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무소 도서관 05

by 산너머

주도권을 차지하던 김 선생은 자기 머리를 쥐어짜더니 그날부터 기가 죽어버렸다.


그날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김선녀라 할까? 김 선생이라 할까? 이름이 인간성이랑 정반대지만 김 선생은 흔하니까 김선녀라 해야겠다. 이름은 예쁘니까 예쁜 이름은 자주 불러줘야 한다.


김선녀는 맨날 화가 나 있어서 이용자들도 김선녀 데스크 쪽은 안 가고 나한테만 온다. 근데 사람마다 재주가 있듯이 김선녀는 남자 꾀는 재주가 뛰어났다. 사무실 남자 주사들도 안내대 반장님도 술친구 겸 애인으로 삼았나 보다. 돌려 빵을 하든지 떡을 치든지 김선녀 몸뚱이니까 아무렇게나 써도 어떠하겠느냐마는. 나 혼자 일하게 놔두고 1층 갔다가, 2층 갔다가 돌아치는 게 꼴도 보기 싫었다. 당연히 죽이고 싶지, 안 죽이고 싶겠냐고~요~!

나도 사람인지라 금방 살인을 저지를 수 없었다. 쉴 틈이 있어야 살 수가 있지, 그렇지 않으면 심장이 남아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들키고 싶지 않았다. 이런 하찮은 사람 하나를 죽이고 감옥에서 늙고 싶지 않았다는 게 제일 큰 이유다.


그날이었다. 계절은 여름이 지나 가을이 막 오고 있었다. 여름이 지나면 솔솔바람 따라 사랑을 하고 싶게 만드는 계절이 가을이니 이해한다. 김선녀는 이혼녀였으니 사무실 남자들하고 돌려가며 애인으로 삼든 말든 사실 법적으로 문제는 없었다. 문제가 있는 건 유부남들이었다. 직원들도 유부남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소문만 자자할 뿐 증거는 없거니와 집에 있는 마누라들이 알 리가 없다. 일하는 시간에 스리슬쩍 노는 거라 알 수가 없다,

김선녀에겐 아들이 한 명 있는데 군 복무 중이라 혼자 살고 있으니 남자들이 들락거리기 얼마나 편하겠어. 여관 가는 돈도 안 들고, 김선녀가 남자를 그렇게 밝힌다나? 그것도 재주다.

“정말? 정말 도서관 남자 직원들이 김선녀 집을 들락거린대요? 사실일까요?”

“맞대요. 그래서 무기계약직이 될 수 없었는데 된 거래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날 그 사건을 밝히겠다. 야간에 김선녀와 근무를 하는데 어떤 여자가 종합자료실로 들이닥쳤다. 이용자인 줄 알고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데, 김선녀가 빛의 속도로 튀어 나갔다.

“저년이 김선녀지?” 그 여자는 김선녀를 쫓았다. 몇 분 있다가 내가 있는 데스크로 다시 왔다. 덩치가 크고 주황색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김선녀 저년이 우리 남편과 바람이 났어요. 저년이 집으로 끌어들였고. 우리 남편 말고 남자가 세 명이나 더 있어요. 도서관에 못 다니게 할 거야!”

그러면서 김선녀를 찾지 못했다고 밖으로 다시 나갔다. 따라 나가니 정문 밖에 그 여자 남편이 고개를 숙여 서 있고, 여자는 소리를 막질러댔다.

“김선녀 찾아와! 찾아와서 내 앞에 데려다 놔!”

사무실 당직자도 내려오고, 이용자들도 다 쳐다보고 있는데, 김선녀만 안 보였다. 그러더니 뒷문으로 김선녀가 몰래 들어오는 게 보이네. 가방을 들고 냅다 튀어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김선녀. 나는 그 상황을 보고 있었지만, 그 여자에게 김선녀가 뒷문으로 나갔다는 말은 못 했다. 그 순간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혼자 마감을 하느라 뒷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볼 수가 없었다. 김선녀가 도망을 갔으니 어떻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더라, 그랬더라 소문이 사실임이 확실해졌다. 이 일은 발이 달려 전체 시립 도서관으로, 시청으로, 이 지역으로 빠르게 퍼질 게 분명하다.


다음날 김선녀는 출근을 안 했다. 혼자 힘들게 생겼다. 김선녀가 잘못했는데 내가 피해를 봤다. 주간 기간제 윤 선생에게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현장감 있게 말해줬다. 내가 말을 안 해도 이미 들었지만 자세한 내막을 듣고 싶어 했다.

주사들, 안내대, 하다못해 청소하는 남자도 자기네들 목이 잘리고 가정이 다칠까 봐 눈치를 보고 김선녀와 안 논 척하느라 모두 제자리에 앉아서는 목을 만지고 있겠지. 안 봐도 뻔하다. 내가 유일한 목격자라 나한테 와서 물어보고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는 열심히 일하는 척을 한다. 더러운 놈들. 김선녀와 관계 먹은 것들은 다 잘려야 하는데, 그나저나 김선녀는 목이 댕강 잘리겠지?


다음날도 김선녀는 출근을 못 했다. 몸져누웠겠지. 도서관 홈페이지 건의 사항에 그날 그 사건을 본 것처럼 생생하게 올라왔다. 나는 안 썼는데, 내가 썼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전 안 올렸어요. 절대 안 썼다고요!”

혼자 일하는 것도 힘든데, 내가 썼다고 하니 억울했다. 자식 이름을 걸고 안 썼다고 했다. 유일한 목격자이긴 한데…. 누가 썼는지 짐작은 간다.

건의 사항은 익명이다. 가족이나 지인 이름으로 가입하고 쓴 것 같았다. 주간 기간제 윤 선생일 것 같다. 윤 선생은 김선녀를 몹시 미워했다. 평상시에도 잘려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했고, 그날 있었던 자세한 내용은 윤 선생에게만 했는데, 가방을 들고 몰래 뒷문으로 도망쳤다는 내용이 건의 사항에 적혀 있었다.

삼 일째 되는 날 김선녀는 빨간 티를 입고 출근했다. 왜 눈에 확 띄는 빨간 티를 입고 여봐란듯이 나타났을까? 맛이 간 거 아냐? 머리는 산발을 해서는 자꾸만 자기 머리카락을 쥐어짰다. 미쳤네.


다른 도서관 사서 선생들이 김선녀가 아니고 강순희 선생일 거라는 추측을 했단다. 김 선생의 외모나 성격에는 당최 어울리지 않고 강 선생에게 어울린다고. “나라고요? 하하.” 웃고 말았다. 내가 아니라는 건 금방 알게 되었고、 나는 내가 저지른 살인 사건만 모르면 된다.


시청에서는 이런 황당한 일이 처음이라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는지 난감했나 보다. 기물을 파손하거나 기물을 훔치면 제적된다는 조항은 본 것 같은데…. 도서관에 손해를 끼치거나 일을 안 하거나, 규칙을 어기거나. 규칙에 남자를 사귀지 말라는 조항은 없긴 하다.

별 조치 없이 조용하게 흐르더니 일주일 뒤 시청에서 공문이 왔나 보다. 김선녀는 사무실로 서류를 들고 오르락내리락했다. 사무실 남자들과 술 마시러 들락거리더니 이제는 경위서를 쓰느라고 들락거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때는 좋아서 실실 웃더니, 지금은 인상이란 인상은 있는 대로 쓰고, 살도 빠지고 있는 게 겉으로 보였다.


주도권이 나한테로 넘어오는 분위기가 됐다. 김선녀가 내 눈치를 보게 되었으니 사람의 일이란 어느 순간 어떻게 뒤바뀔지 모르는 거다. 누구 탓을 하겠는가? 자업자득이지.

참 웃긴 게, 그 뒤부터 여기는 난잡한 술집에서 순수한 도서관으로 바뀌었고, 남자 직원들은 바로바로 퇴근했고 술자리는 감쪽같이 없어졌다. 술자리를 거부했던 내 존재는 왕따에서 바른생활 사서로 탈바꿈되었다. 되게 웃기다.

이런 말이 있다. 양쪽 눈이 다 있는 게 정상인데, 한쪽 눈이 없는 세상에 살면 눈 한쪽을 스스로 찔러야 왕따를 안 당한다고. 웃기는 세상살이다.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김선녀는 제적되지 않았다. 선례가 없기도 하거니와 혼자 사는 여자가 사랑을 한 건 죄가 아니다 뭐 이런 말씀이신 것 같다. 김선녀는 서류상 미혼이니 그것이 가장 큰 참작이 되었다. 관장이 남자고, 사무실 직원들도 유부남들이니 한통속이기도 하고. 김선녀가 퇴출당하면 그들도 위태로웠을 것이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갈 때쯤 김선녀는 서서히 고개를 들고 열심히 일하기 시작했는데, 더 초췌한 얼굴을 해서 뭔 종이를 몇 장씩 들고 왔다 갔다 했다. 알고 보니 얼마 전 제대한 아들이 친구랑 술을 마시다가 술병을 깨뜨려 친구 얼굴을 찔렀다고 한다. 살인미수로 교도소에 들어갔고 재판을 기다리는 중인데, 아들을 전과자로 만들고 싶지 않아 탄원서를 받으러 다니느라 분주했다. 아니 그날 사건으로 혼자 일하게 하더니, 아들 살인미수 사건으로 나만 또 힘들게 생겼다. 김선녀는 무기계약직이라 나보다 월급이 많은데, 이게 뭔 조화 속인지 환장하겠다. 김선녀는 일복은 없고, 돈복은 있나? 나는 일복은 많고, 돈복은 없나?


김선녀 아들이 친구를 술병으로 찌른 이유는 있었다. 친구가 도서관 홈페이지를 봤고, 너희 엄마가 그렇고 그랬다며? 흉을 봤다고 한다. 홈페이지는 누구나 들어가 볼 수 있고, 그날 사건은 이 지역 도마 위에 생선 거리로 난도질되고 있었으니…. 김선녀는 맛이 완전히 가서 근무 중에 수시로 엎드려 있거나, 청소하는 직원들 쉬는 방에 가서 자빠져 누워있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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