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무소 도서관 03

by 산너머

감옥에서 야생초를 기르며 김치도 담그고 나물도 해 먹는 ‘야생초 편지’ 수필을 읽었다. 책을 소지할 수 있는지는 몰라도 감옥에 들어가면 이 책을 꼭 들고 가리라.

눈동자를 망치로 내려치고, 노인네를 밀어 죽이고는 한동안 감옥에 들어가는 기분 나쁜 꿈을 꿨다. 그러다가 야생초 편지를 읽고 감옥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낙관적으로, 긍정적인 마음으로 돌려먹었더니 감옥에 들어가는 꿈을 안 꿨다.


도서관 일을 하면서 좋은 점은 책을 맘껏 고르고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도서관에 안 다니면 모를 책들을 훑어보며, 몇 장 읽어보다 내 취향이면 바로 빌렸다. 잘 쓴 문장에 재미까지 있는 책을 기억에 다 담을 수 없어 수첩에 적어 놓았다. 책 제목과 작가와 간단한 줄거리를 적었다.


동사무소 도서관은 나이 든 이용자가 많았다. 나이 들면 가고 싶은 곳도 다니기 힘들고, 시간은 많다. 그렇다고 손으로, 머리로, 몸으로 하는 취미도 하기 힘들다. 책을 보는 것은 그런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처음 왔는데 뭔 책을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겸연쩍어하는 이용자가 꽤 많았다.

“어떤 종류의 책을 좋아하세요?”

“종류?”

“예를 들면 살인, 일상생활, 자연, 문학, 철학, 여행, 건강이나 취미? 어떤 게 좋으세요?:”

“어. 문학이 좋겠는데…”

“문학 중에서도 한국소설, 외국 소설, 추리소설, 성장소설, 그냥 흥미진진한 이야기? 어떤 게 좋으세요?”

“재미난 거.”

서가에 가서 여러 권의 책을 찾아와 보여드린다. 앉아서 보시고 선택하라고 하면 흐뭇하게 웃으며 몇 권 대출해 간다. 반납하러 오면서 재미있었다고 또 골라 달라고 한다. 신이 난 나는, 수첩을 뒤져서 이용자에게 알맞은 책을 또 추천했다. 고맙다고 간식을 챙겨다 주고 내가 안 보이면 나를 찾았다.

사서들은 대부분 이런 일이 곤란하다고 하지만 나는 보람되고 즐거웠다.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안내하고 추천을 했다. 나는 흥분하면 목소리가 갈라지고 말이 빨라진다.


내 자아는 여러 개인 것 같다. 이중인격자가 아니고 다중인격자다.

참하고, 다정하고, 밝다. 실수를 잘 안 하고 얌전하게 일을 처리하고, 책이나 물건이 정리가 잘 돼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항상 밝게 인사하고 아무것도 안 할 때도 살짝 입꼬리를 올리고 있어 행복해 보인다고 한다.

감성이 풍부하다. 풀꽃 한 송이를 봐도 울컥하고, 새를 보느라 가던 길을 멈춰 나무 위를 한참 올려다본다.

철학적 사유도 가지고 있다. 망상, 상상, 공상을 많이 하다가 밤을 새운다.

너무 감성적이라 허공을 바라보다 허무해진다.


직유법과 은유적으로 시를 쓰고 글을 쓴다. '처럼~같이~' 이런 표현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이게 인격체와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지만 글을 쓸 때 이런 표현을 많이 하는 걸 보면 솔직하지도 않고 비유해서 지나가 버리길 좋아하는 것 같다. 곤란한 일이 생기면 따지기보다 피하고, 얼른 이 순간만 모면하고픈 성격이다.

새보다 자유로운 바람이 부럽다. 잔소리를 하거나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하면 옥좨오는 압박감 때문에 견디지를 못한다. 스스로 가라앉게 하는 자괴감이 자주 들어 사소한 즐거움을 찾으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이용자들에게 책을 추천하는 일이 사소한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근데…. 거칠게 살다 보니, 이용자를 응대하다 보니 망치로 머리를 빠개고 싶은 사람이 더러더러 생겼다. 그걸 못 참는 게 나의 태생이다. 깃털 노인네를 망치로 죽이면 살해당한 게 탄로 날까 봐 밀어서 죽였다. 송장 같은 노인네였으니까 명이 다해 죽은 걸로 판명이 난 것 같다.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다. 학교 다닐 때 공부가 싫었고, 외우는 건 딱 질색이다. 아무리 밑줄을 치며, 읽고 쓰고 또 쓰고 해도 외워지질 않아서 외국어와 국사가 낙제점수였다.

그러한데 사람에게 복수할 때는 계획도 잘 짜고, 순간 판단도 잘한다. 들키지 않게 하는 방법까지 스스로 터득하게 되었다. 사람마다 머리 쓰는 게 다르듯이 이쪽으로 타고난 재주가 있다. 이걸 부모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부모의 나쁜 유전자를 많이 받았다. 일단 매사에 짜증이 난다. 부정적이다. 사람들을 믿을 수가 없고 가식으로 느껴진다. 다정하게 책을 찾아주고 미소를 짓는 건 여기서 살아남아 무기계약직이 되고 싶고, 살인을, 살인 욕구를 감추고 싶어서 그런 것이다. 나는 다중인격체다.


그러나 어르신들에게 책 추천을 해 줄 때는 진심이었고 진실이었다. 서로에게 즐거운 시간이었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우아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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