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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타 PD Oct 26. 2024

4) 다정하게 말할 수 없나요?

-직장인 12년차 사업 PM편-

이직하고 몇 주 지나지 않아 팀장님이 1:1 면담을 하면서 나에게 조언을 했다.

“실제로 보면 굉장히 친절한데, 슬랙으로 이야기 나누면 엄청 딱딱한 사람 같아요. 슬랙에서도 원래 성격처럼 부드럽게 표현하면 어떨까요?”


이 회사에 와서 처음 듣게 된 조언은 다정하게 이야기하라는 것이었다.

여태 회사를 다니면서 처음 들어보는 조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슬랙을 보면 움직이는 귀여운 이모지들이 주르륵 붙어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절하고 매우 공손하게 업무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었다.

이전 회사에서는 슬랙에서 건조한 언어로, 용건만 간단히, 사족은 사절이었다. 오히려 슬랙에서 위트 섞인 농담을 하면 아무도 동조를 해주지 않아 외로웠다. 그래서 이곳의 다정하고 친절한 일 문화가 참 마음에 들었다.  


효율적인 측면에서 보면 군더더기 없이 일 이야기만 깔끔하게 하고 끝내는 게 가장 좋다.

이것 말고도 할 일이 산더미니까. 야근하고 싶지 않으니까. 오늘은 제발 6시에 퇴근하고 싶으니까!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업무를 하는 나에게는 어쩌면 남에게 다정할 시간과 에너지가 없다. 그럼에도 내면의 다정함을 잃지 않는 이유는 다정해야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업무 특성상 여러 유관부서들과 함께 검토하고 협의할 일이 많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각 팀의 입장과 어려운 상황들을 모두 고려하여 하나의 방향으로 협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여기서 다정함 유전자가 없으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어렵다.

언젠가 공감을 전혀 할 줄 모르는 다소 로봇 같은 PM님과 업무를 한 적이 있었다. PM님이 세운 기획안에 공손하게 문제제기를 했다. 그러자 PM님이 나에게 역질문을 했다.

“그럼, 이렇게 안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데요? 다른 방안이 있어요?”


조심스럽게 한 질문에 돌아온 대답이 퉁명스러워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순간 감정적으로 협조해 주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협조는커녕 PM님이 하는 모든 말이 다 부정적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물론 나중에 협의를 잘해서 마무리하긴 했지만 만약 그가 조금만 더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면 어땠을까?


물론 모두가 내 마음 같진 않다. 그래서 속상할 때도 많다. 내가 A를 요청하면 상대방은 B밖에 안 된다고 딱 자를 때가 있다. 논의를 해보고 싶어도 문을 닫고 빗장을 잠가버리는 사람도 있다. 회사 일이지만 감정이 상한다. 하지만 다정함을 장착하고 상대의 환경을 이해하며 평화 협정을 시도하다 보면 일이 풀릴 때가 많다. 당장 해결은 어렵더라도 다음 기회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된다.


다정함은 나에게 선물로 돌아온다. 나에게 누군가 업무 요청을 하면 최선을 다해서 챙겨주려고 노력한다. 상대는 이렇게까지 챙겨줘서 고맙다고 한다. 이렇게 내가 먼저 베푼 다정함은 내가 급한 일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뜻밖의 구원처럼 되돌아오기도 한다.  

일을 할 때는 혼자서 할 수 없다. 기능 하나를 만든다고 해도 여러 팀, 여러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늘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 ‘함께’ 해야 하니까. 늘 ‘다정’ 해야 한다. 그래야 일을 잘할 수 있다.


MBTI로 치면 나는 ENFJ라서 소위 댕댕이, 평화주의자로 불린다. 나의 성격도 ‘다정함’을 중요하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겠지만 회사에서 밝음을 유지하는 것은 성격을 넘어서서 일부러 노력하는 것이다. 회의를 할 때에도 일부러 웃상을 유지하려고 한다. 업무 이야기로 바로 들어가기 전에 개인적으로 안부인사를 묻거나, 삭막한 분위기를 깨뜨리기 위해 먼저 시시콜콜한 주제로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순간을 조성하기도 한다. 미팅 시간마다 소위 아이스브레이킹을 일부러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중의 하나가 바로 나다. 미팅을 진행할 때에는 30분 안에 빠르게 어젠다 논의를 다 마쳐야 하다는 압박감이 마음속에 가득할지라도 상대에게 조급함을 내색하지 않는다.


슬랙에 업무 요청 글을 올리고 나서도 혹시 내 글이 너무 삭막하진 않았는지, 너무 일방적이지 않았는지 점검한다. 슬랙에서 무반응, 무플을 참지 않는다. 누군가 글을 올렸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이모지 리액션과 댓글을 소소하게라도 챙긴다. 다른 조직의 사람들과도 슬랙에서 이야기를 할 때에도 고마움과 유머를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다정한 인간미를 내뿜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그리고 나보다 훨씬 다정한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들에게 남몰래 ‘동료애’를 느낀다. 우와, 저 사람 무척 다정하네! 저 사람 마음도 내 마음과 같겠지. 저 사람도 노력하고 있구나!

그대의 다정함 너무 멋져요! 파이팅!

속으로 조용히 응원한다.

 

브라이언 헤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책에서는 “우리는 만나고 눈을 마주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오직 다정한 것 만이 살아남을 수 있으므로”라는 문장이 있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다윈은 “진화라는 게임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협력을 꽃피울 수 있게 친화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라 말했다. 지구 역사에서 오래 살아남는 종자들의 비법은 ‘적자생존’으로 경쟁구도에서 이긴 종자들이 아니라, 친화력을 부장으로 한 종자들이라는 것이다.

퇴근 무렵이었다. 화장실에 가려고 라운지를 지나가는 참이었는데 갑자기 전 팀에서 같이 일했던 K양이 나를 불러 세우며 물었다.

“요새 잘 지내세요? 워커홀릭이라면서요? 맨날 야근한다면서요.”


나는 퇴근 무렵에 되면 시력이 흐려져서 K양이 내 옆을 지나가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걱정 반 충격 반의 표정으로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제가요? 저 워커홀릭 아니에요. 음… 야근은 할 수밖에 없어서죠. 제가 워커홀릭이라고 소문이라도 났나요?”

“네, 워커홀릭이라고 소문났어요!”

“......”


복도에서 갑자기 듣게 된 ‘워커홀릭설’은 달갑지 않았다.

누군가를 워커홀릭이라고 칭할 때는 그 사람 앞이 아니라 뒤에서 수군대며 말한다. 나도 10여 년 회사 생활을 하면서 워커홀릭을 되도록 피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이전 회사에서 워커홀릭 선배들을 떠올려보면 겉으로는 멋있다고 칭송했지만 속으로는 불편해했다. 워커홀릭 선배들은 특유의 고지식한 면이 있었다. 웃음과 여유가 잘 없었다. 농담도 잘 안 통했다. 그래서 무서웠고 가능한 피하고 싶었다.

바라건대 워커홀릭으로 소문이 나고 있다면, 무서운 워커홀릭이 아니라, 다정한 워커홀릭으로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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