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한양’ 17

광나루(廣津), 한양으로 가는 길

by 박동욱

광나루(廣津), 한양으로 가는 길


광나루(廣津)은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에 있었던 나루터로 양진(楊津)·광장(廣壯)·광진(廣津)·광진도(廣津渡) 등의 명칭으로도 불리었다. 한강의 중하류에 위치한 광나루는 교통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광나루는 삼밭나루(三田渡)·동작나루(銅雀津)·노들나루(露梁津)·양화나루(楊花津)와 함께 한강의 5대 나루 중 하나다.

광나루는 한강 상류에서 한양으로 들어오는 입구이자 도성을 나와 경기도 광주로 가는 길목의 나루터였다. ‘광나루’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강폭이 넓은 나루였으며, 경강의 상류이자 동쪽에 위치해 있어 한양과 내륙 지방을 왕래하는 요지였다. 이곳은 병자호란 이후 왕래하는 사람이 더욱 많아져 점차 경강의 주요 나루로 규모가 커졌다. 광나루는 광진교 개통과 함께 일찍이 나루의 기능을 다 하였다.


광나루 뱃길 지도.jpg




배 안에서 새벽에 일어나 앉아

푸른 등 말도 없이 마주하자니

닭과 개 소리에 마을 가까움 알고

강물 맑아 은하수는 저리 비치네.

몸에 지닌 건 오직 늙음과 병 뿐

손가락에 꼽을 친구 겨우 몇몇 뿐

세상 일이 또 나를 부추기나니

어느새 동쪽에서 붉은 해 뜨네.

舟中晨起坐 相對是靑燈

鷄犬知村近 星河驗水澄

隨身唯老病 屈指小親朋

世事又撩我 東方紅日昇

홍귀달(洪貴達), 「광나루 배 안에서 새벽에 일어나서(廣津舟中曉起)」


광나루는 상경하려면 만나게 되는 한양의 초입이다. 무슨 까닭으로 상경하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상경 길에 오르는 마음은 여간 복잡하지 않았다. 밤배로 가다가 새벽녘에 잠이 깨서 배에 걸린 푸른 등을 말없이 한참을 바라보았다. 들리는 것은 인근 마을의 개와 닭소리였고 보이는 것은 맑은 강물에 비치는 은하수였다. 찬찬히 생각해보니 몸은 늙고 병들었으며, 주변에 남아 있는 친구도 몇이 되지 않았다. 이제 늙음과 병을 넘어서 죽음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세상은 나보고 자꾸 참여하라고 부추기는 것만 같다. 이때 마침 하늘에서는 해가 솟아오른다. 그래 다시 살아보자! 광나루는 그런 곳이었다. 상경하는 이나 귀향하는 이나 복잡한 생각에 시달려야만 했다.


광나루 옛 모습.jpg


정갈하고 시원한 무나물에다

잘 익혀 끓여 낸 토란국이라

그럼에도 먹을 게 없다 말하는

주인의 마음에 깊이 감사드리네.

淨洗蘿葍菜 爛煮土蓮羹

猶言無饌物 深感主人情

윤선도(尹善道),「저녁에 광진 마을에 투숙하여 우연히 읊다 경술년(1610)(暮投廣津村偶吟 庚戌)」


광나루에서 배에 몸을 싣기도 하고 내리기도 했다가 하룻밤 묵기도 했다. 주인은 무나물에다 토란국까지 정성스레 차려 놓고도 손님이 드실 찬이 없다고 부끄럽게 말하니 그 마음씨가 하도 고와서 고맙기만 했다. 하룻밤 나루터에 묵는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진 한편의 소품이다.


광나루터.jpeg


강과 뭍에 이리저리 길이 나 있고

강가 버들 도성 문에 이어졌다네.

말과 소는 배가 작아 서로 다투고

어룡은 시끄런 물 싫어하겠지.

넓은 들판 이르러 후련하였고

다 이름난 정원이라 눈 동그래졌지.

자각봉(남산)이 변함없이 보이니

도성 소리 들리는 듯 느껴지누나.

縱橫川陸道 岸柳接都門

牛馬爭船小 魚龍厭水煩

曠心方大野 駭矚盡名園

紫閣依然見 如聞市陌喧

정약용(丁若鏞),「광나루에 이르러(次廣津)」


이 시는 정약용이 1783년 22세 때 배를 타고 두모포에서 소내로 향하던 도중 광나루에 이르러 쓴 것이다. 이해 4월에 증광감시에 합격한 후의 벅찬 감격이 아직도 시 곳곳에 남아 있다. 2구에서 도성 문, 7,8구에서 자각봉과 도성은 그의 마음이 아직 한양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배 안은 좁고 시끄럽지만 배 밖에 펼쳐진 풍경은 들판과 정원들이 펼쳐져 있다. 마치 지금의 처지는 보잘 것 없지만 앞으로 맞을 세상은 장밋빛으로 전개될 것이라 말해주는 듯하다. 그러나 그가 꿈꾸었던 삶과 그에게 현실로 다가온 삶과는 크게 달랐다. 그는 여러 번 과거 시험에 고배를 맞본 끝에 1789년 28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광진 겸재 정선.jpeg 정선, 광진


삼 년 만에 속세 일에서 옷을 털고 나오니

온 강에 가을 물결 비 끝에 불어났네.

갈매기는 당연히 내 인생 비웃겠지

이러한 경치에도 취해서 돌아가지 않으니

三載紅塵一拂衣 滿江秋浪雨餘肥

白鷗應笑吾生事 如此風光不醉歸

이수광(李睟光),「우연히 광나루에 나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읊다(偶出廣津口占)」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을 정리할 때 배를 띄워 광나루에 나오곤 했다. 언제 지은 시인지 특정하기 어렵다. 다만 삼년 동안을 관직에 있다 그만둔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가을 강은 비가 내려서 물이 많이 불어 있었다. 그동안 불어난 것은 강물만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은 아니었을까 자문해 본다. 이 아름다운 풍경에도 취해서 흐느적거리고 싶지 않다. 멀쩡한 정신으로 삶을 다시 한 번 응시하며 다른 길로 나가려 다짐해 본다.


광진교.jpg


임하상(任夏常)의 「석양주기(夕陽舟記)」에서 해질녘 배를 타고 즐기는 일은 “광나루를 넘어 올라가지 않고, 저자도 아래를 내려가지 않는다(上不過廣津 下不過楮島)”라고 나온다. 광나루는 평상시 뱃길로 올라가는 가장 상한선이었던 셈이다. 이곳은 한양을 떠나가거나 들어오는 길목에 있다. 그래서 떠나는 아쉬움과 찾아오는 설렘이 교차했다. 아니 그도 아니면 그저 배를 띄워 광나루까지 가며 복잡한 생각을 아름다운 경치에 기대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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