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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을 정리하는 법 Aug 14. 2018

쓰시마 섬에 갇혔어요

평범한 한 형제의 쓰시마 탈출기

 원래는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어구가 있는데, 나랑은 맞지 않는 단어였나 보다. 동생과 나는 처음 일본을 가는 목적지로 쓰시마를 선택했는데 이유는 따로 없고 집에서 가깝다 뿐이었다. 집에서 가까워서 '어라? 이렇게 가까운데 한 번도 안 가볼 순 없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정작 쓰시마 여행을 준비하면서는 이곳이 결코 쉽지 않은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버스는 하루에 몇 편 운행하지 않고 택시는 대부분이 콜택시로 운행하면서 숙박은 굉장히 비싸고 막상 걸어 다니기엔 대부분이 산지라 쉽지가 않다. 하지만 이 좁은 섬이 그토록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전혀 신선한 각도에서 바라본 풍경들과 예기치 못한 사건들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친절 덕분이었다.

한참 세찬 비바람이 불더니 잠시 잔잔해진 숙소 앞

 히타카츠항(比田勝港)으로 들어가 이즈하라항(厳原港)에서 나오는 배를 끊었지만 쓰시마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갈 때까지 이즈하라항을 들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사실 이렇게 말하니 표현이 엄청 거창하지만 으레 여름이면 한반도나 일본 열도를 강타하는 태풍이 하필 우리가 쓰시마에 있을 때 대한해협을 지났기 때문이다. 히타카츠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동생과 카미소에서 깼을 때 창밖 상황이 예사롭지 않았음을 기억한다. 거의 호텔 밖을 나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세찬 바람에 날린 솔잎과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고 하늘은 짙은 회색을 띠고 있어서 동생과 오늘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우선은 아침을 먹기로 했다. 식당엔 우리와 함께 배를 타고 히타카츠에 들어온 수녀님 몇 명을 포함한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침밥을 먹고 나서 비는 그쳤고 호텔 앞에 나가서 식빵을 굽고 있는 고양이를 만지다가 바다 구경을 잠시 하고 이즈하라로 내려갈 짐을 꾸렸다.

히타카츠를 떠나는 버스안 차창에 빗방울이 부딫힌다

 쓰시마 관광 홈페이지에서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고 첫차를 타고 니이(仁位)에 내려 막차를 타고 이즈하라까지 마저 이동하면 충분히 와타즈미 신사랑 에보시타케 전망대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마침 섬 날씨가 워낙 오르락내리락 하니 니이에 자다 깨서 도착했을 땐 버스 차창의 빗방울이 다 말라있었다. 산길을 구불구불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서 자기에 쉽지 않은 승차감이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쓰시마를 찾는 이유가 면세 혹은 자연이라고 했을 때 충분히 여느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덩굴이 감긴 나무나 이끼, 매와 산고양이 등이 '자연'쪽 이유를 납득시켜주었다. 니이에선 쨍쨍한 햇볕이 내리쬘 정도로 날씨가 좋아져서 버스에서 함께 내린 한국인 부부와 함께 택시를 타고 에보시타케 전망대에 올랐다. 에보시타케에서 바라본 아래는 빛이 많이 산란되어 보이는 짙은 파란색 바다에 초록색 언덕이 살짝 비현실적으로 떠 있는 것 같았다. 분명 지각 어딘가 뿌리를 박고 있는 섬일 터인데 위에서 바라본 모습은 마치 부유하는 초록색 생명체 같았다. 니이의 명소이자 쓰시마 섬의 명소이기도 한 와타즈미 신사에서 고로케와 타코야키를 먹으며 바다로 가는 긴 문처럼 놓인 도리이를 구경했다. 마침 간 시기가 썰물 때라 모든 도리이가 잠긴 모습은 아니었지만, 자갈밭 사이사이에 게가 숨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니이에 있던 중국음식점, 이날 나는 일본식 중국음식에 눈을 떴다.
만제키바시를 지날 때 쯤

 우리는 그날 숙소로 이즈하라의 오렌지 민숙을 잡았기 때문에 오후가 되어 정류소 주변 중식당에서 텐진동과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일본식 중국 면요리를 먹으며 버스를 마저 기다렸다. 마침내 히타카츠에서 다시 또 출발했을 다음 버스를 잡아타고 이즈하라에 도착했다. 비는 그 와중에도 계속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해 쓰시마 섬 곳곳의 녹지를 더 울창하게 보이게 했다. 그때 만제키바시를 지나고 있을 때쯤 이곳저곳에서 휴대전화 문자가 왔고 부산과 대마도를 잇는 운항사에서는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출항여부를 알 수 없다는 문자가 와 있었다. 이내 버스 안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고 이즈하라 정류소에 도착한 관광객들은 어디로 전화를 걸거나 바삐 이동하기 시작했다. 나와 동생은 오렌지 민숙이라 적힌 작은 소형차에서 내린 주인아저씨가 투숙객들을 찾는 소리에 모여들었다.

 그 당시 대한해협을 지나갈 예정이었던 태풍의 여파로 오늘은 이미 배가 모두 결항되었고, 내일도 상황을 예측할 수 없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우선은 숙소로 가서 짐을 풀었고 내일 상황을 봐서 히타카츠로 다시 올라가거나 여행기간을 늘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안 그래도 섬 날씨는 짓궂기 그지없는데, 태풍의 영향까지 올라와 날씨는 꾸무정 햇빛을 보여줄 기미가 없었다. 그래도 꿋꿋이 민숙 주인분께서 추천해 주신 스시야, 가네이시 성터와 덕혜옹주 봉축 기념비, 쓰시마 박물관까지 걸어 다니며 이즈하라의 운치를 구경했다. 이즈하라 항구를 따라 바닷물이 강으로 이어지는 거리는 버드나무랑 다리가 많아 낮이면 훨씬 푸르른 분위기를 낼 것 같았다. 동생이랑 서로 다른 다리 저 건너편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너무 작게 나온 나머지 집에 돌아가니 서로 숨은 형제 찾기 사진이 되어있었다. 히타카츠에서 니이를 거쳐 이즈하라까지 나름 쓰시마를 종주한 일정은 숙소 근처의 식당 핫쵸(八丁)에서 맥주로 계획상 마지막 밤을 마무리했다.

그래도 꿋꿋이 마을 이곳 저곳을 잘 돌아다녔다.

최익현선생 순국비가 있는 수선사

 다음날 아침에 나는 꽤나 분주해졌는데 이즈하라항으로는 배가 들어올 수 없고, 히타카츠 항으로만 배가 들어오니 원하는 승객은 히타카츠발 티켓으로 변경해 줄 수 있다는 운항사로의 소식이 있었다. 숙소 주인분께서는 히타카츠로 가도 배를 탈 수 있을지 자리가 충분할지 미지수라며 회의적이셨지만 직접 선택하라는 말을 남기시며 혹시나 하는 상황에 본인이 알고 있는 근처 민숙이 있으니 배가 뜨지 못하면 그리로 연락하라며 번호를 주셨다. 아직 히타카츠행 버스가 오기엔 어차피 이른 시각이어서 무작정 걷다 어느 절에 들어갔는데 그곳에 있는 비석의 한자를 읽어 보니 '대한인최익현선생순국지비'라 적혀있었다. 이 몹시 좁은 동네에 우리나라의 길고 험난했던 역사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다시금 숙소로 돌아가 전화를 붙들고 운항사에 전화를 걸어 부산에서 대마도로 오는 배가 출발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고 한 시간쯤 뒤 배가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까지 듣고 '부산에서 배가 도착했으니 어떻게든 다시 부산으로 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히타카츠행을 결심했다. 

다시 돌아올 줄 몰랐던 히타카츠

 돌아가는 버스를 타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 마저도 쉽지 않았다. 흡사 피난길을 연상시키는 (사실상 틀린 말은 아닌) 긴 줄에 버스에 다 탈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이즈하라의 남은 버스들이 줄지어 버스 부대가 출발했다. 자리에 앉고 짐도 얹고 통로 사이사이에 낚시 도구며 여행가방이며 가득 찬 버스에 서서 이즈하라를 떠났다. 사실 쓰시마를 관통하는 시내버스인 만큼 쓰시마 사람들의 주요 교통수단인데 한국인 관광객들로 가득 찬 버스 탓에 쓰시마 사람들은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그때마다 미안한 감정과 고마움이 스쳐갔고 올 때와 같은 길을 전혀 다른 심정으로 돌아가는 길이 길게 느껴졌다. 그렇게 히타카츠에 도착하고도 줄을 서서 남은 배의 티켓을 받기 전까지 긴장의 끊을 놓칠 수 없었다. 돌아오는 배를 항구에서 기다리며 한 숨 놓았을 때, 큰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던 가까운 섬 여행이 흥미진진한 탈출기가 되기까지 이즈하라 민숙의 주인아저씨부터 버스 기사님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했던 시민들의 배려까지가 생각이 났고 그렇게 무사히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무사히 탈출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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