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처럼 짭짤한 웃음, '이쯤 되면 나오는 노래'
mu-05
말하기 조금 민망하지만 나에게 고민이 하나 있다.
사람들을 잘 웃기지 못한다는 점이다.
학창 시절부터 느꼈던 핸디캡인데 남녀 미팅에 나가서도 상대방에게 선택을 받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같은 얘기를 하는데도 내가 하면 진지하고 엄숙했다.
나중에는 말하고 있는 동안 스스로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성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사람들에게는 유머 감각이라는 게 있다.
유머는 음식의 맛을 살리는 훌륭한 감미료와 같아서 그걸 구사하는 사람을 돋보이게 한다.
나는 종종 청중들을 사로잡고 싶었으나 역부족을 느끼며 어느 시점부터는 차라리 입을 닫고 경청을 하게 되었다.
모든 고민을 망설임 없이 털어놓지만 연애까지 연결은 안 되는 '교회 오빠'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공연을 보러 다니면서 비극이 익숙하고 편했지만, 재관람으로 몇 번을 다시 본 장르는 코미디였다.
대학로 연극 중에 좋은 작품들이 많은데 <웃음의 대학>, <너와 함께라면>, <라이어>, <꽃의 비밀>, <대학살의 신> 등이 있다.
배우로는 '서현철'을 좋아하고 극작가는 '야스미나 레자'와 '미타니 코키'를 사랑한다.
뮤지컬에서는 연극만큼 코미디가 왕성하지는 않지만 <프로듀서스>나 <썸씽로튼>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스팸어랏>을 빼놓고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영국이 배출한 불세출의 코미디 그룹인 '몬티 파이튼'이 제작한 영화, <몬티 파이튼의 성배>를 각색하여 뮤지컬로 만든 작품이다.
국내에는 2011년과 13년에 라이선스 공연으로 소개되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모두 관람했다.
영국의 전설적인 왕인 아서 왕과 그를 따라 성배를 찾아 나서는 5명의 원탁의 기사들이 겪는 무용담을 기상천외한 코미디로 풀어냈다.
코미디에도 종류가 다양한데 이 작품에서는 주로 패러디를 통해 오래된 권력층의 위선과 브로드웨이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의 탐욕에 대한 위트와 풍자가 넘치게 했다.
잘 생각해 보면 권력과 힘을 가진 자들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우울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그들은 그럴듯한 현학으로 대중을 기만하고 뒤에서는 온갖 추잡한 욕망으로 부패하면서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데 본인들만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억눌리며 신음하고 분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코미디가 싹이 트고 자라는 것이다.
고통이 있는 곳에 코미디가 있고 그에 대한 공감과 소통이 열리면 그 길을 타고 웃음이 흐른다.
내가 코미디에 약한 이유는 내게 측은지심과 겸양지심은 있으나 수오지심과 시비지심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 전쟁 같은 집 안 분위기에 질식해서 싸움과 다툼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기면서 분노가 거세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제라도 눈을 똑바로 뜨고 부당한 것들에 대한 저항을 키우며 살아가고 싶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앞서서 나가기에는 이제 너무 늦은 것 같으니 아침저녁으로 매진하는 글쓰기에 통찰과 여유와 성찰을 담아서 맛있는 스팸처럼 담아내고 싶다.
<스팸어랏>에서 사람들에게 제일 사랑받는 장면이 있다.
원탁의 기사 중 갈라핫이 극 중 신비로운 호수의 여신과 함께 배를 타고 나오면서 부르는 노래, '이쯤 되면 나오는 노래'는 뮤지컬의 방식으로 뮤지컬을 신랄하게 비꼬는 내용이다.
등장하는 장면부터 <팬텀 오브 오페라>의 한 장면을 패러디하더니 창의성도 없이 맨날 성공작이나 모방하며 베끼고 우려먹는 뮤지컬 제작 풍토를 힐난한다.
어느 뮤지컬이든 정해진 패턴이 있다 보니 '지금 공연 이쯤이면 반드시 나오는 노래가 있는데 바로 이런 노래이다'라며 제대로 웃기게 보여준다.
노래는 이런 가사로 시작된다.
"이쯤 되면 나오는 노래 / 서로 마주 보며 오버하는 노래 / 했던 노래 또 하고 / 완전 영원할, 망할 노래…."
나처럼 코미디에 약한 사람은 자꾸 했던 말을 하고 또 하고 그런데도 자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뻔뻔하게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꼰대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코미디가 어쩌면 꼰대들이 찾아 나서야 하는 성배일 지도 모른다.
*영상: 이쯤 되면 나오는 노래 (The Song That Goe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