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동거기
2021년 2월에 아기가 나의 뱃속 아래 자리를 잡고 한참 동안 콩알인 상태로 몸의 주인도 모르게 무럭무럭 싹을 틔우고 있던 시절에 모체는 이리저리 바삐 확진자 동선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차를 타고, 공장으로, 카페로, 회사 사무실로, 음식점으로 아침부터 밤까지 돌아다니다 어느 날 2월의 끝자락에서 대단한 피곤함을 느꼈지.
'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하고, 생각이 들 정도로 피로함. 벌컥벌컥 카페인이 가득 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루 2잔 이상씩 들이키며 그만둘 수 없는 일을 꾸역꾸역 해나가며 1분 1초를 보냈다.
3월이 오고, 생리 예정일이 다가오면서 보건소 직원부터 맞게 되는 아스트라제네카 1차 접종일도 함께 왔다. 접종은 돌아오는 토요일, 생리 예정일은 동일한 주 월요일.
'어라, 이상하다. 아무리 피곤해도 삼교대가 아닌 이상, 칼같이 지켜서 하는 선홍빛 핏물이 나오지 않는다. 설마, 주기로 따져봐도 우린 안전했는걸?(피임방법 중 가장 허술한 생리주기 계산법은 노노, 철저한 가족계획은 도구와 약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화요일, 수요일.......
일주일도 아니고 겨우 이틀이 더 지났다.
설마 하는 마음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예방접종도 못 맞게 되면 미리 말해주어야 폐기되지 않으므로 남편에게 퇴근길 픽업하러 오기 전에 임테기-임신테스트기-를 사 오라고 했다.
결혼생활 햇수로 4년 차.
그간 5개 정도의 임테기를 한 줄로 버린 적이 있었으니 이번도 그중 하나일 거라는 생각으로 임테기를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퇴근 후 집 도착 오후 9시 30분.
화장실에 들어가서 검사 시약이 두 줄로 뜬 시간 9시 42분 언저리.
나는 포효하고, 남편은 얼이 빠졌다.
6번째 임신 테스트기용 스틱은 그렇게 '축! 당첨'과 같은 소식을 알려주며 사진에 박제된다.
동기 주사님(보건소 및 지방 행정부처에서 각자를 부르는 호칭)께 먼저 호출을 했고, 기쁨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마음을 쏟아냈다.
"피곤한 게 그런 것 같았어."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경험자의 조언을 시작으로 앞으로 우리가 헤쳐가야 할 일에 대해 푸념 아닌 푸념을 서로 늘어놓고 한참을 통화하다 다음 타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정, 시댁, 친구들 톡방 등등
소식을 알리고 나니 좀 덜 얼떨떨해질 줄 알았으나 다음날 아침 출근길까지도 둘 다 넋이 나갔다.
이게 무슨 일이지.
임신도 생소하고, 내 자식도 생소하고, 임신하면서 역학조사관 하는 건 더 생소한 일이었다.
앞으로를 어떻게 견뎌나가야 할 것이며, 내 몸의 변화들이 언제부터 시작될 것인지,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 것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아직 멀쩡하니까 좀 수월하지 않을까. 남들과는 다르게 살아온다고 자부했으니 이번에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퍽이나,였다.
보기 좋게 입덧은 8주가 되어 시작하며 나를 정신없이 흔들어댔다. 확진자 숫자도 가파르게 올라가며 누가 봐도 이건 무리가 되는 레이스가 시작된 것이다. 살림하고 있는 남편은 임신해서 장시간 및 고된 업무를 하는 와이프를 지켜보는 게 고문 같다 느껴졌는지 본인이 일을 하겠으니 부디 지금 일은 그만두라고 설득했다.
그렇게 6개월간의 짧은 역조관 생활은 막을 내리고, 한 달간의 휴식기를 거쳐 이전에 다니던 직장으로 옮겨갔다. 하던 일은 그대로 계약직 연구원 생활. 연구과제가 아닌 복지부에서 준 사업을 6개월 담당하는 것으로 계약을 하며 출산 준비를 하게 됐다.
역시나 이전처럼 빡세지 않은 분위기에서 정시 출/퇴근이 가능하며 앉아서 누구의 방해도 없이 편히 공부하는 것이 밥 벌어먹는 업무가 되는 곳이었다.
주로 하는 일과는 관련 논문을 찾고, 해당 문서를 끌어와서 원고를 작성하고, 수정하고, 거래처와 연락하며 제한된 사업비 안에서 사업을 진행시키는 것.
그마저도 행정을 전문으로 봐주시는 선생님이 계셔서 전보다 업무가 반으로 줄어서 오로지 공부하고, 글 쓰는 것만 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미뤄둔 대학원 공부도, 같이 하자고 했으면서 나만 쏙 빠졌던 국제보건 연구 진행도 다시 합류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나 저기나 공통점이 있다면,
"아기가 엄청 똑똑할 거야!"
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는 점이다.
머리 쓰는 일이 많다 보니, 특히 역학조사나 연구나 외국어의 비중(외국인들과 대화할 일이 많음+영어로 논문 읽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일들인지라 옆에서 보기엔 엄마가 태교를 안 해도 저 정도로 공부하고, 외국어 쓰면서 일하면 애기가 똑똑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하시나 보다.
상관관계가 전혀 없진 않겠으나 정작 엄마 본인과 아기는 똑똑한 것과 내 삶은 별개인 삶을 살 것이라 자부한다.
가장 조심해야 할 임신 극초기부터 입덧이 끝날 무렵이라는 16주까지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하던 아기는 이제야 비로소 다른 아기들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게 됐다.
스멀스멀 태동이라는 것을 엄마가 느끼고 나서부턴 가감 없이 본인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책을 읽으려고 잠깐이라도 배 위에 책을 대고 있으면 사정없이 모서리 부분을 걷어찬다.
'역시, 내 딸이군. 나를 답답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거부한다는 자기 의사표현의 시작이군.'
예민한 기질의 부친과 둔하지만 기묘하게 독특한 모친의 유전자가 염색되면 어떤 기괴한 돌연변이가 나올는지, 무서울 정도로 기대가 된다.
현재 우리의 동거는 안정권에 들어서긴 했으나 입덧이 사라짐과 동시에 얼굴 여드름이 다시 꽃을 피고, 온몸에 소양증이 시작됐다. 괴로운 임신 중 증후군을 부지런히 일과 공부로 채워나가고 있다.
직장 근처에 시립 도서관이 있어서 핸드폰 사용 시간을 줄이고자 독서를 꾸준히 시작한 것도 달라진 점 중 하나다.
확실히 어른들이 독서를 많이 하라는 말은 일리가 있다.
게으르고 나태한 인간이 좀 관심 있는 책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아주 쪼끔 지 할 일을 찾아 나서거나 집중을 하려는 시도라도 하게 된다.
손바닥만 한 바보상자를 들고 주야장천 봤던 짤, 동영상을 반복해 보는 것보단 조금 더 유익한 일을 하고 있어서 살짝 뿌듯한 요즘이다.
이사도 잘 끝났고, 남편도 다니는 직장에서 칼퇴를 하고, 안정적인 삶이 되니 문득 4개월 후의 우리 인생에 대해 겁이 나기도 한다.
'육아'
그 방대한 홍해를 가르기 위해선 어떻게 살게 될지, 겪지 않아 아득하지만 이전처럼 지나가는 수밖에 없겠지.
대문 그림 출처 - [거의 정반대의 행복] 글/그림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