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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을 정리하는 법 Oct 02. 2018

여기는 아루샤 미션 로지

함께 있었던 모든 이에게 감사하며

 장기간 다녀온 여행은 글로 쓰는 게 훨씬 버겁더라고요. 아마 그 길고 긴 이야기 중 어느 것을 추려내어 어떻게 엮어야 하나 고민이 많아서 그런가 봅니다. 이번 여름 한국이 폭염에 시달릴 때 한 달간 아프리카에 있는 탄자니아에 해외 봉사를 다녀왔습니다. 다들 아프리카라 더워 걱정을 하던데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아루샤에서는 아침은 서늘하고 낮은 선선한 쾌적한 환경이었습니다. 집은 아니었지만 집처럼 정이 들어버렸고 매일 왕복 3시간에 달하는 오프로드 출퇴근길을 다니면서도 즐거울 수 있었던 아루샤 미션 로지를 소개합니다.


시작 그리고 첫인상

 시작이 순탄하진 않았습니다. 원래 봉사기간 동안 머무르려 했던 대학 기숙사의 예약이 불발되어서 출발 직전 급하게 머무를 장소가 정해졌고 사전 답사도 없었고 주변 로드뷰도 심지어는 주소조차 없이 사진 두장으로 확정된 그곳이 미션 로지였습니다. 그래서 킬리만자로 공항에 도착하고서부터 엄청난 불안감에 처음 미션 로지와 주변 동네를 마주했습니다. "저기야? 저기라고?"소리는 어둠 속에서 웅성웅성 댔고 가로등 하나 없어 집집들이 초를 켜고 생활하는 모습, 화롯불에 옥수수, 생선등을 구워 파는 모습이 여실히 보였습니다. 아마 제가 묵었던 숙소가 있던 동네 중에서 가장 어두웠던 곳이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나중에서야 탄자니아의 학생들을 만나 얘기해 보니 주소는 원래도 없는 곳이고 (대신 건물마다 P.O.BOX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키젠기에 있는 로지라고 하니 "아아~"하며 다들 알고 있었습니다. 

 그 불안함과 어두움 속에서 저녁을 먹으러 가자는 교수님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 붙어 식당까지 걸어갔습니다. 그 걸어가는 길조차 큰 개가 나다니고 세상 처음 볼 동양인들이 신기한지 연신 치나(China)라 외치며 더군다나 어두워 우리끼리도 잘 안 보이는데 그 큰 눈들이 우리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배를 채우고 돌아오니 조금 상황이 나아 보였습니다. 일단 울타리가 있는 3층짜리 건물이고 따뜻한 물이 나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물은 나오고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인도 파하르간지에서도 잤는데 거기보단 긍정적이겠지' 여행을 하는 데 있어 그 전 여행이 기준이 되고 또 위안이 되는 순간들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3층에 있는 방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래도 꽤 넓은 매트리스가 놓인 나무 침대, 샤워꼭지가 있다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고, 빨간 보가 덮인 책상이 하나 있고 철장에 둘러싸인 티브이가 있었습니다. 역시나 호기심에 틀어봤지만 티브이는 아무 신호도 잡지 못했습니다. 비오킬, 모기향 등등 만반의 준비를 다 해두고 탄자니아의 첫날 잠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노곤해 잠에 들기도 잠시 새벽 네시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간에 일어난 것은 시차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닭이 아침 해를 보고 우는 동물인 줄 알았는데 그저 새벽만 되었다 하면 우는 동물이었습니다. 어차피 닭소리에 깨는 건 일주일도 채 안 갔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조금 일찍 아침을 맞이해 이슬 혹은 밤새 내린 빗물이 채 마르지 않은 창문을 열고 안갯속에 비친 달라달라(미니버스 느낌의 탄자니아 교통수단) 불빛 혹은 양파 가판대 그리고 물통을 이고 가는 어머니들을 내내 구경하다 그림도 그리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미션 로지에서 처음 맞이한 아침 풍경이었습니다.


부엌과 베이비 아주머니

 우리가 낯선 이 숙소에서 금세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숨에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아 버린 아침과 저녁 덕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엌을 총 책임지는 베이비 아주머니는 매우 상냥하고 수줍음이 많지만 유쾌한 분이셨습니다. 매일 아침 푸짐한 쌀빵과 아프리카페를 차려 두시고 종종 달큼한 생강차가 든 보온병이 테이블에 올라 있기도 했습니다. 삶은 달걀이랑 마요네즈 그리고 아보카도를 으깨 탄자니아식 서브웨이를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이곳 탄자니아에서 먹은 아보카도는 정말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아보카도를 칭찬했더니 그다음부턴 매끼 빠지지 않고 아보카도를 챙겨주셨을 정도로 우리가 무슨 빵을 더 좋아하는지 삶은 카사바의 간은 어떨지 하나부터 열까지 저희를 세심히 챙겨주셨고 덕분에 피곤에 절어 있을 법한 한 달간의 봉사에서 먹을 걱정이 없었다는 것 만으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미션 로지의 저녁은 3가지의 메뉴 중에 고르면 됩니다. '치킨, 비프 앤 피시' 그리고 밥에 비벼먹을 수 있는 스튜와 볶은 야채가 함께 나왔습니다. 생선과 치킨은 푸짐하게 구워져 나왔고 비프는 스튜처럼 뭉근하게 끓여 나왔습니다. 어느 메뉴 하나 빠짐없이 맛있었지만 우선 베이비 아주머니의 가장 큰 요리 비법은 유기농 채소들이었습니다. 부엌 찬장엔 언제나 색감 좋은 야채들이 모여있었습니다. 토마토와 적양파 주황색 당근과 오이가 아주 잘 자랐다는 듯 제 색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비단 미션 로지뿐만 아니라 봉사활동을 했던 스타고등학교와 수녀원에서도 이런 유기농 야채는 탄자니아에서만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입이 마를새 없이 선생님들과 수녀님들도 자랑을 해 주셨습니다. 아마 이렇게 화학조미료 맛을 안 보고 오랫동안 있어본 적은 이번이 처음일 것입니다. 덕분에 간혹 라면을 끓여 먹을 때 "으아 원래 이렇게 짰었나?" 싶기도 했지만요.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과 즉석떡볶이 그리고 김자반과 센터장님의 쇠고기 볶음 고추장으로 푸짐한 한식을 먹을 때도 있었습니다. 요리라고 하기엔 인스턴트가 다지만 그런 날이면 베이비 아주머니는 거리낌 없이 부엌을 내주셨습니다. 부엌 전등은 너무 작아서 두세 명이서 휴대전화 손전등을 켜면 성냥으로 가스스토브에 불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1층 로비가 꽉 차게 열두명 혹은 오스만이 올 땐 열세 명이 앉아 저녁을 먹으면 금세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니코와 이웃 주민들

 니콜라우스는 미션 로지 로비에서 지내는 식구입니다. 첫날 미션 로지에 도착했을 때 이곳을 지키는 가드도 있으니 걱정 말라는 얘길 들었었는데, 그게 니코를 두고 하는 말인지는 그땐 몰랐습니다. 사실 그다지 믿을만한 가드인지는 모르겠으나 방청소부터 늦은 시각 맥주 부탁까지 항상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열심히인 직원이었습니다. 매번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우리와 영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손짓 발짓 다 써가며 우리가 문화 공연으로 연습하던 강남스타일 춤을 따라 배우기도 하고, 갑자기 높이뛰기를 하는가 하면 우리가 밥을 먹고 있는데 저 멀리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춰 종종 당황케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따라 해주면 더 좋다고 까르르 웃었습니다.

 탄자니아에 도착했을 때가 이번 월드컵 기간과 겹쳐서 우리는 마당에 있는 브라운관 티브이나 로비의 흑백 티브이로 축구를 봤습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니코가 훅훅 허공에서 축구를 하는 시늉을 하기도 하는 마당에서 있다 보면 옆집 꼬마 아이도 윗동네 사는 지나가던 케빈도, 우리에게 멋진 옷을 지어준 재단사 아주머니의 어린 딸도 우리와 함께 놀다 가곤 했습니다. 


고마운 우리의 친구 오스만 

 오스만에 대해서는 입이 마르도록 칭찬만 해도 그 이야기가 끝이 나지 않을 겁니다. 사실상 탄자니아에서 있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오스만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매일 출근시간마다 버스를 불러주고 매일 그날 저녁은 뭘 먹을지 물어봐주고 숙소에 문제가 있으면 바로바로 해결을 해주는 성실함의 대명사였습니다. 미션 로지의 가족이면서 봉사를 끝내고 떠날 사파리의 투어 회사 직원으로 만나 서로의 생일을 챙겨주고 가족을 소개하여주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만약 제가 한국에서 여행사업을 한다면 꼭 오스만을 불러 사파리 투어의 동업을 하자고도 마지막 밤 술을 사러 마트를 가는 길에도 얘기했습니다. 

 탄자니아에 있는 한 달간 많은 주말이 지나갔고 그 주말을 알차게 보낸 것도 오스만 덕분이었습니다. 이슬람 신자인 오스만과 함께 아프리카의 자그마한 동네 모스크를 가보는 색다른 경험을 해보기도 하고 재래시장에서 망고를 고르거나 전통옷을 입어보고 싶다는 우리의 말에 직접 천 가게를 소개해 주고 우리가 고른 옷감으로 재단사를 불러 옷을 지어 입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한 번은 쳄카라는 온천에도 다녀왔는데, 가는 길이 험난했지만 바오밥 나무를 잔뜩 볼 수 있었고 사바나 초원 속 뜬금없는 정글에 닥터피시가 살고 있는 알려지지 않은 보물 같은 수영장에서 꿈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때도 오스만이 함께였고 베이비 아주머니의 도시락도 함께였습니다.

 오스만의 생일날 케이크에 "Happy Birthday 오스만 ^^"이라고 적어달라고 제빵사에게 부탁을 했었습니다. 문화 수업 때 만들었던 한지 등불에 편지도 다 같이 써주었는데 지금 탄자니아에서 잘 지내고 있을지 또 미션 로지에 간다면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3층과 옥상, 우리의 공용 방

 첫날 방을 정할 때, 3층엔 두 개의 방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둘씩 함께 방을 쓰겠다는 친구들이 있어 3층엔 저 혼자 방을 쓰게 되었는데 그 후에 3층 방엔 전기랑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방을 바꿀 수도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3층 창가 쪽 방을 굳이 고집한 이유는 창가 난간에 걸터앉으면 동네 사람들이 장사하는 소리 아이들이 굴렁쇠를 굴리며 뛰어가는 모습 그리고 메루산쪽으로 해가 지는 노을까지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을 찾는다고 1.5L 킬리만자로 생수통을 3개를 항상 채워두면 가끔씩 단수가 되어도 샤워가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탄자니아 생활이 한 일주일쯤 지났을 때 종종 꿈에서 한국에서의 일상이 지나가다가 깨고 나면 아무도 없는 찬 방에 혼자 누워있다는 사실이 어색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적어도 그럴 때 옥상에 올라가 찬 아침 바람에 안개가 낀 모습을 보고 아침을 먹으러 내려가면 조금 나아졌습니다. 자주 옥상에는 은하수도 떠서 밤마다 올라가 사진을 찍기 제법 좋았습니다. 아침부터 노을 그리고 별까지 볼 수 있는 3층 방이어서 그 정도 불편함은 견딜 만했습니다.

 둘씩 한방을 쓰겠다는 친구들 덕에 창고로 쓸 만한 빈 방이 생겼습니다. 자연스레 심심할 때마다 그 방에 모여서 놀기 시작했고 한국에서 사 온 과자랑 카드게임 우노도 있었고 장난감 거짓말탐지기까지 한국에서 들고 와 꼭 수학여행을 왔을 때처럼 놀 수 있었습니다. 다만 수학여행이랑 다른 점이라면 언제든 니코에게 얘기하면 세렝게티 맥주를 궤짝으로 두고 마실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밤엔 꼭 모여서 떠들고 아무리 놀고도 다음날 아침은 꼭 챙겨 먹고 수업을 하러 출근했던 탄자니아에서의 한 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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