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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옥 Dec 19. 2023

[직장탈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어쩌다 직장

[더불어 행복한 일이 의미 있는 일이다]


보다 충만한 직업의 세계를 원한다면 먼저 스스로 의미 있는 일을 더 많이 하려고 애써야 한다. 자유를 선택해야 한다. 사물의 척도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 자신이 만물의 척도가 되고 싶은가? 우리 자신을 측정할 무언가를 갖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결코 만물의 척도가 될 수 없다.     


모든 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떻게 일하고 싶은지, 그에 대한 책임을 떠맡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느 정도나 사회의 압력을 참고 견딜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그 사이 우리는 개인의 성공이란 단순히 더 많이 일하는 것, 점점 더 많이 일하는 것 이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점점 더 많은 돈은 성취감을 불러오지 못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렇다면 인생의 성공을 완전히 새로 정의해야 하지 않겠는가.     


개인의 성공이란 단순히 “더 많이‘가 아니다. 개인의 성공은 '성장'이다. 몇 퍼센트 프러스 식의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이다. 진정한 개인의 성공이란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는 대신,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개인의 성공은 그저 업무를 처리하는 대신,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다. 개인의 성공은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로 판명되는 것이다.      


성공은 타인이 느끼는 의미, 나의 가치부여에서 나온다.
그리고 타인이 느끼는 의미가 바로 내가 느끼는 의미일 때
그 성공은 ‘충만한’ 성공이 된다.     


몇일 전 전국의 대학교수들은 올해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라는 뜻의 '견리망의'(見利忘義)를 꼽았다. 지금 세상은 물질만능시대를 넘어 지극히 개인 이기주의로 치닫고 있다. 위로 정치인들로부터 일반 서민의 안위와 행복은 뒷전이고, 오로지 자신과 그들만의 영광을 위해 일한다. 전세왕, 빌라왕이란 전세 사기범들은 물욕에 눈이 멀어 수많은 서민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만들었다. 자신의 자식만 귀하다고 여기는 일부 학부모들의 그릇된 행동으로 선생님들의 사명의식이 희미해지고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의미 있는 일인가?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타인에게 의미가 있는 일을 더 많이 해야 하며, 나의 일만 해서는 안 된다. 자아의 성취, ‘자아실현’에만 맞춰진 촛점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불어 잘 사는 것'이다. 나만 행복하고 나만 잘사는 것은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삶이 될 지는 몰라도 타인에게는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없다.     

의미 있는 일이라 해서 무조건 거창한 것을 상상하는 것은 잘못이다. 세계를 구원해야 하거나, 지구상에서 가난을 없애는 것도 아니며, 암 치료제를 개발하거나 독재정권에 맞서 투쟁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그 활동으로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작은 틀 안에서 소수의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일지라도 말이다.      


의미 있는 일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선사한다.
하지만 그 목표가 반드시 원대하고 금방 눈에 띄는 것일 필요는 없다.     


또한 의미 있는 활동은 배고픈 예술이나 돼지 목에 건 진주목걸이나 숨은 선행이 아니다. 물질적 보상을 포함해 어떤 형태로건 더불어 행복한 충만감이 있어야 의미 있는 활동이라 부를 수 있다.     


반향은 낡은 산업시대의 계약에 따른 일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증상이다. 타인에게도 의미가 있는 활동만이 반향을 얻는다. 반향을 얻지 못하는 것은 살아남지 못한다. 오래 가지 못하고 미래가 없다.   

  

의미 있는 활동과 관련된 또 하나의 개념은 '깊은 충족감'이다. 자신의 세상이 일치된 듯한 놀라운 감정 말이다. 모든 것이 맞아떨어진다는 느낌, 자부심도 덩달아 춤을 춘다. 이런 감정이 솟구치도록 자신도 한몫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마음의 그릇이 꽉 채워진 듯한 느낌, 에너지의 흐름, 교류에서 오는 깊은 만족감도 추가된다. 이 모두는 나직한 행복이다. 소리치는 환호가 아니라 조용하고 차분한 기쁨이다.   


[더불어 행복한 일을 해야 충족감이 커진다]


물론 외부의 반향(호응, 반응)이 없어도 어느 정도의 성취감은 가능하다. 우리는 텃밭을 갈아 파종을 하고 잘 자라는 채소를 보면서 깊은 만족감을 느낀다. 봐주는 이 없어도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을 보면서 그 멋진 사진 속 풍경에 감탄을 터트린다. 완벽한 파도를 낚아챈 서핑선수는 그 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보지 않아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 모든 순간이 아름답다. 하지만 이것은 취미와 애호의 수준에 머무른다. 아름답고 멋지며 성취감을 안겨줄 수 있지만, 우리가 지금 말하려는 의미 있는 일하고는 거리가 멀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보다 의미 있는 활동을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할 목표이다. 물론 모두가 의미 있는 일만 해야 하고, 다른 건 하면 안된다는 소리가 아니다. 그건 비현실적인 넌센스다.      


그러나 좋은 일, 남들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일만 전부가 되거나 유일하게 가능한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는 의무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의무 저편의 공간을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차츰 그 공간을 넓혀나가야 한다.


이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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