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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니 Oct 06. 2020

한국에서 집 구하기

3년 차 신혼부부의 임시거처 구하기

2020년 8월

서울에서 자취를 해 본 경험은 없다. 대학생 때 집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가서 타지 생활은 해본 적 있지만 처음엔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 나머지 기간은 기독교 동아리 활동하면서 지내는 공동 숙소에서 동기들이랑 같은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온전히 혼자 자취를 해 본 경험은 에티오피아에서의 2년 가까운 시간뿐이었다. 그것도 서울에서 해 본 경험이 아닌 특수 케이스였기에 서울에서 여자 혼자 산다는 것은 묘한 호기심과 두려움의 무엇이었다.


방을 구하는 것부터 난항이었다. 가격은 어찌나 비싸고 남편이 귀국하게 되면 짐도 쌓아두고 살 곳을 찾아야 해서 평수도 너무 작으면 곤란했다. 그나마 회사가 있는 곳이 강남권이나 판교 같은 어마 무시하게 비싼 곳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회사 근처에서 40-50 선에서 찾으려니 맘에 드는 곳을 찾기가 힘들고, 혹시 언제 출국할지, 혹은 이직할지 모르니 1년 임대 대신 단기 임대를 원하니 더 어려워졌다.


주 4일 근무라 금요일마다 출근하듯 회사 근처로 와서 방을 보러 다녔다. 3주간을 그렇게 발품을 팔아서 방을 구한 것이 모두 꽝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월 지출액이 적길 바랬던 나 자신에게 남편이 관대한 타협점을 허락했다. 관리비랑 기타 공과금 등을 생각해서 월별 집으로 지출되는 금액의 파이를 예상보다 늘리도록 하여라.


처음엔 보증금을 대출 좀 더 받더라도 월세를 40선에서 절대 올리지 않고자 했으나 남편은 단기 임대가 구해지지 않더라도 단기라 생각하고, 월세 70까지 올려서 찾아보아라, 했다.


그래서 오피스텔로 눈을 돌리고 검색해보니 생각보다 안전하고 조용한 위치와 내가 좋아하는 중고층의 투룸 크기의 방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업무를 끝내고 방을 검색하던 중, 회사 근처 역에서 가까운 큰 길가에 높은 오피스텔이 눈길을 끌었다. 허위 매물만 아니면 괜찮은 조건의 보증금과 월세였다. 대출이 필요 없는 우리 수준의 맥시멈 보증금에 예상한 70보다 훨씬 낮은 금액대. 관리비도 다른 오피스텔에 비해 저렴한 편이었다. 보통 10-15만 원 선의 관리비보다 2배가량 저렴했다.


바로 전화를 하니 허위는 아니고 알고 보니 부동산은 그 오피스텔 1층에 있어서 해당 건물의 방만 주로 올리고 중개를 하고 있어서 집주인 사기나 중개인에 대한 의심이 비교적 안심할 수 있었다. 등기부등본과 이것저것 확인하고 계약서를 쓰고 가계약금을 걸었다. 방은 사람이 살고 있고 짐이 많아서 구석구석 보진 못했으나 그럼에도 넓어 보이고 쾌적해 보일 정도라서 이 정도면 괜찮다, 생각이 들어 바로 계약했다.


잔금 치르는 날

이삿짐은 세 번에 걸쳐 날랐다. 잔금 치르는 날, 간단한 청소도구 갖고 와서 계약하자마자 입주청소를 스스로 했다. 입주청소는 어딜 가나 늘 나 혼자 했다. 중국에서도 부러 사람 불러도 만족스럽지 못하단 평이 많아 늘 내가 했다. 남편이 요리는 잘하는데 청소는 은근히 소질이 없어서 내가 혼자 와서 하고 싶은 대로 구석구석 닦는 게 후련해서 업무 분장이 자연스럽게 되었다.


그다음 날, 엄마 차에 책상이랑 업무용 스크린 싣고 와서 조립하고 정리했다. 문제는 별 거 아닌 짐에도 깜빡하고 빼놓은 게 있었는데 이불이었다. 대충 바닥청소 한 번 하고 나름 이사랍시고 짜장면 시켜먹고 낮잠 자다가 같이 친정집으로 귀가했다.


그리고 다시 다음날, 캐리어에 이불이랑 반찬 싸들고 택시 플렉스로 삼 일간의 이사를 끝 마쳤다(생각보다 택시비가 얼마 안 나와서 놀랐다. 엄청 먼 것 같으나 그리 가깝지는 않은 친정-회사 통근길. 마치 가족의 거리 같은 기분이다).


이사를 다 마치고 편의점에서 퇴근하여 장 보면서 오는데 많이 외롭고 쓸쓸할 줄 알았는데 좋다. 일하기도 편하고, 집에선 엄마가 시끄럽다고 음악도 잘 못 틀게 했는데 지금은 맘껏 틀고, 에어컨도 감당할 수 있는 몫으로 선선하게 틀어놓을 수 있고 말이다. 인터넷 공유기가 한대뿐이라 방이 많은 본가에서는 끝 방까지 와이파이 신호가 약해 큰 고충이었는데 지금은 그럴 걱정 없이 잘 터진다.


인터넷 설치에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오피스텔 같은 곳은 대개 한 곳에서 건물주가 몰아서 계약을 하기 때문에 다른 회선을 끌고 오기가 어렵다. 그걸 몰랐던 우리 부부는 다른 인터넷 가입을 알아보고 개인정보를 다 내어드리고 하다가 결국 안되어 도루묵으로 원래 관리실에서 설치하라는 인터넷으로 설치했다. 남편이 다른 인터넷이 혜택 더 좋으니 알아보라 했다가 일이 어그러져 이틀간 나만 연락하고 고생한 것이 되자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중국에서도 말썽 일으킨 적 없는 인터넷 설치로 한국에서 며칠간 고생하다니. 역시, 언어만이 문제가 아니구나, 싶다.


음식물 쓰레기 봉지가 따로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부산 살 때도 칩을 꽂아서 정해진 시간에 내놓으면 됐는데 음식물도 종량제에 버리다니, 다행히 건물 바로 아래 편의점에서 판다. 1인 가구 특화된 곳에 혼자 살기는 확실히 편한 것 같다.


신기한 점은,

어릴 때부터 집에 혼자 있으면 느껴지는 외로움, 고독, 쓸쓸함이 1도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 혼자 있고 코로나로 누구 만날 일도 없어서 주말에도 집에 혼자 들어앉아있는데 대학생 때 기숙사에서 홀로, 부산 공동체 숙소에서 주말마다 집으로 간 친구들 빼고 방에 홀로, 에티오피아 어느 시골집에서 개 짖는 소리 들으며 홀로, 중국 신혼집에서도 격일로 당직을 서던 남편 덕에 홀로 있던 지난 날들 중 그 어느 때보다 혼자 있는 공간에서 외롭지가 않다. 조금 자라서 그렇다기 보단, 남편이 있다는 안정감과 이런 혼자 있는 시간이 그래 봤자 한 달뿐이라서 오히려 즐겨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 그런 것 같다.


본가에서 나오니 남편의 연락이 잦다. 쓸쓸할까 봐, 뭔 일 있을까 봐 본인 틈 날 때마다 연락을 자주 한다. 떨어져 지내서 슬프고 힘든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부부라는 것이 주는 안정감과 끈끈함이 주는 비 고독의 느낌이 이런 것이구나 느낀다.


*10월 2일부로 홀로, 욜로, 솔로는 종지부를 찍었고, 다시 2시간 통근러하며 자가 격리하는 남편에게 아늑한 보금자리를 내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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