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1.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p.162)
전투가 벌어지면 병사들에게는 전투 식량이 보급된다. 전쟁이 한창일 때라면 제대로 갖춘 보급품(밀키트)으로 식사를 하겠지만, 패색이 짙어지거나 퇴각을 하고 있는 경우라면 보급로가 끊기고 비상식량으로 버터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건빵' 같은 제품 말이다.
나이 들어 죽음이 코 앞으로 닥친 노년은 모든 것이 앙상해지고 볼품이 없어지게 된다. 건빵이 그렇듯이.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과 욕망이 아직 육체를 지배하던 젊은 시절의 시간들은 온갖 신선한 재료와 매혹적인 감미료와 자극적인 소스들로 요리된 음식들이 식탁에 풍성했고, 거기에 황홀한 와인까지 곁들인다면 식탁 밑으로 남은 음식을 버린다고 한들 크게 지탄을 받지는 않을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때는 사람들이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풍요롭던 낭만의 시간이 멈추고 느닷없이 곤경이 한밤중에 찾아오게 되리라는 사실을. (나는 여기서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i dreamed a dream'과 로이 클록의 'yesterday, when i was young'이란 노래들을 떠올리게 된다)
2.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p.86)
한 번도 경험한 적도,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풍경이 인생의 말미에 나타난다. 퍽퍽한 건빵을 씹어가며 아직 누구도 지나가지 않은 미증유의 거친 황무지를 헤치며 길을 잃은 사람처럼 헤매는 시간이 찾아오게 된다. 무엇보다 숲속의 호랑이처럼 숨어있던 신체의 질병과 통증이 천둥처럼 으르렁거리며 침실 창문을 두드리게 되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은 몰라요. 의존, 무력감, 고립, 두려움... 그게 다 아주 무섭고 창피해요. 통증이 있으면 자신을 겁내게 돼요. 그 완전한 이질감이 정말 끔찍해요." (p.96) "이제 모든 형태의 위로는 사라졌고, 위안이라는 항목 밑에는 황폐만이 있었으며,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이질감', 이것은 그의 언어에서는 그에게 낯선 어떤 상태를 묘사하던 말이었다." (p.135)
3. "하지만 현실을 다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해... 그냥 오는대로 받아들여.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여라. 다른 방법이 없어" (p.83)
주인공의 딸인 '낸시'가 학창 시절, 잘나가던 육상부에서 부상을 당해 운동을 그만두게 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모가 이혼하는 불행을 당했을 때 주인공이 딸에게 들려줬던 얘기를 딸인 낸시는 먼 훗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관 속에 누운 주인공에게 그대로 전한다. 이 책의 저자인 필립 로스는 독자들에게 똑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대공황 시기에 뉴욕 맨해튼의 엘리자베스 거리에 있는 보석 상점인 <에브리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유년 시절과 광고 회사에 입사한 이후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 생활을 하며 멈출 수 없는 바람끼를 주체하지 못하고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은 주인공이 노년에 들이닥친 신체의 질병들 앞에서 어떻게 서서히 고립되며 위축되고 자존심과 자존감을 상실해 가는 지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스토리 전개와 필체로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생생한 공포감과 두려움이 전해진다. 마른 건빵을 씹을 때마다 현재 자신이 처한 위치와 상황이 일깨워지는 것처럼. "목적 없는 낮과 불확실한 신체적 쇠약을 무력하게 견디는 일과 말기에 이른 슬픔과 아무것도 아닌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 결국 이렇게 되는 거야. 그는 생각했다. 이거야 미리 알 도리가 없는 거지." (p.168 )
4. "거짓말은 정말 경멸스러운 방식으로 값싸게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는 거야." (p.127)
죽음이 어쩌면 우리에게 거짓말로 유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은 살만하다고, 온갖 난관과 어려움에도 결코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참고 버티다 보면 네 고통과 어리석음과 무지와 잘못된 선택과 무책임과 기억하지도 못하는 그런 온갖 실수들은 마지막에는 모두 보상과 용서를 받게 될 것이라고...'
작가는 그렇게 감미료와 향신료를 작품에 첨가하여 독자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작품의 서두와 말미에 공동묘지가 등장하는 건, 어쩌면 그런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 배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양적으로 얘기하자면 인간은 결국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라는 잠언을 전하고 싶었다는 뜻이다. 물론 작가는 '흙' 대신에 '뼈'를 얘기하며 작품을 마무리 하긴 했지만.
"그들(주인공의 부모)은 그저 뼈, 상자 속의 뼈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뼈는 그의 뼈였다. 그는 그 뼈에 가능한 한 바짝 다가가 섰다. 그렇게 가까이 가면 그들과 연결이라도 될 것처럼. 미래를 잃은 데서 생겨난 고립감은 완화되고, 사라진 모든 것과 연결되기라도 할 것처럼." (p.176)
I dreamed a dream =>
https://youtu.be/JrLtrDnLjss?si=qAaf0CQ7Q0M4EqsD
yesterday, when I was young =>
https://youtu.be/Z95t57HyYTE?si=Sfc7IIA9W0eIKDk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