. 사람은 누워서 새끼를 낳는다고 들었는데 소는 서서 낳았다. 새끼 다리가 보이더니 쑥 빠져 외양간 지푸라기 바닥에 툭 떨궜다. 송아지는 금방 일어나서 비틀비틀 걸었다. 엄마가 된 똑소는 자기 태를 자기가 먹었다. 초식동물이 육식동물처럼 먹었다.

송아지가 태어나자마자 걷는 건 육식동물에게 잡아 먹히지 않으려 그런 거라고 책에서 봤는데, 어미 소가 태를 먹는 것도 육식동물에게 피 냄새를 맡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게 아닐까?


똑소를 데리고 풀밭에 나가는 시간이 뿌듯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무렵에 외양간으로 급히 데리고 오다가 소ㄱ 내 발을 밟고 말았다. 엄지와 검지를 밟아 발톱이 빠졌다. 발가락 두 개가 터질 듯이 부었고, 피멍이 한 달 지나서 없어졌다. 발톱은 새로 나왔는데 검지 발가락이 구부러지지 않아서 걸을 때 불편했다.


성인이 되어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봤더니 오래전에 부러졌는데 고치지 않아 굳어졌다고 한다. 다시 움직이게 하려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수술 방법을 듣고는 그냥 이대로 살겠다고 했다.

“검지를 부러뜨려서 깁스해야 합니다.”

의사는 부러뜨려서 할 때 손으로 부러뜨리는 행동을 취했다. 나쁘게 풀렸으면 살인자가 되었을 텐데, 운 좋게 풀려 의사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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