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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열 Jan 22. 2020

캄보디아의 단상

최근 두 번에 걸쳐 해외봉사단의 일환으로 캄보디아 씨엠립에 다녀왔습니다. 2주씩 2회 머물렀으니 근 한 달을 캄보디아에서 지낸 셈입니다. 그깟 한 달로 무얼 알겠느냐고 하면 할 말 없지만 단상 정도는 소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펜을 들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경제적으로 궁핍한 나라입니다. 미개척지가 엄청나고 삼모작도 가능한 조건인데 우기에 물이 넘쳐나는 것을 극복할 방도가 없어서 대부분 땅을 놀리고 있습니다. 현지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범람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규모 댐을 져야 하고 방대한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투자가 이루어진다 해도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해결불가라고 합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모두 착하고 순박한 듯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열심히 일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치적인 문제는 매우 심각한 상황입니다. 최장기의 독재정권이 이어지고 있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불만이 쌓이거나 의식이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막상 선거를 하게 되면 야당 측 인사가 당선된 지역의 여건이 악화되는 것을 수없이 경험한 국민이기에 알아서 친 여당 투표를 하게 된다고 합니다. 정치권력의 폐해는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칩니다. 부패나 무능에 관련된 것들이 이미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다시 반복하지 않고 제가 경험한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씨엠립 외곽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간선도로는 차량 통행량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정체를 빚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퇴근 시간은 물론이고 대낮에도 정체가 이어집니다. 슬슬 기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딱 멈춰서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30분이고 한 시간이고 기다려야 합니다. 나중에 원인을 알게 되었는데 도로를 막고 보수공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출퇴근 시간이나 낮 시간에... 다른 나라 같으면 심야시간에 작업이 이루어지거나 우회도로를 만들어서 불편을 해소하려 했겠지요. 시민들의 불만이 제기되어 담당자가 문책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일이 없다고 합니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하는 일에 시민이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상상을 못한다고 합니다. 기껏 할 수 있는 일은 반대편 도로로 역주행을 해서 빠져나가는 것뿐입니다.

이런 작은 예로 무엇을 말하기가 뭣하지만 캄보디아의 정치체계는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희생해서’, ‘인권보호가 아니라 정권보호’로 요약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정부나 정권은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비단 캄보디아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극히 일부의 국가를 제외하면 정치인과 정당, 그에 따르는 정부의 역할이 국가와 국민에게 플러스가 되지 않고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을까요? 지난 근대사에서 무정부주의 운동 즉 아나키즘이 인기를 끌었던 것도 이런 맥락과 닿아있지 않을까요? 물론 당시의 아나키즘은 공산주의적 무정부주의를 지향하는 것으로서 순수한 의미의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이 아니기에 구분을 할 필요는 있습니다.

문제나 폐해가 캄보디아보다 더한 나라는 많이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나라 국민들이 안됐다고 생각하고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음 한편으로, 그런 나라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거나 그 나라 국민들은 왜 상황을 개선하려고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교육을 잘 받고 의식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쉽게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전문이론에 의하면 구조적이고 경로의존적인(path dependent) 여건과 상황에서 개별 제도를 바꾸는 일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래저래 마음 한 구석이 착잡하고 캄보디아에서 만난 순박하기 그지없는 아이들의 얼굴이 진한 여운으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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