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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상] 자기 앞의 生_에밀 아자르 (문학동네, 2

책을 읽고

by 김쾌대 Feb 05. 2025

로맹 가리라는 작가이자 영화감독이자 외교관을 지낸 사람의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었는데, 이 책을 통하여 그가 에밀 아자르와 동일 인물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참으로 다채롭고 재미있는 이력을 지닌 사람이었고, 이번에 읽은 소설인 <자기 앞의 生>은 눈을 떼지 못하고 단번에 읽어 내려가게 할 정도로 흥미로웠다. 영화로도 제작된 이 작품에서 작가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삶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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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인 '모모'는 열네 살의 소년이다. 세 살 때 부모에게 버림받고 '로자'라는 여인에게 위탁된 불운한 아이인데, 로자는 파리 외곽부 빈민가에서 주로 창녀들이 낳은 사생아를 맡아 기르며 생계를 이어가는 여인이다. 소설이 그렇듯이 그들이 지내는 지역은 실제의 당시 모습보다는 아무래도 미화되어 독자에게 전해진다. 독자는 그저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들이 얼마나 비참한 환경에서 지내는지를 가늠해 볼 따름이다. 그런데 소설 속 주인공의 눈에 선망의 대상이 되는 소설 속 현실 속의 가상 세계가 나온다. 하나는 영화 속 세상이고 하나는 서커스단이 보여주는 세계이다. 영화에서는 필름을 뒤로 돌려 시간까지 과거로 돌아가게 할 수 있고, 서커스단에 나오는 배우들은 모두 기계 장치여서 시간이 흘러도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를 유지할 수 있다. 모모가 사랑하는 로자 아줌마가 열다섯 앳된 소녀로 돌아갈 수도 있고, 죽음을 향해 추하게 늙어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상징하는 소설 속 장치라고 말할 수 있다. 작가는 영화와 서커스단을 통해 모모가 선망하는 인생 모습을 투영시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소설 속의 로자 아줌마네 집이 있는 동네로 돌아가 보자. 거기에는 창녀들과 그들에게 버려진 고아들과 불법 이민자들과 마약범들과 성 소수자와 사회의 주변부에서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비주류 하층민들이 모여있다. 비록 실제 현실이 주는 비참함이나 비루함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지는 못하는 소설 속 가상의 삶이지만, 앞서 말한 영화나 서커스단의 세계보다는 실감이 나는 처연한 생로병사와 비극적인 상황들이 나타나는 진짜 인생이 펼쳐진다. 작가는 주인공인 소년 모모의 입을 통하여 가난과 성매매와 버림받음과 늙어감과 추함이 뒤섞여 돌아가는 빌어먹을 生의 단면을 여과 없이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칫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가 소설 속에 흐르기 십상일 텐데, 읽어 내려가는 내내 입가에 미소를 띠게 되는 장면과 문장들이 번뜩이며 독자들의 가슴으로 파고든다. 그 이유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마치 오랜 시간을 풍파에 시달린 듯한 모모의 관조적이고 심지어는 냉소적이기까지 한 조숙한(애늙은이 같은) 언행에 감탄하기 때문인데, 그건 바로 모모와 절친한 사이였던 '하밀' 할아버지에게서 글을 배우고 교훈을 얻었다는 내용으로 설득력을 지니게 만드는 작가의 역량이 돋보였다.


문장의 수사법에 반어법이 있다. 예를 들면, "아휴, 씨발! 정말 더럽게 예쁘네."라는 말이 실은 욕이 아니라 최고의 찬사가 되는 것과 같다. (요즘 말로 치자면 ‘츤데레’와 뉘앙스가 비슷하다) 반어법은 어느 정도 글 쓰는 실력이 있어야 구사할 수 있는 테크닉이어서 잘못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는데, 반대로 잘만 하면 문장을 지적(知的)이고 고급스럽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이 재미있어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특징 때문인데, 작품 곳곳에서 쉽게 그런 문장들을 마주칠 수 있다.


"죽기 전까지 백 퍼센트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다. 인생에는 원래 두려움이 붙어 다니기 마련이니까." (p.33)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진실한 말이기 때문이다." (p.72)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 (p.96)


"마약 주사를 맞은 녀석들은 모두 행복에 익숙해지는데,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행복이란 것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니까." (p.103)


"더 이상 살아갈 능력도 없고, 살고 싶지도 않은 사람의 목구멍에 억지로 생을 처넣는 것보다 더 구역질 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p.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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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잠시 작가인 로맹 가리를 생각해 본다. 비록 그의 작품을 이번에 처음 접하게 되었지만, 단 한 권의 책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그의 매력적인 필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


다시 말하지만, 그의 무심한 듯 핵심을 찌르는 듯하며 동시에 얼핏 냉소적이고 비꼬는 듯한 삶에 대한 통찰은 매우 지성적으로 느껴졌고 문득 버나드 쇼를 떠올리게 되었다. 로맹 가리는 어쩌면 버나드 쇼와 같이 소설가로서 관조적이고 냉정하게 세상과 삶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역설적으로 生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줄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문장에서 대뇌피질의 연회색 빛 차가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비록 버나드 쇼는 극작가로, 로맹 가리는 영화감독으로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오히려 정반대로 나는 그의 문장 행간 곳곳에 이토록 더럽게 누추하고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하밀 할아버지가 늘 손에서 놓지 않았던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의 주인공들처럼)을 향한 뜨거운 애정이 묻어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무엘 울만의 그 유명한 詩, <청춘>에서 보여지는 '스무 살 청년보다 더 청춘인 예순 살 노인'의 정신을 지닌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비록 그가 말년에 자기 목구멍에 권총을 들이밀고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하더라도, 그의 가슴에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는 애정이 넘쳤고 바로 그 뜨거운 열정을 품고 가혹하고 무정한 현실과, 이방인으로서(그는 원래 러시아 태생이지만 프랑스로 귀화한 사람이었다) 좀처럼 자기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던 파리의 비평가들에 둘러싸인 불공정한 세상에서 결코 포기하거나 도망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비록 그는 가명을 이용해서 통렬하게 자기의 적들과 비협조적인 환경을 비웃었을지는 몰라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으며 자기 앞의 생을 이끌었던 작가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가, 소설의 마지막 문장인 "사랑해야 한다."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맞다.

작품에서 모모는 애늙은이가 같은 어린아이였지만, 작가인 로맹 가리는 소년의 마음을 지니고 영원한 청춘을 꿈꾸었던 노인이 아니었을까, 그런 말이다. 로맹 가리의 다른 책들도 구해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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