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마냥 좋았던 때가 있었다. 밤을 지새워도 뭔가 아쉬움이 남는 그때. 내 나이 스물일곱. 어른 될 준비가 안된 미숙한 철부지가 결혼을 했고 가장이 됐다. 어설픈 어른 놀음에 신이 났고 총각 때 버릇을 그대로 이어갔다.
결혼 전부터 의기투합해 만든 친구와 선후배 모임이 많았다. 매월 만나는 정기모임도 모자라 수시로 몇몇이 모여 댔다. 토요일까지 근무하던 때였으니 주말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애시절 데이트마저도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닭갈비집, 찻집, 민속 주점을 친구들과 함께 다녔다. 성격 좋은 아내는 친구들과도 잘 지냈다. 친구들도 고3 우리 반 끝 번호로 아내를 부를 정도였다.
집을 살 형편이 안돼 신혼살림은 직장 관사에서 시작했다. 관사는 시내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친구들보다 좀 일찍 결혼을 하니 우리 신혼 방은 아지트다. 총각들끼리 모여 술 한잔하다 술집이 문을 닫을 시간이면 택시를 타고 우리 신혼집으로 왔다.
새벽 1시든 2시든 무작정 술을 사들고 들이닥친다. 양심은 있어 전화는 했다. 졸린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면 다짜고짜 들이댄다. '둘 다 지금 하던 일 그대로 꼼짝 말고 가만히 있어. 금방 들어간다.' 전화를 끊는 순간 바로 초인종이 울린다. 악동들이다. 게슴츠레 한 눈으로 문을 열어주며 아내 눈치를 살핀다. 아내는 ‘뭐야 이런 게 어디 있어?’하면서도 웃으며 안주를 준비한다.
아내는 술상을 봐주고 한참을 동석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밤새 술을 마시다 거실 이쪽저쪽에 널브러진 친구들은 아내가 아침상을 차리고 깨워야 일어났다. 출근하는 친구들 도시락까지 챙겨 손에 들려준다.
친구들은 여자 친구가 생기면 가장 먼저 아내에게 소개했다. 몇 해 지나지 않아 여럿이 결혼을 했다. 입장이 바뀌어 녀석들이 신혼이 되니 발 길이 뚝 끊겼다. 밤새 몰려다니던 친구도 철이 든 건지 불쑥 초인종 누르는 녀석이 없다.
사십을 넘긴 어느 해 옛 추억을 더듬다 아내가 이런 말을 한다. ‘그땐 외로웠어.’ 순간 가슴이 턱 내려앉았다. ‘언제?’하면서 머릿속으로 지난 필름을 돌려본다. ‘신혼 초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관사에서 신랑 돌아올 때만 기다렸는데 맨날 늦게 오지. 변두리에 있으니 친구들도 자주 만날 수 없었잖아 모두 바빴고.' '그렇게 외로울 때 당신 친구들이 밤늦게 오긴 했어도 난 그때라도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덜 외로웠어.' 한다.
몰랐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니 아내도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친구들을 반겨줬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외로웠다는 말에 한없이 미안하다. 철딱서니 없는 남편이었다. 나야 학창 시절부터 많은 시간을 함께한 친구들이니 뭘 해도 좋았지만, 아내는 함께 한 시간이 짧은데 어찌 나처럼 좋았을 거라 생각했을까? 생각이 짧아도 너무 짧다. 아이 육아도 힘든데 친구를 끌어들인 남편이 미울 만도 한데.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그 조차 위안 삼았다는 말이 마음을 후빈다. 그걸 사십 넘어 안다는 게 더 부끄러웠다.
아카시아꽃이 화사하게 핀 며칠 전. 머리가 희끗해진 친구들과 차 한잔 하며 추억을 꺼내본다. 친구들에게 아내는 헤어진 애인부터 지금의 아내까지 모든 비밀을 간직한 판도라 상자이기도 하다. 신혼의 밤을 기습한 악동들의 출근 도시락 싸준 이야기는 전설이다. 내가 많이 미안했던 시절이었는데 녀석들은 지금도 아내를 최고로 기억한다.
집에 와 아내에게 친구들과 옛날이야기했다고 하니 아내 왈 ‘힘들고 외롭긴 했어도 그때가 좋긴 했지. 그래도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