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무소 도서관 07

by 산너머

전쟁터에서 이기고 돌아온 개선장군이 따로 없었다. 이 도서관에서 제일 오래 일했던 김선녀가 좌천되고 나니 내가 제일 오래된 사서가 되어서 개선장군마냥 의기양양했다.

화분 위치도 바꾸고 서가 정리도 손맛에 맞게 조정했다. 사무실에서도 지시사항이 있으면 내게 먼저 전달했고, 보조 인력 관리도 맡겨졌다.

연초가 되거나 계절이 바뀌면 보조 인력이 새로 들어온다. 책을 꽂아주는 공공근로, 자료실 데스크 업무를 도와주고 책도 꽂아주는 행정 도우미, 자원봉사, 공익근무요원에게 도서관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줬다.


연초는 겨울방학이랑 겹쳐서 바쁘지만, 개학하는 3월이 되면 보조 인력들도 일이 익숙해지고 도서관도 한가해진다.

이용자들이 들어오면 바깥 냄새도 딸려 들어온다. 눈이 오는 것과 비가 내리는 것이 다르다. 눈 냄새는 알싸하고 비에서는 흙냄새가 난다.

아카시아꽃향이 책에 묻어오면 창밖에 아카시아꽃이 피었나 살핀다. 여기는 건물이 낮다. 창문과 땅이 가까워 풀꽃향기는 물론 미생물 냄새까지도 들어온다,


도서관 책은 이유 없이 없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이유를 달고 없어지기 일쑤다. 새 책이 자꾸 없어져서 보조 인력들과 서가를 샅샅이 뒤져도 나타나지 않았다. 사다리를 가져와 서가 꼭대기까지 뒤졌지만, 책은 나오지 않았다. 자기만 보려고 서가 맨 위에 책을 올려놓는 이용자가 있다. 서가 뒤로 빠지기도 해서 뒤에서 간혹 책을 발견하기도 한다.

자료실 입구에는 도난방지벽이 설치되어 있다. 책을 대출하지 않고 들고나가려면 ‘삑!’ 하는 굉음이 들린다.

“대출하려다가 깜빡했어요.”

“어! 이게 뭔 소리지?”

“놀래라. 대출하면 될 거 아녜요.”

이런 게 언제부터 그들 허락 없이 놓여 있었고,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게 매우 불편하다는 표정이다.

책 도둑과 꽃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건 옛날 말일 뿐이고,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일 뿐이다. 도시가스 난간을 타고 올라가는 좀도둑만 도둑이 아니다. 물론 책을 훔쳤다고 경찰서에 넘긴 적은 없고 훈방조치만 들어간다. 그들이 꼴사납다. 이런 내가 뻔뻔하다 해도 별수 없다. 누가 들키래?

책 사이에 도난방지 칩을 붙이는데, 그 칩을 찾아서 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 책 중간에 아주 얇고 가는 테이프 형식의 칩이 들어가 있어서 소리가 나고 안 나고 하는데, 그걸 알고 필요한 부분만 오려간다. 책을 쪼개 뜯어가는 일도 있다. 반납을 안 했으면서 반납했다고 우기는 경우도 일 년에 몇 번씩 있다. 우기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

사서 선생들도 실수를 한다. 대출이 안 되고 나가는 책도 있고, 반납처리가 안 돼서 서가에 꽂히기도 한다.


야간연장을 할 때 밤 8시가 되면 졸리다. 이날도 잠을 깨우려고 도서관 뜰을 돌고 있었다. 건물 뒤쪽 창문에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가까이 가보니 책이 한 권 풀섶에 떨어져 있다. 동시에 도서관 안을 들여다보니 어떤 젊은이가 몸을 감췄다. 소리를 쳤다.

“책! 창문에 던졌죠?”

뒷문으로 뛰어 들어갔더니 젊은이는 정문으로 잽싸게 도망쳐 버린 후였다. 창밖으로 책을 던져 훔쳐 가려고 했다. 그동안 이렇게 교묘하게 훔쳐 갔으니 아무리 찾아도 책이 없지.

사무실에 보고를 했지만, 범인은 잡을 수가 없다. 책을 창문으로 던져놓고 가져갔다는 것만 알 뿐이다. 건물이 오래되고 창문과 땅 사이가 낮으니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건물이 잘못했네. 이렇게 별별 일을 겪으면서 별이 지고 뜨기를 여러 날이 흘러 가을이 왔다.


이맘때가 되면 무기계약직 전환서류를 작성해서 시청에 올린다고 들었는데, 사무실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다. 나와 디지털 자료실 최 선생이 유력한 후보인데, 도서관 안은 너무 조용하다. 밖엔 고욤나무 열매를 쪼아 먹는 까치 소리만이 요란한데….

올해는 무기계약직 전환이 없단다. 달라졌다고 한다. 지역마다 높으신 그들 맘대로 그때그때 법이 달라지나 보다. 매년 똑같지 않다니 이해를 할 수 없다. 변동사항이 생긴다는 걸 알 수도 없고 알았다고 한들 어쩌겠는가? 디지털 자료실 최 선생은 너무 속상해 밤새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 출근했다.


아무하고도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다. 쉬는 날 낯선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왔다. 두세 시간 동안 스쳐 지나가는 창밖 풍경을 보며, 가슴을 달래고 욕심을 비웠다. 복수할 대상도 눈에 보여야 하지 아무런 방법이 없다. 울지는 않았다. 이런 일로 울었다면 눈물샘이 벌써 말랐을 거다. 내 것은 눈물 한 방울도 나눠주지 않을 테다, 시청 쪽 방향으로 노을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쳐다보지 않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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