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남도여행기
조선시대 선비들은 어떤 곳에 모여 풍류를 즐겼을까? 자연을 벗삼아, 술도 한잔하고, 시도 읊고, 지인들과 사상과 정치, 문화를 향유하는 곳을 '정원'이라 불렀다. 조선시대 정원은 정자과 연못 그리고 나무로 조성되어 있는 것이 기본이다. 우리나라 3대 정원 중에 하나인 소쇄원은 전라남도 담양군 지곡리에 있고, 조선 중종때 학자 양산보가 별장으로 지은 것으로 알려진다. 자연미와 구도면에서 조선시대 최고의 정원으로 손꼽일 정도로 아름다운 운치로 유명한 곳이다.
지금 담양 지곡리에 있는 소쇄원은 정유재란 당시 소실된 것을 다시 중수하여, 2동이 남아 있으나, 그 당시의 조선중기 호남의 사림문화를 이끌었던 인물들의 교류처로 손색이 없다. 당시의 유명한 유림인 송강 정철, 김인후 등이 드나들며 정치, 학문, 사상 등을 논하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소쇄원의 뜻은 양산보의 호에서 따온 것이란 것과 '맑고 깨끗하다'라는 뜻을 따서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정원은 일본식의 별서를 말하고, 원림이 맞는 표현이라는 말도 있다.
정원이 일반적으로 도심 속의 주택에서 인위적인 조경작업을 통하여 동산[園]의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라면 원림은 교외(옛날에는 성 밖) 에서 동산[園]과 숲의 자연 상태를 그대로 조경으로 삼으면서 적절한 위치에 집과 정자를 배치한 것이다. 그러니까 정 원과 원림에서 자연과 인공의 관계는 정반대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소쇄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으로 작은 정자와 함께 흙과 돌로 쌓은 자연스러운 담이 있는데 ‘애양단’, ‘오곡문’, ‘소쇄처사양공지려’의 석판과 목판글씨가 담벽에 박혀있어, 운치를 더한다. 왼쪽으로는 계곡물이 흐르는데, 더운 여름에는 맨발을 담그고 술 한잔과 함께 시 한수 읊어지고 싶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소쇄원의 전체 정경은 계곡을 중심으로 기다란 사다리꼴은 하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봉대와 광풍각 그리고 제월당이 있으며, 긴 담장이 동쪽에 걸쳐 있고, 북쪽의 산 사면에서 흘러내린 물이 계곡을 이루고 흘러내려와 담장 밑을 통과하여 소쇄원의 중심을 관통한다.
오곡문을 돌아 계곡위를 외나무 다리를 가로 질러 제월당으로 가는 길목에 담장위로 '소쇄처사양공지려'라는 문구가 들어온다. 우암 송시열이 직접 쓴 글이라 한다. 소쇄(瀟灑)는 양산보의 호이고, 처사(處士)는 벼슬 없이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를, 려(廬)는 임시로 거주하는 오두막집을 뜻하니 '벼슬 없이 초야에 묻혀 사는 양산보의 조촐한 보금자리'라는 뜻이다. 일종의 문패이다.
제월당(齊月堂: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은 주인이 사는 곳이다. 오곡문을 지나 담장을 가로 질러 올라가면 넓은 마당과 함께 산을 뒤로 하고 계곡을 바라보고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소쇄원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조선 중종 때 선비인 양산보가 처음 터를 잡아 가꾸었던 별서(別墅)원림이다. 별서란 여러 가지의 뜻을 갖는다. 일반적인 의미는 은둔생활을 하기 위한것, 효도하기 위한 것, 서구의 별장성격을 갖는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별서는 조선의 선비들이 세속을 떠나 자연에 귀의하여 은거생활을 하기 위한 곳으로 자택에서 떨어진 산수가 빼어난 장소에서 지어 진 볓러를 지징한다 하겠다.
제월당에서 마당을 가로질러 제월당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담장을 사이에 두고 작은 문이 하나 있다. 담장 밖으로는 사시사철 때에 맞춰 계절 꽃들이 히들어지게 피어있는데, 내가 찾은 봄날에는 매화꽃이 주변의 운치를 더했다.
“소쇄원”의 주요한 조경 수목은 대나무와 매화, 소나무, 난, 동백, 오동, 배롱, 산사나무, 측백, 치자, 살구, 산수유, 황매화 등이 있으며, 초본류는 석창포와 창포, 맥문동, 꽃무릇, 국화 등이 있다.
주인집인 제월당에서 작은 문을 지나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바로 계곡위로 광풍각(光風閣:비온 뒤에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란 뜻)이란 사랑방이 들어서 있다. 손님들이 거쳐하는 곳으로 간소하면서도 풍류가 있다. 소쇄원의 경우는 살림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조성되어 전원생활과 문화생활을 함께할 수 잇는 공간으로 만들어져, 당시의 유림 선비들이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
또한, 소쇄원은 생활기반인 창암촌과 지척인 곳에 위치하는 삶의 공간이며 사상적으로나 학문적으로 교류하는 사람들에게 강학하는 학문의 장소이며, 풍류와 위락의 공간으로 제공되어져 당대의 문인들이 누정가단을 형성하게 됨으로써 이곳은 풍경에서나 의미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소쇄원을 나오는 길목으로 대나무가 울창하게 서있고, 작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가 마지막으로 떠나가는 손님의 발목을 잡는다. 계곡을 건너지르는 외나무다리 약작略彴이라 하는데, 오곡문으로 가는 곳에 하나 소쇄원을 떠나는 곳에 하나가 있다.
전체적으로 아담하고 정갈하며, 운치와 낭만이 공존하는 조선 최고의 별서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 남도로 여행을 갈 계획이 있다면 담양의 소쇄원은 꼭 가봐야 할 유적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