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365일, 한시 365수 (116)

116. 아내가 만들던 모시옷[白紵行], 채제공

by 박동욱

116. 아내가 만들던 모시옷[白紵行], 채제공

皎皎白紵白如雪 너무나도 하얀 모시 흰 눈처럼 깨끗하니

云是家人在時物 집사람이 죽기 전에 짓던 옷이라네

家人辛勤爲郞厝 집사람 고생스레 남편 위해 마련해서

要襋未了人先歿 옷을 짓다 못 끝내고 사람 먼저 세상 떴네.

舊篋重開老姆泣 늙은 침모 묵은 상자 열어 보고 울먹이며

誰其代斲婢手拙 솜씨 없어 아씨 대신 지을 수 없다 하네

全幅已經刀尺裁 온폭을 이미 잘라 마름질은 끝마쳤고

數行尙留針線跡 두어 줄 시친 자국 아직도 남아 있네

朝來試拂空房裏 아침에 시험 삼아 빈방에서 펼쳐 보니

怳疑更見君顔色 어렴풋이 당신 얼굴 다시금 본 것 같네.

憶昔君在窓前縫 지난날 창가에서 바느질을 하던 때에

安知不見今朝着 오늘 옷 입은 모습 못 본 줄 알았겠소.

物微猶爲吾所惜 물건은 하찮아도 나에게는 소중하니

此後那從君手得 당신 손길 닿은 옷을 다시 입기 어려우리

誰能傳語黃泉下 황천의 당신에게 누가 내 말 전해 줄까

爲說穩稱郞身無罅隙 모시옷이 낭군 몸에 아주 잘 맞는다고


[평설]

아내는 정월에 세상을 떴다. 죽기 전에 아픈 몸을 이끌고 남편의 여름철 더위를 식혀줄 모시옷을 짓고 있었다. 아내는 그런 사람이었다. 늙은 침모는 미완성으로 남겨진 모시옷을 상자 속에서 꺼내 보여주며 “제 솜씨가 부족해 마저 만들지 못했습니다”라고 울먹이며 차마 말을 잇지 못하였다. 완성하지 못한 모시옷은 아내와 자신의 미완으로 남은 사랑과도 같이 느껴졌다. 함께 했던 것보다 함께 하고픈 것이 많았던 둘의 사랑은 아쉬운 기억만 남긴 채 멈추었다. 모시옷을 펼쳐 놓고 보니 아내의 얼굴을 다시 마주한 것만 같다. 아내가 모시옷을 지을 때는 이 옷을 입은 남편의 모습을 수없이 상상했을 것이다. 누가 저승에 있는 아내에게 전해줄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말하고 싶다. “내 몸에 딱 맞춘 것 같구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일년 365일, 한시 365수 (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