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을 넘긴 세 자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들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가을을 향해 가고 있다. 시간이 느리게 가길 바라는 마음을 알기나 한 듯 차들이 길게 막아선다.
2시간 정도를 달려온 터라 이쯤에서 화장실을 한번 들려야 했다. '휴게소에 들를까요?' '아니 괜찮아 아범 필요하면 들려'를 몇 번 하신다. 운전에 방해될까 봐 참고 계신듯해 가까운 휴게소에 들렀다. 어머니는 올해 여든여덟. 허리는 굽어지고 눈도 침침해지셨다. 지팡이에 의지해 조금씩 걸음을 옮기신다.
화장실 입구에서 어머니 나오시길 기다렸다. 어머니는 나오면서 좌우를 살피신다. 아들이 어디 있나 확인하신다. 이내 나를 보시고 옅은 미소를 보이시며 지팡이를 옮긴다.
하늘이 흐렸다. 오후부터 비 예보가 있다. 비 오기 전에 도착해야 하는데 아직 한 시간은 더 가야 한다. 목적지는 어머니의 큰언니와 막내 여동생이 있는 서산이다.
며칠 전 저녁을 먹고 일어서려는 참에 전화가 왔다. 어머니다. '아범 혹시 추석 지나고 시간 되면 서산에 다녀올 수 있나?' 묻고 계셨지만 가자는 강력한 요청이셨다. '서산에 무슨 일 있어요?' '아니 막내이모 생일도 있고 큰 이모도 볼 겸 한 번 가고 싶어서...' '막내이모 생신이 언제인데요?' '이번 주 금요일이래'. 이번 주 금요일이면 삼일 뒨데 내겐 20일도 더 남은 추석 지나고 가보자 하신다. 갑자기 가자고 하긴 못내 미안하신 모양이다. 내 스케줄을 좀 보고 전화드린다고 하고 끊었다.
이모들 얼굴 보러 가고 싶단 말씀은 여러 번 하셨었다. 그때마다 일이 바빴다. 아니 흘려듣기도 했고, 어머니 입장에서 생각해 보지 못했다. 세월의 흔적이 쌓이고 나니 그 말씀이 지나쳐지질 않는다. 옆에서 듣던 아내가 추석 지나서 가려하지 말고 막내 이모님 생신에 맞춰 이번에 다녀오란다. 마침 주말에 특별한 일정도 없다. 어머니께 이번 금요일에 가자고 전화드리니 '나야 가면 좋지만 아범 바쁘지 않아?' 목소리 톤이 좀 올라가셨다. 그렇게 어머니와 오랜만에 여행길에 나섰다.
큰 이모와 막내이모는 같은 서산에 사신다. 전화로 소통이 가능한 큰 이모님을 먼저 모시고 막내이모 집으로 향했다. 사실 막내이모댁은 주소를 모른다. 전화로 여쭤 봤지만 서산농협까지 와서 전화하라는 말까지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막내이모는 귀가 잘 안 들리신다. 보청기를 하셨지만 휴대폰 소리는 잘 안 들리신다고 했다. 서산농협에 도착하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다. 막내이모와 연결된 전화는 서로 다른 말을 크게 하고 있다. 오래전 TV 퀴즈프로그램 중 음악이 크게 나오는 이어폰을 쓰고 서로 문제를 내는 '고요 속의 외침'을 보는 듯하다. 한 참을 헤매다 만난 막내이모는 비가 오는 길가에 우산도 없이 언니들 마중을 나와계셨다. 차로 5분여 거리를 삼십 분 정도 서로 헤매다 막내이모댁에 무사히(?) 도착했다.
93세 되신 큰 이모, 88세의 어머니, 86세의 막내이모. 드디어 세분이 소파에 앉았다. 염색을 해 모두 검은 머리셨지만 허리는 굽어지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다. 잘 듣지 못하시는데도 세 분은 소통이 되시나 보다. 옛날이야기를 하시며 연신 웃음꽃이다. 청력의 문제는 대화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구나를 느꼈다. 때론 혼자 묻고 답이 없으니 혼자 답하시기도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결혼 전에 서로 멀지 않은 이웃집에 살고 있었고, 스물한 살 앳된 나이에 아버지와 말 한마디도 못해보고 결혼을 하셨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는 시어머니가 머리 예쁘게 파마라도 하라고 하셔서 파마를 했고, 결혼식 사진이 나와 친정에 사진을 전해주러 갔단다. 무척이나 완고하신 친정아버지는 파마를 하고 온 딸을 보자마자 어디 머리를 그 모양으로 하고 왔냐고 작대기를 들고 나섰고, 친정오빠가 말려주셨다는 이야기부터 세 자매의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함께 보낸 풋풋했던 소녀시절부터 결혼 후 지금까지, 얼굴에 깊게 파인 주름만큼 굴곡진 세월의 이야기를 덤덤히 쏟아내신다. 팔순을 넘긴 노인이 아닌 갓 시집온 새댁, 꽃같이 예뻤던 처녀들이다. 모처럼 한 방에 누운 세 자매는 밤을 새울 것 같았지만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일찍 주무셨다.
다음 날 막내이모 셋째 딸이 대접하는 한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식사를 하면서도 맛있는 반찬을 언니, 동생 앞에 옮겨 놓기를 반복한다. 세 분 다 식사량이 많지 않으시다. 둘째 딸이 하는 카페에 들렀다. 마침 벌초하러 온 큰 외삼촌댁 조카들을 카페에서 우연히 만났다. 세 자매는 십여 명의 조카와 손주들 사이에서 서로 안부를 물으며 연신 웃고 계신다. 모처럼 잔치 분위기다.
카페를 나와 차로 이동하는 동안 조카들은 세 자매를 서로 부축한다. 차에 타기 전 헤어짐의 인사가 길다. 세 자매는 잡은 손을 쉬 놓지 못한다. '다시 볼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건강하게 지내라!' 큰 이모의 말에 모두 같은 말로 인사한다. 멀리 가야 하는 내가 먼저 차를 대고 어머니를 차에 모셨다. 천천히 움직이는 차의 열린 창밖으로 내민 어머니 손과 이모들 손이 스친다. 우리 차가 카페 정문을 나설 때까지 이모들은 손을 흔들고 계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머니는 아범 덕에 언니랑 동생을 봤다며 고맙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덤덤히 말씀하신다. '이제 언제 또 보겠냐~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지...' 마지막이란 말씀이 아프다. 아니 그 말씀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듣는 내가 송구스럽다. '아니 또 와서 뵈면 되지 뭘 마지막이라 그래요?' 했지만 여든을 모두 넘긴 세 자매는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인사를 나누셨다.
땅거미 내려앉은 시간에 집에 도착했다. 오랜 여행을 하고 돌아온 느낌이다. 강한 줄만 알았던 어머니의 여린 새댁을 만나 안쓰러웠고, 팔십 년 이상 인연을 이어 온 자매들의 추억을 만난 웃픈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