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수도원 이야기
형제들 가운데서 어느 누구도 몰랐다는 핑계를 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규칙서가 공동체 안에서 자주 읽히기를 바라는 바이다
베네딕도 규칙서 66장
이 방의 이름으로 사용된 카피톨로 (capitolo)라는 이탈리아 말은 영어의 챕터라는 말로 이 방에서 가장 중요하게 했던 것이 아침마다 베네딕도 규칙서를 한 장(章) 씩 읽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곳은 성당 다음으로 중요한 곳이고 시토회 건축 철학 안에서 가장 화려한 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비밀 투표로 자기들의 수도원장을 뽑았고, 새로운 입회자를 심사하였고, 수도원의 중요한 문제를 모든 수도자들이 듣고 깊이 검토한 후에 결정은 수도원장이 하였습니다.
또한 이 방은 참회의 장소이기도 하였습니다. 매일 읽고 듣는 베네딕도 규칙서에 비추어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형제들에게 고백을 하고 용서를 청하며 화해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반지하처럼 사각 정원에서 내려가도록 되어있는데, 물론 2층에 있는 수도원 침실이 너무 높게 올라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건축적인 이유도 있지만, 자기 마음 깊숙이 아래로 내려가 자기의 잘못을 들여다보고 참회를 한 후 용서받아 깨끗하게 되어 다시 수도원의 세상으로 올라오라는 영성적인 의미가 더 크게 들어있습니다.
내부 공간의 분할은 전체 구성안에서 균형과 기하학적인 나눔 그리고 시토회 건축의 오르가니즘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덟 개의 가는 기둥(숫자의 8)으로 묶인 네 개의 다발 기둥(숫자의 4)은 마치 나무처럼 천장을 고딕의 뾰족아치 지붕으로 덮고 있고, 바닥과 공간은 이 네 개의 기둥으로 한치의 양보도 과함도 없이 조화롭게 아홉 개의 공간을 나누고 있습니다. 마치 완벽한 음악이 이 공간을 꽉 채우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공동체 안에서 나를 들여다볼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정면에는 시토회와는 어울리지 않는 세 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있습니다. 역시 후대에 만들어진 창문입니다. 가운데는 규칙서를 들고 축복하는 성 베네딕도, 그 왼쪽에는 수도원을 들고 있는 최초의 시토 수도원 창립자인 성 로베르토, 그리고 오른쪽에는 시토회를 전 유럽에 퍼뜨린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가 수도원의 영성을 담아 쓴 책을 들고 있습니다. 지금은 나무의자를 볼 수 있지만 원래는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돌로 된 의자가 벽 쪽으로 붙어있었습니다.
이곳 문을 들어서면 식당치고는 그 크기와 넓이에 조금은 놀라게 됩니다. 사실 지금 현재 식당은 원래 농작물을 보관하던 창고였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수도원 식당에서 볼 수 없는 기둥들이 식당을 양분해서 서 있습니다. 노동 수사들이 이 창고를 이용하였기 때문에 위 층은 노동 수도자들이 사용했던 침실 자리였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식당 들어오는 입구 오른쪽으로 보면 콘베르시들이 성당을 드나들던 문을 볼 수가 있습니다. 문 위에는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세 개의 십자가가 새겨져 있습니다.
길이 37미터 폭이 11미터로써 하루의 일을 마무리하는 시간에 이 창고에 들어오는 형제들을 위해 오후에 드는 햇빛을 잘 이용하기 위해 서쪽에 창문을 두었습니다. 또한 천장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규칙서의 방처럼 사각 정원보다 바닥이 아래로 내려와 있어 많은 물건을 둘 수도 있었던 실용적인 공간이었습니다. 팔각의 주두를 갖고 있는 육중한 형태의 7개의 기둥들 역시 뾰족아치 형태로 천장을 받치고 있습니다. 전장의 하얀 석회는 1952년에 개축하면서 다시 바른 것이고 원래 천장의 모습은 현관에서 본 것처럼 돌로 박아 넣은 형태였습니다.
공동 식당은 수도원의 성당이나 다른 장소들처럼 거룩함의 연장 선상에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수도자들에게 두 가지 기능을 주고 있는데 하나는 육적인 회복을 이루는 것과 다른 하나는 영적인 회복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은 침묵 중에 입으로 음식을 먹고 귀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때문이며, 식사를 하는 수도자 앞에는 아무도 앉지를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내 앞에 앉으실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시기 때문입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묵시록 3,20)
계단 위쪽에 있는 성당 정면을 보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이 3이라는 숫자입니다. 성당 현관으로 들어가는 입구도 세 개, 성당 위쪽에 보이는 창문도 세 개씩 있고, 삼층으로 보이는 정면의 모습과 삼각형의 지붕 모습까지 조각은 하나도 없지만 삼위일체 이신 하느님을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습니다.
시토회 수도자들에게 성당은 하느님 자신입니다. 그래서 일반 신자들이 들어가는 중앙문이나 사각 회랑에서 수도자들만 들어가는 문 위에는 예수님을 상징하는 포도나무 부조가 절대적인 균형을 유지하며 조각돼 있습니다. 중앙문에는 크기와 모양이 다른 십자가 형태의 포도 나뭇가지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포도나무로써 하나이신 하느님이시지만 크기와 모양을 다르게 표현하여 세분이신 하느님 즉,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주위에 있는 가지들은 우리 자신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열매가 없는 가지와 잎사귀만 볼 수 있습니다. 열매는 포도나무이신 하느님과 함께 할 때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포도나무를 보고 있는 우리 모두를 하느님 집으로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초대는 현재형입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요한복음 15장 4절-5절
성당 건축은 1203년 5월 6일 인노첸시오 3세 교황에 의한 초석을 축복하면서 시작되었고, 1217년 9월 15일 오노리오 3세 교황에 의해 축성되었습니다. 이 성당은 베르나르도의 전형적인 수도원 건축을 기초로 하여 시토회 영성인 단순함과 절제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웅장하지만 화려함은 없고 단순하면서도 꾸밈은 없습니다.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절대적인 균형을 유지하고 있고 공간을 분할하는 선들은 마치 수학 공식을 보는 듯합니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바뀌거나 첨가되는 부분들이 생기게 됩니다. 성당 내부에는 유일하게 두 개의 상이 놓여 있는데 하나는 아기 예수님을 앉고 계시는 성모상과 반대편에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성인 상이 측면 복도 중앙에 있습니다. 고딕 양식의 성당임에도 불구하고 원래 성당 창문들은 색이 없는 일반 유리를 사용하는 것이 시토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색인 스테인글라스로 바꾸지는 않았지만 성당의 창문은 알라바스트로 대리석 판을 붙여 여러 가지 색의 빛이 과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성당 내부를 밝히게 하였습니다. 너무 밝은 빛이 들어오면 그것도 하느님께 마음을 집중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시토 수도원 성당과 어울리지 않는 다양한 색이 들어간 대리석으로 만든 중앙 제대와 제대를 덮고 있는 치보리오 (ciborio)(1)는 1711년 클레멘스 11세 교황이 기증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제대 뒤의 호두나무로 만들어진 수도자의 기도석은 1700년대에 있었던 것을 대체하여 1953년도에 다시 만들었습니다.
시토회 성당 건물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성당과 종탑을 분리해서 만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종탑 또한 수도원 건축에 과함이었고 높이 솟은 그 모습은 오만함의 상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종탑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는데, 마을에서 벗어난 척박한 땅을 선택한 시토회 수도자들에게는 당연히 필요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각 정원 안에 서로의 통신 수단이었던 조그만 종으로도 충분했을 것입니다. 여하튼 이 성당도 시토회 건축 규칙에 따라 라틴 십자가 형태를 갖고 있는 성당의 교차점 지붕 위에 종탑을 세웠지만, 1683년 번개에 의해 부서져 지금 새로 만든 것은 성당 중앙 부분으로 좀 더 나와있게 만들었습니다.
시토회의 모든 건물은 사랑이신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는 '하느님 사랑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네 단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단계 : 나를 위해 나를 사랑한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적인 자기 사랑입니다.
둘째 단계 : 나를 위해 하느님을 사랑한다. 이것은 하느님께 은총이나 축복을 받기 위한 사랑입니다.
셋째 단계 :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한다. 이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깨닫고 피조물로써 인간의 겸손한 사랑입니다.
넷째 단계 : 하느님을 위해서만 나를 사랑한다. 이것은 영성의 최고 단계의 지복至福 (visio beatifica)으로써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둘러싸여 있는 나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관상을 넘어 탈혼의 상태에서 하느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시는 신비적인 사랑입니다. 이런 완전한 사랑에 휩싸이기 위해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치보리오 ciborio (1) :
라틴어 ciborium. 이탈리아 중세 성당에서 제대를 덮고 있는 구조물로 많이 볼 수 있다. 원래 용도는 축성된 제병을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말로는 성합 혹은 감실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