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주어가 되지 못하는 삶, 어조사로 살다[而已矣], 변종운(卞鍾運)
22. 주어가 되지 못하는 삶, 어조사로 살다[而已矣], 변종운(卞鍾運)
我有數卷書 나에게 몇 권 책이 있지만
恨不同學鄒魯諸君子 공맹(孔孟)의 군자들과 함께 못 배워 한스럽고
我有一壺酒 나에게 한 병 술이 있지만
恨不同飮燕趙悲歌士 연(燕), 조(趙)의 슬픈 노래 부르는 선비들과 함께 마시지 못함이 한스럽네.
一未能遂平生志 한 번도 평생의 뜻 이루지 못했는데
白髮數莖而已矣 센 머리만 몇 가닥이 자랐을 뿐이구나.
忽然一陣芭焦葉上雨 갑자기 한바탕 파초 잎에 비 내리니
胡爲乎滿庭樹木聲起 어찌하여 온 뜰의 나무에서 소리 나는가?
[평설]
수중에 있는 몇 권의 책을 읽었지만, 공맹에 두루 통달하지 못했다. 늘 취해서 살았지만, 연조(燕趙)의 강개로운 지사들의 슬픈 노래에는 미치지 못했다. 끼적끼적 책을 읽었고 홀짝홀짝 술을 마셨을 뿐이다. 이쯤 되는 한스러움만 가슴에 가득 찼다. 어릴 적에는 세상을 주름잡겠다는 포부도 남 못지않았다. 그런데 어느덧 나이만 먹고 남은 것이라곤 흰 머리가 전부다. 자신은 파초처럼 보잘것없지만, 비가 내리면 어떤 나무들보다 더 큰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 두 구는 “난 아직 죽지 않았다!”라고 슬프게 외치는 것 같다. 그러나 중인으로 태어나 제 재주를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서, 한 번도 주어가 되지 못한 채 그저 어조사밖에 되지 않는 삶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