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당 수백 명 수천 명이 보기 때문에 겉은 물론 속은 글로도 적기 싫을 정도로 더럽다. 책이란 원래 아무 곳이나 아무 데서나 보는 물건이라 더러워질 수밖에 없다지만, 공공으로 보는 물건이고 지역의 재산인데 왜 개인 물건처럼 다루는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냄비 받침으로 써서 냄비 자국이 동그랗게 난 책, 강아지가 물었는지 사람이 물었는지 모를 이빨 자국, 반찬 국물, 피딱지, 코딱지…. 윽! 더러워서 그만 쓰겠다.
연필로 밑줄을 치고 메모를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자기 책도 아니면서 자기 책인인양 다룬다. 연필로 한 건 그나마 지우개로 지우면 되는데, 볼펜으로 낙서 한 책도 의외로 많다. 연필로 낙서한 책은 일일이 한 장 한 장 넘기며 지웠다. 나중엔 차리리 볼펜이 나았다. 볼펜은 지울 수 없어서 파손 도서로 처리해 서고로 들어가거나, 이용이 많은 책은 다시 구매하면 되는 데, 연필은 지우개 똥만 만들다 지친다. 나중엔 책 안을 일부러 안 훑었고 봐도 못 본 척했다.
그런데 모순되게도 낙서가 많다고 말을 하거나 도서관 홈페이지 건의 사항에 읽기 불편하다며 지우든지 새로 책을 사달라고 징징거리거나 야단을 쳤다.
낙서하는 이용자, 낙서가 불편하다는 이용자. ‘니들끼리 다 해 먹어라.’
책 표지가 더럽다고 기분 나쁘다는 이용자들 ‘그게 더러우면 사서 봐’
신간이 왜 이렇게 늦게 들어오냐? ‘기다리기 애가 타면 니 돈 주고 사서 봐’
대중성이 없는 본인에게만 필요한 책을 찾으면서 왜 안 사주냐? ‘전문적인 책은 너나 보잖아.’
너무너무 모순된 곳이 도서관임을 도서관 다니기 전엔 몰랐다.
인상이 좋고 점잖은 할아버지 이용자가 있었다. 매일 오셔서 한자리에 앉아 오전에 두 시간, 오후에 세 시간 책을 보고 가셨다. 인자하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먼저 하셨고 옷도 머리도 깨끗하게 입고 다니셨다. 혼자 오셔서 조용했다. 항상 빨간 볼펜을 들고 계셨는데, 볼펜 심을 빼지 않고 짚어가며 책을 읽는 줄 알았다. 근데 이분이 읽고 반납한 책을 뒤적이다 보니 빨간 볼펜으로 등장하는 이름마다 동그라미가 처져 있었다. 대출 이력을 검색해 서가에서 책을 찾아보니 다 빨간 볼펜으로 이름만 얌전하게 표시돼 있었다. 그때부터 ‘빨간볼펜’ 할아버지를 유심히 봤더니…. 책에다 동그라미를 치며 읽고 계셨다,
불펜으로 낙서를 하다 발각이 되면 똑같은 책을 사 와야 하는 것이 도서관 규칙이다. 지난 책을 구입하기엔 너무 많았다. 최근에 대출한 신간 도서 두 권은 구매해 오셔야 한다고 하면서 낙서해서는 안 된다고 부탁을 드렸다. 빨간 볼펜 할아버지는 낯부끄러운지 그다음부터는 도서관에 오지 않았다. 사람은 겉모습을 봐서는 모른다. 도서관을 다니기 전엔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많은 줄 몰랐다.
멋진 깃털이 달린 중절모를 쓰고 오는 노인네 이용자가 있었다. 나이는 팔십이 넘었다. 민법에 관한 책만 대출했다. 법률책은 두껍고 비싸다. 깃털 노인네는 책을 빌려 가면 반납을 안 했다. 아무리 연락해도 받지 않다가 며칠 있다 직접 와서, 반납했는데 뭔 소리를 하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300번 대 서가를 직원들이 매달려 이 잡듯 뒤져도 책은 나오지 않았다. 연체가 길어 대출할 수 없는데도 책은 반납했고, 그러니 책을 빌려 가야 한다고 우겼다.
“반납을 안 하셔서 대출 정지라 대출할 수 없습니다.”
“이름이 뭐야? 일을 제대로 못 하는 너를 시청에 얘기해 자르라고 해야겠어.‘
”연체되셔서…. 반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뭐야? 관장 나오라고 해! “
관장을 만나야겠다고 2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러든지 말든지 반납 안 한 반동분자 같은 이 노인네를 관장도 직원들도 다 알고 있었다. 관장을 만나고 온 결과는? 대출정지 풀어주고 대출해 주라고 한다. ‘이런! 모순덩어리를 뒤집어쓰고 사는 관장아~너도 똑같은 족속이구나’ 깃털 노인네는 비싼 책을 꿀꺽 삼키고, 두꺼운 민법 책을 또 대출하면서
”거봐. 네가 뭔데 안된대. 다음부터 잘해. 알았지? “
그 후로 여러 번 도서관으로 마실을 나오더니 안 보였다. 몇 달이 지난 뒤 궁금해서 물어보니 돌아가셨다고 한다. 공공기관을 순회하듯 다니면서 직원들을 엄청나게 괴롭혔다는 노인네는 쓸모없는 깃털이 되어 광활하고 메마른 어느 불모자 땅을 헤매고 있을 것이다. 하늘에서도 받지 않을 못된 영혼이라서.
..... 흐흐…. 흐~ 과연 그럴까? 과연 노환으로 죽었을까?
억지로 대출을 해 간 노인네는 기가 살아 도서관을 자주 오면서 사무실에 들러 커피도 한 잔씩 마시고 갔다. 관장한테는 친구 대하듯 호탕하게 대하면서 나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로 트집을 잡았다. ‘엔간히 해라. 이 노친네야’
할 일 없고 상대해 줄 가족도 없을 것 같은 깃털 노인네는 저녁을 먹고 동네 산책을 하다가 밤마실 목적지는 도서관이었다. 기력이 많이 빠져서 휘청휘청했다.
저런 쓸모없는 노인네는 죽어야 마땅하다. 몇 년 안에 죽겠지만 내 손으로 죽여야 이 억울함이 풀릴 것 같다.
도서관 정문을 나와 왼쪽 담벼락 길은 겨울이라 인적이 드물었고, 희미한 가로등도 백 미터에 하나씩 있어 어둡다. 오래된 주택은 지붕이 낮아 담에 가려져 지나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매번 깃털 노인네는 이 담벼락 길을 따라 앞쪽으로 느리게 쭉 걸어간다.
근무 중에 화장실 가는 척하면서 노인네를 따라갔다. 누가 따라오는지 관심도 없다. 종합자료실은 웃풍이 세 항상 겉옷을 입고 있어서 이대로 밖에 나간다 해도 어색하지 않다. 몇 번 미행하다가 기회만 오면 뒤에서 밀어 죽여야 한다.
기회가 왔다. 그날따라 깃털 노인네는 걷는 게 힘이 없었다. 허수아비가 걷는 것 같았다. 이때다. 소리 나지 않게 깃털처럼 걸어서 있는 힘껏 노인네 등을 밀었다.
”빡! “ 시멘트 바닥에 그대로 엎어지면서 대갈 깨지는 소리가 났다. 뒤돌아보지도 않고 빠르게 도서관 쪽으로 걸어 정문에 다 와서 뒤돌아보니, 노인네는 엎어진 채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됐다.
화장실로 들어와 손을 씻고, 시원하게 대변을 본 것같이 근육이 풀어진 얼굴로 제자리에 앉아 서가를 둘러보고 책상 정리를 했다.
퇴근하는 길은 버스를 타는 반대쪽 골목이라 노인네가 죽은 것을 가까이에서 볼 수 없어서 다행이다. ‘나는! 살인을 즐기거나 중독된 게 아니다.’ 이유 없이 괴롭히는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시체를 보고 싶지 않다. 나의 첫 살인은 깃털 노인네, 도서관은 동사무소 도서관. 여기는 이상한 기류가 흐르는 섬찟한 동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