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전환점에 서서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새로운 자기를 세워 나가라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치노라,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그대들은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 니체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니체 철학은 인간의 나약한 부분을 지적하면서 삶을 개선할 수 있는 강력한 정신적 무기를 제시한다. 그의 생각은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가치 있는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지, 현재의 고통과 역경을 어떻게 감수하고 극복할지에 대해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세상의 시선과 타인의 기대에 얽매여 살아왔다. 중년이 되어 바라본 나의 모습은 정말로 내가 원했던 모습이 아니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원하지도 않는 길을 걸어왔다. 자신의 꿈보다는 돈과 명예를 좇으며 살아왔다. 그렇게 살다 보면 인생의 중반에 이르러서는 안정이 찾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중년이후의 삶은 오히려 가족에 대한 책임감, 사회가 주는 압박감으로 인해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길을 잃어버린 채 나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자신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다.
니체가 ‘차라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극복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은 자신을 극복한다는 것이 진정으로 나답게 사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나답게 산다는 것이 바로 니체가 말하고 싶었던 초인의 삶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나답게 살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니체는 “그대들의 이웃을 언제나 자신처럼 사랑하라. 하지만 우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가 되도록 하라”고 말한다. 스스로를 사랑하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존중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라는 것은 이기적인 인간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삶. 나 스스로도 얼마든지 존재감을 느끼고, 타인과의 교류에 앞서 내면과의 대화 그리고 진정한 나 만의 삶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람은 홀로 남겨졌을 때 불안을 느낀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유할 수 있다.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내가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면 받은 사람들은 그 사랑을 나에게 되돌려 준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나도 나 자신을 알지 못하는데 누가 나를 믿어 주겠는가? 타인과 관계를 갖기 전에 나와의 관계를 먼저 돈독히 해야 한다.
요즘은 모임을 자주하지 않지만, 업무상 꼭 필요한 모임과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는 친구와 후배들의 모임은 종종 하는 편이다. 어제도 그런 모임이 있었다. 간단한 저녁과 술 한잔 하며 지난 이야기와 가까운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전부다. 그 중에 최근 대기업에서 은퇴하고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었다. 대기업에 있을 때는 밤낮과 주말을 가리지 않는 살인적인 스케쥴과 미팅, 회의로 스트레스를 받던 친구다. 하지만 중소기업으로 옮기고 한순간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 쉴새없이 울려되던 전화벨소리, 카톡소리도 사라지고, 수시로 불려가던 미팅과 회의도 사라졌다. 너무 시원하고, 행복한데 단 하나 매일 만나던 사람들과의 모임을 끊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가능하면 매일 약속을 하고 저녁 늦게까지 술먹고 들어가는 길이 다반사라는 것이다. 진정한 나를 찾고 나의 소중한 시간을 사랑하는 나다운 삶이 무엇인지 찾을 필요가 느껴졌다.
수시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한다
나답게 살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수시로 고민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뿌연 안개 속에서 일어난다. 예견할 수 없는 우리의 인생은 참 막막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나는 어떤 일에 실패할 수도 있고, 직장을 잃을 수도 있으며, 내가 원하지 않는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가치 없는 존재가 되는 건 아니다. 성공하는 삶을 사는 것도 나이고, 실패하는 삶을 사는 것도 나이다. 구겨진 만 원짜리 지폐가 천 원짜리가 되지 않는것처럼 실패하고, 외면당해도 여전히 나는 나인 것이다. 나는 어떤 일을 잘하든 못하든, 어떤 성과를 내든 내지 않든 나로서 가치가 있다. 나답게 살기 위한 출발점은 나를 오로지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남은 삶을 나답게 살려면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 지나온 과거를 바라보아야만 한다. 눈을 감고 마음의 눈으로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는 시간을 자주 가져 보라. 자신의 온전한 모습은 내면의 자아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 때 찾을 수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그만큼 높고 멀어야 한다. 수시로 자신을 돌아보고, 다양한 모습의 나를 인정하는 것이 진정으로 나다워지는 길이다.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타인을 부러워하지도 말자. 내 몸도 나의 것이고, 내 영혼도 나의 것이다. 자신을 소중한 사람이라고 여길 때 비로소 인생이 온전히 나의 것이 된다.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나도 거울을 자주 보려 한다. 거울을 보면 겉 모습 속에 숨어 있는 나를 조금 더 잘 볼 수 있을 거 같아서이다.
마음이 이끄는 일을 한다
나답게 살려면 마음이 이끄는 일을 해야 한다. 우리는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한 상태에서 다른 새로운 상태로 가는 과도기에 있다. 과도기의 삶은 상승과 하강의 연속으로 인해 변하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고 초초하다. 특히 자신이 원하는 삶과 현실 간의 괴리로 인해 괴로움을 느낀다.
니체는 그의 책 ‘차라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을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로 비유한다.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있는 중간 존재이며 짐승에서 초인으로 가는 과정에 있다. 우리는 짐승 쪽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초인 쪽으로 갈 것인가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독일의 낭만주의 화가인 ‘카스파르 프리드리히’의 작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의 중앙에는 바위 절벽 위에 검은색의 외투를 입고 오른손에 지팡이를 쥐고 서 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는 저 멀리 안개로 덮인 산등성이를 내려다 보며, 자신의 지나온 날들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높은 곳에서 무한한 대자연을 고독하게 바라보는 남자의 모습이 현재 인생의 전환점에 서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원하는 본연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평범한 인간의 굴레를 벗어나 ‘초인’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전반전에 목표를 달성한 이들 중 상당수는 현실에 안주한 채 흐지부지한 삶을 살아간다. 반면, 뜻대로 인생이 풀리지 않은 이들은 세상을 탓하거나 운명을 원망하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새로운 꿈을 향한 여정에서는 언제든 나쁜 패가 나올 수 있고, 최악의 상황이 거듭될 수도 있다. 심지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이때 우리를 파멸로 이끄는 가장 위험한 적은 외부에 있지 않다. 바로 우리 내면에 잠자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이다. 이 감정에 휘둘려 자신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결코 나다운 삶을 살 수 없다. 현실에 안주하는 나태함을 털어낼 때 비로소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생겨난다. 자신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강해질수록 두려움과 포기라는 무기에 맞설 용기도 커진다. 그 싸움을 견뎌내면, 어느 순간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거듭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증명하라"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요구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 나는 이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더도 말고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나의 능력을 발견하고, 내 안의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고, 스스로를 증명하면 된다. 내가 여전히 무수한 실패에도 다시 일어나 무한 반복으로 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다운 삶을 사는 사람은 항상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삶을 추구하는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