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 속의 망설임을 이해하게 된 나
남성적이고 터프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을 테스토스테론에서 따온 ‘테토남/녀’라고 부르고,
여성스럽고 섬세한 분위기를 가진 사람들은 에스트로겐에서 따온 ‘에겐남/녀’라고 부른다.
https://youtube.com/shorts/C7rJjn8DpT8?si=A1V2OqWbruUt6OZS
이런 식으로 사람을 호르몬, 기질로 구분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 이전에도 우리는 MBTI라는 성격 유형 검사로 서로를 구분하며 열광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에게 가장 주목을 받은 개념은 T와 F이다.
T는 이성적인 유형, F는 감성적인 유형이다.
이에 관한 유행어로는
“너 T발 씨야?” (T와 씨의 글자 배열을 바꿔서, 지나치게 이성적인 T를 디스 하는 말)
“T라미숙해” (감성이 부족한 T를 ‘티라미수 케이크’처럼 발음한 말장난) 등이 있다.
https://youtube.com/shorts/3QwfbkX_LTM?si=wro-9-N6CLadUP4M
나누고 규정하고 …
이분법적인 것, 확실한 것,
소속이 있는 것을
한국은 참 좋아하는 듯하다.
나는 예전엔 INTP였다.
그리고 지금은 INFP이다.
T에서 F로 바뀌었으니 감성형이 된 셈인데,
사실 나도 예전에는 “T라미숙해”라는 말을 들을 만한 사람이었다.
INTP 유형은 ‘따뜻한 로봇’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람 간의 공감을 머리로 배워서 출력하는 유형이다.
그래서 미처 배우지 않은 부분에서는 고장 난 로봇처럼 뚝딱거리거나 무심해 보일 때가 있다.
스무 살 무렵, 좋아하던 오빠와 썸을 탈 때,
나는 카톡 답장에 아무렇지 않게 ‘ㅇㅇ’이라고 쓴 적이 있다.
지금 돌아보면 상대가 당황했을 법도 하다. 사실 그
당시엔 습관처럼 효율적으로 답장한 거라 상대 입장도 헤아리지 못했다. (나중에 상대가 말해줬을 때 ‘내가 그랬구나‘ 하고 인식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MBTI가 몇 번 바뀌었다. (I 성향만은 언제나 그대로였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F와 T 성향이 반반 정도가 되더니, 경쟁하듯 50% 선을 서로 넘나들었다.
그렇게 나는 INFP가 되었다.
내가 왜 T에서 F가 되었는지 생각해 보면,
아마 여러 경험 가운데서 상처도 받고,
흔들려봤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아픈 입장이 되어보면, 아픈 이를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공감력을 조금씩 키울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이성과 감성의 중간쯤에서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 F가 조금 더 우세하지만, 여전히 T도 내 안에 살아 있다.
예전엔 나조차 내 마음을 잘 몰랐지만,
이제는 누군가의 ‘ㅇㅇ’ 속에 숨은 망설임도
조심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결국 중요한 건,
누군가를 T인지 F인지,
테토인지 에겐인지로 규정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경험을 지나왔고,
지금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차분히 바라보려는 태도 아닐까.
사람은 하나의 말이나 프레임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존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