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세 May 15. 2024

내 영혼의 숙주, 우울

어느새 우울은 나와 한 몸이 되었다.

언제부터 우울해졌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착한 아이여서 친구들에게 종년 취급을 받아서? 아니면 이상한 소문 때문에 친구들을 몽땅 잃어서? 무엇이 나를 우울하게 했는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아직도 내가 불행하다는 것이다. 재학증명서를 내는데 AI가 인식하지 못하자 이가 갈렸 동네 PC방에 엑셀이 깔려있지 않아 마음이 갑갑해졌다. 별일이 아니지만 세상이 망해버린 것처럼 짜증이 나 미쳐버릴 것 같고 악 소리가 절로 났다. 약을 복용하고 있어도 별 효과가 없는 것 같다. 사주 앱을 열어 핵기신 대운이니 뭐니 어쩔 수 없다며 나를 위로해 본다. 그럼에도 좀처럼 기분은 나아지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며 바람을 쐬면 괜찮아질까.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보면 다시 우울해진다. 영원히 우울의 덫에 갇힐 것만 같다.


전화를 걸 데가 없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하지만 아빠는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내가 죽어버린다느니 힘들어서 못 살겠다느니 엉엉 소리를 내면 그제야 인기척을 낸다. 그게 아니면 답장을 하지 않는다. 엄마는 나를 차단한 건지 문자를 확인하지 않는다. 엄마는 나보고 아빠가 늙어버렸으니, 당신의 노후를 책임지라고 난리다. 그 말에 "내 앞가림도 못하는데 누가 누굴 책임져?" 하고 말했다. 벌건 엄마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친구들은? 나는 좁은 시골 동네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졸업했다. 고등학교 때 따돌림을 당한 게 트라우마로 남아 그 지역의 사람들을 차단한 상태다. 대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은 가깝고도 먼 사이다. 무엇보다 힘든 내 마음을 이러쿵저러쿵 털어놓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삶과 즐거움이 있는데, 내가 방해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나의 집, 학교 도서관


내게 남은 건 딱 한 곳 있다. 학교 도서관이다. 그게 뭐 별거냐고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겠지만 나한테는 매우 특별한 장소다. 출입카드가 오류가 나 지름길로 지 못해도 상관없다. 자꾸만 오게 된다. 그 이유를 굳이 꼽자면 전화로 나를 추가합격 시켜 준 이 학교가 너무 예뻐서, 여대이기 때문에 남자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진짜 본심은 그냥 좋으니까. 아빠가 내게 버럭 화를 내서 수술한 지 일주일도 안 된 발로 잘 곳을 찾을 때 학교 도서관이 나를 반겼다. 엄마가 자꾸 취업 얘기를 꺼내며 빚쟁이처럼 나를 독촉할 때 나는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 쇼파 밑에는 바퀴가 득실거린다고 한다. 그래도 좋다. 누가 뭐래도 학교 도서관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이런 글을 브런치에 써도 될까


우울증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약에 대해 무지하고 약 복용 시간을 번번히 놓친다. 아자아자 내일의 나는 더 행복할 거야! 하고 무한 긍정의 마인드를 가진 것도 아니다. 다만, 살기 위해 글을 쓴다. 나는 사람들에게 내 얘기를 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데 커뮤니케이션의 대가인 희렌님에 따르면 나 같은 사람은 매력이 없다고 한다. 직접 시간을 내어 타인의 삶이 궁금한 이들 아니라면야 내 이야기를 할 곳이 없는 셈이다. 현대 사회는 참으로 각박하다. 사람들은 대화를 할 때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얘기에만 집중한다. 내가 쿠바에 관한 책을 얼마나 열심히 읽었는지 떠들자 주희 언니가 내 말에 집중하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학교 도서관에 앉아 글을 써 본다.





우울한 에세이 하나쯤은 괜찮지 않나? 세상에 행복한 사람들만 있으면 그건 유토피아지, 말이 안 되는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거져 준 옷이 나를 살릴 줄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