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알리는 새소리와 함께 침대로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비몽사몽 잠이 덜 깬 채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는다. 지난밤은 제법 선선했다. 더위로 잠을 설친 게 바로 어제였는데 하루 사이에 요술을 부린 듯 기온이 변했다. 아내는 아직 한 밤중인지 조용하다. 어제도 잠을 설쳤나 보다. 또 거실과 방을 몇 번을 오가며 쪽잠을 잤을 거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몸의 변화도 수용해야 한다. 아내는 쪽잠을 자더라도 잠 못 든다고 조바심 내지 않고 그러려니 하며 지낸단다.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아들인다. 빼꼼히 열려있는 아내 방문을 들여다보니 침대가 비었다. 화장실에도 없다. 주방 가스레인지도 조용하다. 넓지 않은 집안에 숨을 곳도 없는데 보이지 않는다. 식탁에 올려진 낯선 자동차 키가 잠을 확 깨운다. 아~ 맞다. 아내가 없지.
이틀 전 아내는 접촉사고를 당했다. 횡단보도 앞에 정차하고 있는데 주의를 살피지 못한 뒤차에 받혔다. 몇 해 전에도 비슷한 접촉사고로 허리를 다쳐 고생했는데 다시 사고가 난 것이다. 적반하장으로 큰소리치는 뒤차 운전자의 기세에 눌려 아내는 당황했다. 차분히 차를 이동하고 상황을 설명했으나 여전히 듣지 않고 아내차가 갑자기 서서 사고가 났다고 탓을 했다.
보험사를 부르고 사고처리를 했다. 상대 보험사 담당자는 뒤차의 잘못을 인정했으나 여전히 운전자는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아내의 사고 전화를 받고 정황을 들어보니 분명 뒤차 잘못인데 계속 아내를 향해 큰소리친다고 하니 어이없음을 지나 분노가 치민다. 보내온 사진을 보니 뒤 범퍼가 깨졌다. 아내도 충격으로 허리가 아프단다. 보험사 담당자는 차량 수리 및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접수해 놓겠다고 했다. 아내가 운전은 할 수 있다고 해 조심히 오라고 했지만 아픈 몸으로 운전할 아내가 걱정됐다.
아내가 집에 도착했고, 온열 찜질기를 틀어놓고 쉬게 했다. 차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니, 횡단보도 신호등이 들어와 아내는 정지선에 정차했고, 뒤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와 그대로 받는 장면이 찍혀있었다. 사고영상을 보험사에 보내주고 나서 뒤차 운전자의 과실을 입증할 수 있었지만 운전자의 사과는 받지 못했다.
사고 난 차는 수리를 보냈고 보험사에서 렌터카를 보내왔다. 차종도 다른 차라 조작이 낯설다. 몇 번 운행해 보면 익숙해지겠지만 왜 이런 불편을 겪어야 하는지 화가 난다.
뒤차 운전자와는 통화할 수 없어 상대 보험사 담당자에게 언성을 높이며 항의했다. 아내는 그런 내 모습이 든든하단다. 내 편이 있어서 좋았단다. 가해자가 큰소리치며 아내 탓을 할 땐 내가 잘못했나 하는 생각까지 했는데 아니라고 싸워주니 든든하단다. 우리는 지금껏 서로에게 내편이었다.
하루 지나니 아내가 목도 허리도 점점 아프다고 했다. 며칠이라도 집중치료해야 빨리 낫는다는 의사 소견에 따라 입원시켰다. 침도 맞고 찜질도 했다. 병원 밥을 한 끼 먹고 나니 싱겁단다. 집에서 간단한 밑반찬을 가져왔다. 병실은 쾌적했지만 온도 알레르기가 있는 아내가 잘 잘지 염려가 된다.
아내가 없는 캄캄한 집안에 들어서니 썰렁하다. 차키를 식탁에 올려놓고, 불을 환하게 켜본다. 평소 작은 등 하나만 켜고 살았는데 오늘은 다 켰다. 조금 밝아지긴 했어도 빈자리는 여전하다. TV 소리도 키워놓고 채널을 무한 반복 돌려본다. 맘에 드는 방송을 찾지 못하고 돌리기만 한다. 내 속도 시끄러운가 보다. 유튜브와 TV를 번갈아 보며 시간을 소비한다. 혼자인 밤을 그렇게 묘한 감정으로 보냈다.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아침을 먹었다. 아내는 오전 진료가 있어 좀 늦게 나와도 괜찮다고 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한다. 빨래도 개고 분리수거도 했다. 더 이상 할 일이 없는데 한 시간도 안 지났다. 라디오를 들으며 혼자 커피 마시는 게 일상이었는데 오늘은 내키지 않는다. 분리불안인가?
머잖아 혼자인 때를 맞게 되겠지? 며칠의 강제 솔로 경험으로 갑자기 큰 의미를 깨달은 건 아니다. 얼마 전 질병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가 생각난다. 퇴직하고 이제 여유를 찾나 했는데 안타깝게도 갑작스레 떠났다. 친구일과 아내 사고가 겹치니 지금의 시간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진다.
사랑 표현하는데 인색하지 말자. 함께하는 모든 일에 감사하자. 밴댕이 속이지만 대인배 흉내를 내보자. 지금처럼 텅 빈 거실에 앉아 후회라는 단어를 곱씹지 않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