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2021년 7월 2일에 개최된 제68차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이사회는 대한민국의 지위를 그룹A(아시아, 아프리카)에서 그룹B(선진국)로 변경하는 것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한국은 이제 국제사회로부터 선진국 지위를 공인받은 것이다. 우리는 이제 정녕 선진국 국민이 된 것인가?
강남순 교수는 여기에 대해 아직 아니라는 입장이다. 비록 경제와 산업 분야에서 선진국에 해당하는 성과를 내고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사회 구성원들의 정신적 성숙도는 미흡하고 그 원인으로는 <질문하기>에 능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일반적으로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질문하는' 법인데, 문제는 결국 '아는 것'에 관해 우리는 너무 안일하고 자만심에 빠진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느꼈다. 맞다. 우리에게는 분명 '인식의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있다.
강남순 교수는 '질문하는 방식을 전적으로 바꿔야 한다'라고 말한다. 올바른 답을 찾기 위해서는 올바른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요청이다. 나쁜 질문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동성애에 찬성하는가?'라는 질문은 두 가지 면에서 나쁜 질문의 전형이다. 단순한 '예'나 '아니오'만을 요구하기 때문에 질문을 받는 사람에게 더 이상의 사유나 성찰을 허락하지 않는다. 또한 이 질문은 '성적 지향'이 마치 개인적 호불호의 문제라는 왜곡된 전제로부터 구성되었기에 나쁜 질문이다. (67p)
구체적이고 대안이나 합의를 고민하지 않는 질문도 역시 나쁜 질문이다. 예를 들면, '정의 실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너무나 포괄적이어서 어떠한 대답이 나오더라도 사실 어느 것도 밝히지 못하는 질문의 형태이다. 우리의 질문은 '누구의 정의'이며 '어떠한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우리는 너무 큰 그림에 동의하면서 거대 담론에 취해 마치 합일점을 도출했다는 착각에 빠질 위험이 늘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질문이 막힌 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의 사유나 성찰이 막히고, 개개인은 부지불식간에 자기만의 해답을 찾기보다는 이미 만들어져 배포되는 누군가의 정답에 휩쓸린다. 선동당하는 것이다. 권력과 미디어가 이런 메커니즘을 악용한다. 개인마다 서로 다른 다양한 해답과 합의와 대안 창출 대신에,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양자택일표가 제시되고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아군과 적군으로 나뉘는 편 가르기와 이에 따른 상대진영을 향한 혐오가 독버섯처럼 발생한다. 여성과 저소득 계층과 장애인과 이주노동자와 성소수자들에 대한 폭력은 어느새 일상화되어 더 이상 이슈거리도 되지 않는다.
여기서 한나 아렌트가 놀라운 성찰로 꿰뚫어 본 <악의 평범성>, 즉 비판적 사유의 부재로 인해 관습과 관행에 기계적으로 순응하는 수많은 '아이히만'들이 득실거리는 사회가 된다. 전체주의의 출현이 그리 멀리있지 않는 시점이 찾아온다.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어쩌면 메카시 열풍이나 파시즘이나 나치즘이 변형된 형태로 출몰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강남순 교수는 학자다운 진지하고 책임감 있는 자세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폭력성을 다양한 예시를 통해 고발하고 우리의 각성을 요구한다.
이 책은 어느 순간부터 독자들에게 질문하기 시작한다. '당신은 왜 질문하지 못하는가?' 자성하는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대답을 요청해 본다. 첫째는 게을러서이고, 둘째는 삶에 지쳐 무기력하기 때문이고, 마지막으로는 주변 분위기에 눌려 눈치를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태만함과 무력감과 위계감에 짓눌려 우리는 어느새 위기와 불안감에 빠져 낮은 자존감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생존(surviving)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고립감과 분노에 사로잡혀 정치적, 종교적 선동에 따라 과격한 집단행동을 하며 일그러진 공동체적 소속감을 누리며 존재 이유를 찾는 괴물로 변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이 독자에게 던지는 진정한 질문은 '어떻게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becoming) 인생을 개척해 나아갈 것인가?'이며, 해답은 각 개인이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성찰하며 사유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결론 말고는 다른 해답이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2021년에 선진국으로 출생 신고를 했다. 이제 성장하며 성숙하는 시대적 소명에 응답하는 역사를 이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