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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솔 Oct 27. 2023

굳이 홀로 유럽 여행을 떠난 이유

여행에서 배운 것들

지금은 어느덧 홀로 다니는 여행의 끝을 선언했지만, 원래 여행은 혼자 다니는 것이라는 지론이 있었다.


이러한 지론을 가지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20대 때 존경했던 소설가인 '파울로 코엘료'가 수필집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여행은 결혼 전까지는 홀로 다니는 것'이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여행 과정에서 홀로 경험하고 성찰하는 과정이 가치가 있다는 뜻이라고 받아들였다. 실제로도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는 주인공 홀로 보물을 찾아 떠나는 과정을 담고 있었다.


두 번째는 성인이 되어 친구와 떠난 국내여행에서 서로 원하는 것이 다를 때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이라고는 고등학교 시절, 자매결연이 되어있던 일본 고등학교를 단체로 잠시 방문한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더욱 해외여행에 대한 동경이 컸다. 해외여행을 떠난다면 누군가와 감정다툼을 하기보다는 온전히 경험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특히 유럽으로 홀로 해외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나에게는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었다. 가치 있는 내면적 보물을 찾아 나선다는 환상이 있었고, 유럽 역사를 좋아하는 성격 상 유럽은 나에게 더욱이 이상향 같은 곳이었다.

군대에서 계획한 유럽여행 경로

군대에서 시간이 있을 때마다 유럽여행 관련 서적을 탐독했고, 내 침대 천장에 유럽 지도를 붙여두고 매일 계획을 세우는 재미로 군 생활을 보냈다. 당시 군대 행정실에서 유럽 지도를 인쇄해서 코팅한 후, 머릿속 계획을 확정하고 볼펜으로 그 일정대로 나라 위에 경로를 그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여행이 이루어진 기분이었다.


내 MBTI는 ENFP로, 대학교와 대학원 시절 동아리와 동호회 활동을 총 7개 했을 정도로 외향적인 성격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홀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학부 시절에는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제대 후 1년 간 과외로 여행 자금을 모으며 틈틈이 혼자 떠나는 여행을 연습했다.


처음으로 홀로 여행을 떠난 곳은 강원도 춘천이었다. 원래 계획은 춘천 근처를 2박 3일 간 구경하는 것이었는데, 첫날 너무 심심하고 우울했던 나머지 1박 2일 만에 집으로 도망을 오게 되었다. 특히 돌아오는 길에 남이섬을 혼자 방문해서 음식점에서 감자전과 막국수를 시켰을 때, 이모님의 "학생 여길 혼자 왔어?"라는 질문은 내 얼굴을 새빨갛게 만들었다.


다음으로 시도했던 여행은 지리산 화엄사로 혼자 떠난 것이었다. 학부 선배 중 누군가가 절에 가서 재워달라고 하면, 템플스테이와는 달리 그냥 여행객을 재워주기도 한다는 정보를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이다. 여행 계획과 겹치는 날짜의 수업 교수님들께 메일을 보냈다. 홀로 절에 가서 며칠 지내고 오고 싶다는,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맹랑한 내용이었다. 다행히 교수님들은 평소 출결이 좋았던 나의 일탈을 흔쾌히 이해해 주셨다.


떨리는 마음으로 지리산 화엄사에 가서 스님께 며칠 지낼 수 있는지를 물었고, 운이 좋게도 3박 4일간 좋은 기억을 남길 수 있었다. 지내는 동안 지리산 등산이나 봉사활동을 하고, 그 외에는 스님과 차담을 나누었던 추억은 용기를 주었다. 홀로 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새롭게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될 수도 있고 말이다.

실제로 다녀온 유럽여행 경로

이제는 혼자서 여행을 떠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때, 원래 계획과는 달리 계획을 대폭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여행경비 때문이었다. 아무리 예산을 아껴도 굶어 죽지 않을 선에서 73일이 최대였다. 특히 바쁘게 여러 나라를 다니기보단, 도시 하나하나를 여유 있게 여행하는 스테이케이션(Stay+Vacation)을 하고 싶었다. 꼭 하고 싶었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와 아이슬란드를 일정에 넣었다.


첫 여행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 500km를 포함하는 총 73일간의 유럽배낭여행이라는 것은,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모한 일이었다. 특히 홀로 떠났으니 말이다. 고생길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다행히 무사히 마쳤고, 산티아고순례를 너무 빠르게 걷는 바람에 시간이 남아서 추후 포르투갈과 아일랜드를 일정에 끼워 넣었다.

우랄산맥
파리 시내

2014년 4월 1일, 마침내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깊이 박혀 있었다. 여행 전날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하루 종일 배앓이를 했다. 비행기 아래로 보이는 눈 덮인 우랄 산맥과 파리 시내는, 그동안 상상만 하던 여행이 드디어 현실이 되었음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분명, 이 여행의 끝에 나는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있으리라는 설렘과 확신이 있었다.


이 확신은 애초 예상과 달리 총 8년을 끌어, 나 홀로 유럽 여행 누적일 수 180여 일이 지난 2022년 11월이 되어서야 결론이 났다. 하지만 무작정 첫 유럽배낭여행을 떠났던 경험은 8년 후의 결론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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