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벽돌로 지어진 도서관은 원래 동사무소였다고 한다, 한일자 형태로 지어진 아무런 디자인이 안 들어간 비바람만 피할 수 있는 건물. 옛날 동사무소가 다 이렇게 생겼다. 산골도 도시도 아닌 면, 읍 정도에 있던 동사무소가 왜 도서관으로 탈바꿈한 지는 모르지만, 한 해가 바뀌면서 이곳에 야간연장 기간제로 취업이 되었다.
입구에서 몇 계단 올라 1층으로 들어가면 코앞에 안내대가 있고 그 옆에 지하와 2층으로 가는 계단이 있다. 승강기는 애초부터 없어서 없다. 계단을 중심으로 종합자료실이 두 군데로 나뉘어 있었다. 한쪽은 화장실과 나누어 써서 좁고 한쪽은 넓었다. 넓은 곳이 이 도서관의 중심축이 되는 종합자료실1이다.
처음 출근하는 날, 종합자료실1엔 표정이 심상치 않은 직원이 앉아있었다. 긴 머리로 이마를 가리고 있어서 처음엔 취미로 헤비메탈을 하나 했었는데, 이마부터 눈까지 가로로 길게 난 흉터를 가리기 위해 그랬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항상 고개를 숙이고 있고 웃는 표정을 지을 줄 몰랐다. 이 여자가 야간연장을 같이 해야 하는 김 선생이고, 이 여자가 이 지역 도서관에 파란을 일으키는 장본인이 될 것이고, 이런 여자가 작년에 무기계약직으로 승진을 했다.
기간제를 세 번 하고 관장님의 추천서가 시청으로 올라가면 시에서 심사를 걸쳐 매년 몇 명씩 기간제가 무기계약직이 된다고 하는데, 작년에 처음으로 실행이 되었다는데, 운 좋게 김 선생이 됐다. 첫날부터 표정과 몸, 머리카락 끝부터 신발까지 쓰여 있었다. ‘나는 무기계약직이다. 너는 내 아래야’ 이렇게.
동사무소 도서관은 이 지역 시립도서관 중에 제일 협소했다. 주변에 재래시장이 있고, 낡은 연립주택과 낙후된 단독주택이 도서관을 감싸고 있다. 전깃줄은 사방으로 엉켜 하늘에 빗금을 정신없이 그려 놓았다, 건널목을 두 번 건너면 기차역이고, 그 주변은 온통 논과 밭, 야트막한 언덕, 그 사이로 흐르는 개천이 있었다. ‘있었다’라고 표현을 한 것은. 원래부터, 구한말부터, 조선 시대부터 이 모습대로 있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동사무소 도서관은 좁고 오래된 건물이지만 주차장은 넓었다. 그리하여 동네 차들이 다 여기에 대 놓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옛날 동네라 골목이 좁고 주차할 곳이 없다. 뭐…. 그 옛날에는 누가 집집이 차가 있었겠어. 자전거나 기껏해야 오토바이나 경운기가 있었겠지. 뭐…. 그리하여 맨날 만차다. 차 댈 때 없다고 화를 내는 이용자들이 매일 한두 명씩은 있다.
건물 옆으로는 좁다란 정자가 놓여 있고, 그 옆과 뒤에 오래된 은행나무와 고욤나무 몇 그루가 있어 봄엔 감꽃 닮은 꽃이 피고, 가을엔 감이랑 쌍둥이같이 생긴 미니어처 열매가 조랑조랑 달린다. 은행나무에 가을이 물들면 참 멋 났다. 시조 한 편 아니 여러 편 나올 심상이다. 가을 풍광은 가을이 오면 다시 이야기하고….
여긴 오래된 마을이라서 연식이 오래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다. 특히 할아버지 이용자들이 많았다. 책도 고서적 같은 것이 있었다. 겉표지, 속 안, 책 제목도 역사가 깃들어 있었다. 그런 책엔 내가 중학교 때 수기로 빌려주던 형태 그대로 종이에 적은 기록이 맨 뒷장에 끼워져 있었다. 이런 고서적을 보러 오는 이용자들이 많다 보니 종합자료실은 노인네 냄새가 났다. 정말이다 냄새가 달라서 왜 그런가 했더니 노인네 냄새란다.
했던 일이라 어려울 건 없었다. 도서관만 바꿨을 뿐이다. 협소해서 도리어 바쁘지 않았다. 근데 어디든 복병이 있듯이 무기계약직 김 선생이 이 도서관의 복병이었다. 그것도 밤에 나랑 둘이서 일을 하는데….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차차 이 이야기를 풀 테지만.
일단 첫째, 매일 화가 나 있다. 둘째, 이용자가 와도 고개를 들지 않는다. 셋째, 나를 너무나도 싫어했다. 나를 싫어하게 된 사건이 생기는데, 차차 이야기하겠다. 무기계약직이라서 이 여자 눈 밖에 나면 다음 취업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나도 무기계약직이 되어야 한다! 일은 내가 다 해도 찍소리 못했고, 웃으면서 이용자를 받고, 웃으면서 이 여자를 봐야 했다.
도서관 실내도 붉은 벽돌로 마감이 돼 있어서 서가 벽이 재래식 풍경이다. 여름엔 덥고 겨울에는 바람이 자유로워 몹시 추웠다. 비가 샜다, 삐걱대는 창문 사이로 벌레와 나뭇잎이 이용자처럼 들어왔다.
근데 여기가 좋다. 창밖 풍경이 어릴 적 추억인양 펼쳐져 있고, 나만 제일 똑바로 정신이 박힌 사람 같아서 여기가 좋았다. 일하는 직원들이 이상했고 들락거리는 이용자들은 나사가 하나씩 빠져있어서, 내가 정상인 것 같아서, 잘난 사람 같아서 우쭐했다. 이 도서관을 다니는 동안 시건방져졌고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행복해 보인다는 소리도 들었다. 아! 참. 술 못 먹어서 왕따도 당했다. 하여튼 여긴 몹시 이상한 도서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