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나도 놓치면서 살고 싶다

산책을 하며 쓰는 글

by 산뜻

안경을 쓰면 내 얼굴의 실루엣을 일정 부분 가릴 수 있다.


안경의 모양에 따라 이미지를 새로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지적인 이미지를 위해서, 혹은 생얼을 가릴 용도로 쓰고는 한다.

렌즈를 끼면 눈동자의 색상과 크기 등을 바꿀 수 있다.

그래서 본인의 인상과 다른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내 방식은 맨눈으로 지긋이, 똑바로 보는 것

고요한 물 같은 마음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부산물처럼 무언가가 수면에 떠오르고는 한다.

그것이 가끔은 불쾌한 등장일 때도 있고,

마음에 자국을 남기는 깨달음일 때도 있다.

다 좋으니까,

가끔은 나도 놓치면서 살고 싶다.

아니, 사실은 많이 놓치고 산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때도 포터 필터에 원두를 갈아 넣고, 템핑을 하고, 에스프레소 머신에 바스켓을 결합하는 과정 중에 일정 부분의 원두 손실은 불가피하다.

우리 인생에서도 그런 손실이 있어서

그런 놓침이 있어서

숨통을 트고 살 수 있는 거 아닐까.

사람이 잘못한 것을 내내 마음에 품고 살지 않고

말의 모순이 있어도 짚지 않고 넘어갈 줄 알고

조금 부족한 외모일지라도 그런 나를 받아들이고

조금 덜 배부른 식사였음에도 만족해하고

덜렁대고 꼼꼼하지 않다고 야단맞을지라도

나 자신한테는 조용한 관용을 베풀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마음이 심란하고 우울한 날

잠시 틈을 내어서

나는 무작정 걷는다.

양쪽 귀에 무선 이어폰을 끼고

내가 좋아하는 캐주얼 스트리트 웨어를 입고

오늘의 마음을 잠시 놓기 위해 걷는다.


그런데 오히려 마음을 놓으려 하니

놓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떠올라

핸드폰 메모장을 켜고 이렇게 글을 적어 내려가고 있다.

다행이다. 마음이 조금 편안하고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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