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준비를 위한 휴학
2020년 5월부터 시작한 온라인 보건학 석사과정의 1년이 끝나갈 무렵, 3중고를 겪으며 석사 공부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었다.
첫째는 과도한 업무강도 (3달 차 역학조사관의 일기)
둘째는 휘몰아치는 입덧
셋째는 쉼을 갈구하는 비루한 몸뚱이
덕택에 꾸역꾸역 지나온 4월까지의 2과목은 어떻게든 넘겨왔는데 5월에 과제를 제출해야 하는 수업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들은 적이 없었다. 당연히 원격 세미나 등 교수와의 1:1 질의시간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제출은 해야 했기에 선택하면 안 되는 금단의 길을 선택할 지경이었다.
'과제를 사는 것'
공부를 못했기에 당연히 검수하지 못한 남이 끄적여준 과제는 역대 최저 점수를 받는 것으로 마감을 했다. 퇴사까지 한 달이 남았고, 한 달 이내에 재 과제를 제출해서 통과하지 못하면 당연히 석사 과정에서 자동 탈락되는 고배를 맛봐야 했기에 재 과제 제출일을 연기하는 것을 신청했다.
퇴사는 5월 말일이었고, 다음 직장의 입사 일자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라 휴학을 할지 말지, 하게 되면 얼마나 할지 고민했다.
직장이야 다니던 곳에 같이 일하시던 분과 하는 일이었으니 적응시간에 큰 어려움은 없겠지만, 이사도 가야 하고, 출산도 준비하고, 출산휴가 하기 전에 4개월 안에 업무를 매듭지어 놓고 가야 하는 빠듯한 일정이 있었다. 과연 이 4개월 안에 수업 두 개를 더 듣고 휴학을 할지, 바로 지금부터 쉬고 갈지 머리가 아팠다.
하루라도 빨리 종료를 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은 과한 욕심이 우선이었으나 "아이"라는 변수는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안 해본 영역이라 좀 더 느슨하게 가기로 마음을 먹고 휴학 일정에 대해 담당 어드바이저와 전화 상담을 했다.
담당 어드바이저란?
석사 과정을 전담 관리해주는 개별 담당 선생님; 한국에는 없는 제도이며 영미권에서 대학생 및 대학원생이 되면 한국에서 의미하는 담당 조교 혹은 멘토 선배 등의 의미로 정식 교직원 중 한 명이 지정됨. 전공과 관계없는 교직원이지만 학업 일정, 졸업 후 계획, 전공 공부의 정도, 기타 전산 및 장학 문제 상담 등을 주기적으로 관리함
대학교 휴학과 마찬가지로 휴학은 내 맘대로 할 수 있지만 돌아오는 기간은 내가 진행했던 학점과 돌아올 때 들을 학점이 겹치지 않고, 계속해서 들어야 할 미래의 학업 과정 계획을 세움으로써 협의가 된다.
나의 경우는 총 13개의 수업 중 6개를 완료했고, 남은 7개를 하기 위해선 9월 혹은 2022년 1월에 들어와야 한다. 나의 출산일과 새로 들어가는 직장에서의 시간들을 듣더니 1월 22일에 시작하는 과목을 듣는 것이 베스트 플랜일 것이고 만일 1월에도 못 들어오고 연장하게 된다면 4월이 그다음이 될 거고 4월도 안되면 6월이나 9월로 미뤄진다고 했다.
일단 1월에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휴학 기간을 작성했다. 휴학 일정 결정과 함께 carousel을 선택했다. 내가 다니는 석사 과정은 총 3개의 Carousel로 되어 있는데 기본 4과목이 Basic Carousel, 중간 전공심화 2과목과 선택 2과목이 Second Carousel, 마지막 담당교수가 정해지고 연구 논문 작성을 배우는 4과목이 Dissertation Carousel이 된다.
작년 한 해 동안 기본 4과목 과정을 끝냈고, 중간 전공심화도 끝냈다. 선택과목을 정해야 하는데 이 학교의 보건학 석사에는 일반 보건학, 정신보건, 국제보건 세 개의 옵션이 있다.
일반을 할지, 그전부터 관심 있고 잠깐이라도 일해봤던 국제보건을 할지, 고민을 하다가 국제보건으로 선택했다. 이유는 단순히 일반 보건학이 그토록 듣기 싫어라 했던 지난번 보건경제학 과목과 유사한 성격을 가져서 국제보건이 차라리 낫겠다, 싶은 생각으로 선택했다.
그리하여 내년 1월에 다시 들어오는 게 스케줄상 적절하여 출산하고 한 달 몸 풀고 다시 들어가기로 했다. 그럼 정확히 1년 수업 듣고 졸업할 수 있다.
게으른 몸뚱이가 부디 잘 버텨서 예정대로 1월에 학업을 다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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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와중에 소소한 논문 소식도 있었다. 작년부터 리젝(거절) 당하던 중국 살 때 쓴 논문이 통과됐다! 과제 패스보다 어려운 게 논문이라는데 꾸준히 논문을 내고 있어서 벅차다. 물론, 20% 노력과 80%의 훌륭한 선생님들과 같은 배를 타서지만 말이다.
학생 의사가 꾸준히 수술실 들어가서 건수 올리는 느낌? 학력과 경력이 거꾸로 가는 느낌이랄까.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