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서는 키치(Kitsch)에 관한 얘기를 했는데, 이제 마지막으로 육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소설의 2부인 '영혼과 육체'에서는, 이 작품 전반에 흐르고 있는 무거움의 근원지를 서술하고 있다.
"육체는 껍데기이고, 그 안에서 뭔가가 보고, 듣고, 두려워하고, 생각하고, 놀라는 것이다. 이 무엇, 남아 있는 잔금, 육체로부터 추론된 것, 이것이 영혼이다." (p. 70)
토마시는 외과 의사로서 수많은 환자의 몸을 열어 인체의 내부를 탐색하며, 바람둥이로서 역시 수많은 여체를 탐닉하는 인간이다. 테레자는 깨어 있을 때는 자주 거울 앞에 서서 육체를 통해 자기를 보려고 노력했는데 이는 자기 얼굴에서 어머니의 윤곽을 지우고 오직 자기 자신의 것만 남기려고 애썼으며, 잠을 자는 동안에는 자기 육체(의 고통)에 관한 두렵고 무서운 꿈을 꾸곤 했다. 사비나는 자신의 작업실에 놓인 거울을 바라보며 프란츠와 정사를 즐기고 토마시와 밀회를 나눴는데, 그녀는 종종 남녀가 몸을 섞는 육체적인 관능 너머에 있을지도 모르는 정신적인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고 사색하곤 했다.
밀란 쿤데라는 과연 이러한 배치를 통하여 독자들에게 썩어 없어질 육체의 덧없음과 그로 인한 무거움을 보여주며 인간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영혼의 가벼움으로의 자유와 해방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밀란 쿤데라는 '신은 죽었다'라고 했던 니체의 영향을 깊이 받은 사상가답게, 기독교 교리에서 태동하여 중세를 거치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괴물처럼 자라난 형이상학적인 키치들(카톨릭, 개신교, 공산주의, 민족주의...)이 인간의 실존을 억누르고 괴롭힌다라고 간파하지 않았을까? 영혼이 육체를 배척하며 독선으로 치닫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영혼이 육체와의 온전한 결합을 통하여 화해를 하는 것이 진정한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냐는 말이다.
<육체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육체에로의 자유>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다시 '똥'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싶다.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내가 배설하는 똥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여겨본 적이 없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항문기에서 내가 싼 똥을 만지며 창조의 기쁨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아쉽게도 그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다른 존재의 똥을 보며 경탄했던 기억은 있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 그 녀석이 갓난아기였을 때, 기저귀에 묻어 나온 황금 변을 보며 아내와 함께 기뻐하고 감격하던 순간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주변에서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하던 주인(엄마)들이 거리낌 없이 자기 자식들이 길에서 싸질러 놓은 똥을 망설이지 않고 집어 봉투에 넣어 처리하는 모습도 떠오른다. 그때는 물질적인 똥에 어떤 거룩한 신성(神性)이 깃들고 있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된다.
단순히 이분법적인 사고로 영혼은 善이고(가벼움), 육체는 惡(무거움)이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대중)이 그렇다고 여기며 살더라도, 적어도 작가는 그렇게 게을러서는 안 된다. 밀란 쿤데라는 존재의 근본이 되는 문제를 스스로 질문했고, 독자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신은 과연 자유로운가?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었는가? 무거움 속에 깃든 가벼움을 발견하는가?"
이 책의 7부에 등장하는 여러 동물들은 육체를 지닌 생명체이지만, 인간과 달리 질문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인간처럼 실존적인 고뇌에 짓눌려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우리는 '개팔자가 상팔자'라고 여기며 인간의 '참을 수 없는' 특권이자 고통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여기 오늘을 지내는 또 다른 작가의 어느 수상 소감을 옮기며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본다.
"소설을 쓸 때 나는 신체를 사용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부드러움과 온기와 차가움과 통증을 느끼는, 심장이 뛰고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걷고 달리고 바람과 눈비를 맞고 손을 맞잡는 모든 감각의 세부들을 사용한다. 필멸하는 존재로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