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짐이 아니라 자산이 되어야 한다

경험과 지식을 자산으로

by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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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은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그 일이 일어났을 때 그가 무엇을 하느냐이다. 단순히 나이가 들었다고 경험이 ’자산‘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어떻게 소화하고 행동으로 바꾸느냐가 진짜 자산이라는 점에서, 60세 이후에는 경험과 지식을 짐이 아니라 자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 / 영국 소설가 -




'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 그가 상상한 미래의 사람들은 '불행'이라는 단어를 잊고 살아간다. 문명의 보호막 안에서 그들은 늙지도, 아프지도 않는다. 정해진 계급에 따라 일하지만, 요람에서부터 주입된 행복 덕분에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곳엔 가족도, 단 한 사람을 향한 애틋한 사랑도 없다. '엄마'라는 따뜻한 호칭은 오히려 상스러운 것으로 취급받는다. 불안이나 고뇌가 찾아올 틈은 없다. 그들에겐 언제든 행복을 가져다주는 알약이 있기 때문이다.

고통도 슬픔도 없는 완벽한 천국. 헉슬리가 그린 이 신세계는 정말 우리가 꿈꾸던 낙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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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한 점 없는 삶을 상상해 본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인간은 어머니의 치열한 산고를 견디고서야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본다. 어쩌면 하나하나의 생명이 그토록 귀하고 소중한 이유는, 우리가 삶의 과정에서 마주하는 고통과 인내 때문이 아닐까.


삶의 고통이 생의 가치를 증명하듯, 인간에게 '노동' 또한 단순한 생존 수단 그 이상이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찾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스스로의 자존감을 확인한다.


특히 오랜 시간 조직 안에서 치열하게 축적해 온 지식과 경험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훈장과도 같다. 평생을 바친 일터에서 물러난 이들이 해방감보다 깊은 상실감을 먼저 마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일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선 출근길, 치열한 경쟁, 관계의 갈등, 때로는 감내해야 했던 수모까지도... 돌이켜보면 그 모든 고단한 과정이 곧 치열하게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자존감의 근원이었다. 그렇기에 나이가 들수록, 삶의 의미를 증명하는 '일'은 더욱 소중하고 간절해진다.


성장을 멈추고 싶다면 안락함에 안주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더 나은 존재가 되길 꿈꾸고 참된 행복을 원한다면, 고뇌하기를 멈춰선 안 된다. 일을 한다는 것은 '고뇌'의 길을 계속 걸어간다는 것이다.


따사로운 봄볕 아래서는 결코 단단한 강철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쇠를 강하게 만드는 것은 용광로의 끓는 열기와 무수한 망치질이다.


안락함은 우리를 나약하게 만들 뿐이지만, 치열한 고뇌는 우리를 강하게 단련시킨다. 수많은 위인들의 일대기가 시련과 고난, 그리고 극복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나이들어서까지 증멸할 것이 더 있을까 싶지만,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계속 성장해야 하고, 육체적인 성장은 멈추었지만, 지적, 영적 성장은 나이들어서야 비로서 완성되는 영역이기에 오히려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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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은 다양한 사람들로 붐빈다. 특히, 강남을 가로질러 여의도로 연결되는 구간인 9호선 라인은 그야말로 극한의 구간이다. 역마다 서야하는 '일반열차'와 주요 역에서만 서는 '급행열차'가 혼재되어 있고, 고층의 사무실과 유명 사립학교, 관공서가 즐비한 구간이니 출퇴근 시간뿐만아니라 일상적인 시간에도 사람들로 혼잡하다. 요즘은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까지 여행가방을 들고 타는 구간으로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니, 잦은 몸부딪힘으로 불쾌감을 넘어 싸움과 사고로 이어질 경우의 수가 도사리고 있다. 실제로 출퇴근 지하철 현장에서 거친 몸싸움을 하거나, 음료컵을 들고 탄 여성과 피해를 입은 남성이 싸우기도 한다.


이처럼 언제든지 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다보니, 안전요원이 항상 배치되어 있다. 그런데 그 안전요원이 젊은 경찰이 아닌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다. 조금은 사무적이고, 불 친절하지만, 연륜이 되시는 분들이 이동을 통제하고, 줄서기를 안내하니, 크게 불평불만하지 않는다. 오히려 혼잡 속에서 반발하려는 청년도 있고, 개별 행동을 하려는 장년도 있었지만, 거듭되는 안내에 마지못해 줄서기에 동참한다.


젊은 혈기와 용기로 시작하는 청년들의 스타트업 프리젠테이션 현장에서도 은퇴하신 선배님들의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 그들이 경험한 비즈니스 현장의 노하우와 전략, 전술은 가이드가 되고, 훌륭한 나침반이 된다. 35년 경력의 전직 은행원, 엔지니어, 전직 CEO가 사업계획의 허점을 찾아주고, 인맥을 연결해 주고, 투자자를 소개시켜 준다. 그들은 경험을 자산으로 만들어 도와주고 있다


현장에서 신사업과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려는 업무 담당자들을 리딩해야하는 컨설팅 현장도 마찬가지다. AI시대에 맞는 비즈니스 전략을 수립하든, 중장기 정보화 전략수립을 기획하든 축적된 지식과 경험은 그들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준다. 물론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지속적으로 연마한다는 전제가 깔린다. 축적된 지식이 아무리 많다하더라도 급속하게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가기 쉽지 않다. 나이들어 더 공부하고, 지식 습득에 게으르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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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독일 등에서는 일자리에 대한 고민과 함께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정책적 제도의 시급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일도 안하고, 편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다. 더군다나 백세시대를 맞이하는 사회적 흐름에서 그동안 축적해온 지식과 역량을 봉인해 버리는 것은 사회적, 국가적 손실이 된다.


하지만, 나이들어 하는 일은 더 이상 돈벌이의 수단으로 자리매김하면 안된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고, 나누고 베푸는 일이 되어야 한다. 지혜를 나누고, 경험을 배풀고, 일품을 나누고, 자산을 베풀어야 한다. 그동안 폼잡고 대우받는 일을 했다면, 팔 걷어 부치고 헤드렛일을 해야한다. 머리를 쓰느라 육체가 편했다면, 육체를 써서 정신을 편하게 해야한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나르고, 지하철에서 안전을 책임지고, 새집에서 벽지를 붙이고, 음식점에서 청소를 하고, 컨설팅 현장에서 문서를 만들어내는 일에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일하고 가르치고 멘토링하면서 사회 속에서 일원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시대다. 빠르다는 것은 그만큼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빠르게 행동하며 시간을 벌어 또 다른 일을 하거나,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한다. 매사에 빠르게 처리해야하는 강박관념이 축약하고 요약하는 효율을 강제하였다. 효율이 강조되면서 인간의 여유와 느림은 사라졌다. 더불어 생각하는 시간도 줄었다. 인간이 더는 생각할 수 없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점차 품위를 상실하고 있다. 빠르게 선택하고 축약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인간성 오류다.


다시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 나이들어 하는 일은 가능하면 느리고 여유있게 일처리를 할 필요가 있다. 휴식을 더욱 달콤하게 만들어 주며, 삶 주변을 풍요롭게 가꿔줄 만한 일을 다시 찾아 나서야 한다. 작은 보수라도 손에 쥐여주는 것이 바로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일로부터 무작성 벗어나는 것이 현명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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