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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니 Oct 25. 2020

난생처음 F를 맞았다

온라인 대학원생 페일 뜨다

2020년 8월

고작 두번째 모듈만에(전체 13개 과목 중 두번째) 페일이 떴다. (울음울음)

우리로 치면, 과목에서 F를 맞은 것이다. 

물론, 내가 게으르게 미루다 벼락치기를 해서 글자수를 다 못 채웠다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긴 했다.


그래, 내잘못인거를 누굴 탓하리..

허나 한국이라면 그냥저냥 씨 정도로 넘어갈 수도 있을 일이 두번이면 강제 퇴학되는 에프라니..

정말 잔인한 점수의 세계이다.

*점수는 0점에서 가점되는 요인들로 점수가 채워지는 형식이다. 100점 만점에서 마이너스 요소들로 인해 점수가 감점되는 대부분의 한국 대학 혹은 대학원들과 다르다. 한국의 대학원은 절대평가로 이뤄지고, 일부러 돈과 시간을 들여 직장인 혹은 풀타임 연구생이 학교를 다니는 곳이라서 대학원생이 F를 맞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 한다. 


우리 학교가 이렇게 빡신걸까.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 선생님의 경험담을 들어보니 그냥 한국 학교들이 비교적 점수를 취업은 할 수 있게끔 주는 것 같았다. 뭐, 내가 다닌 간호학과도 모두가 열심히 하고, 상대평가니까 나처럼 최악의 점수를 받으며 졸업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영미권은 더 하겠지.


남편도 첨엔 자신이 거봐라 열심히 하랬잖냐, 하다가 이내 심각해졌다.

이런식으로 열번도 더 남은 고개를 넘을 수 있겠냐, 언능 딴 길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니냐, 이제 해외에 사는 것도 아니라서 한국에서 코로나가 종식될 때까지 있을 것 같은데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도 생각해봐라.


그러게 할 수있을까...

그러나 이미 두번의 학비를 지급해서 포기하기도 아까웠지만 더 가다가 중도에 강퇴당하는게 더 아깝겠지?

하는 생각으로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공부해보기로 한다.


다행히도 8월 초에 끝난 모듈이라 다음 모듈을 시작하기 전까지 3주간의 시간이 있었다. 

(간격이 좁은 과목이 페일 뜨면 후~, 그 다음에 생각하자)


과제를 하고 나면 피드백이 주어진다. 성의있게 길게 써줄 때도 있고, 그냥 이건 좀 뉘앙스가 그래, 하는 식으로 애매모호하게 말해줄 때도 있는데 이번엔 Fail이라 그런지 엄청 디테일하게 적어주셨다. 

grade가 50이 넘어야 패스다. 아래 피드백 파일에 과제에 대한 평가가 들어있다.

그것들을 토대로 먼저 다음 모듈 전까지 재과제를 완성하기로 했다. 담당 어드바이저 선생님과 통화하면서 one to one 세션에 들어가서 과제에 대해 전반적인 조언을 해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보라고 하셔서 드디어 처음으로 사용해봤다.



One to one session

박사과정 대학원생이 과제를 봐주고 조언해주는 45분간의 일대일 과외를 화상으로 받을 수있는 시스템이 온라인 과정생이든 오프라인이든 누구에게나 무료다. 전에도 시도했으나 한 번은 내가 한국시간과 영국시간을 헷갈려서 놓쳤고(사과메일 보냈으나 답변이 없었음), 두번째는 제시간에 들어가서 기다렸음에도 수락을 해주지 않아 못했다.


그래서 이건 잘 안되는 시스템인가 보네 하고 놓치려던 찰나, 지난번에 수락을 해주지 않았던 ‘리더(과외 멘토)’가 메일을 보내왔다. 여차저차해서 다시 시간을 바로 다음날로 잡고 연결했다.


내 글과 피드백 받은 글을 보고는 서론부터 뭘 써야할지 또박또박 말해줬다.

결론은 하나. 

“Answer the question”

딴소리 하지말고 질문에 답변을 해라.

중언부언하지말고 짧게 짧게 문장을 써서 답변을 해라.

다음 시간까지 서론을 완성해서 검사받기로 하고 그렇게 첫 번째 세션 만남은 종료되었다.


일주일간 열심히 다시 수정하여 두번째 검사를 받았는데 그 때 받은 지적은 Intro와 Conclusion이 여전히 말이 많고 핵심적이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으잉? 난 막 자료 늘어놓고 결론 쭉 다 말하면 잘 하는 건 줄 알았는데?

그래, 다시 해볼게. 

그 즈음 동기 왓츠앱 채팅방에서 최고점을 받은 친구들이 과제를 공유해주어 그들의 과제를 접해봤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있겠지만 대개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직역하면 초등학생이 말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문체를 쓰고 있었다. 

"아이들이 최근 살이 많이 쪄서 운동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 프로그램은 아이들의 건강에 도움을 준다."

"따라서 나는 이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싶다."


영어를 잘 못하니까 길고 길게 어렵게 써야만 하는 줄 알았던 내게 경종을 울리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다시 과제를 수정하여 업로드했고, 멘토분은 굿잡을 외쳐주셨고, 이정도면 충분하다는 컨펌이 내려와 무사히 제출을 했다는 눈물겨운 스토리였다.



2020년 10월 현재

페일이 뜨고나면 두번째 재과제는 다음 모듈이 끝나기 전까지 하면 된다. 제출하는 창도 새로 열었다는 시스템 메일이 오면 제출이 가능하다. 아직 결과는 이번 모듈이 끝나야 나오는데 무난하게 통과하길 바래본다. 이번에도 패스하지 못하면 온라인 석사 이야기는 여기서 마감하게 될 것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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