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365일, 한시 365수 (125)

125. 가난 때문에 배운 것[澹泊], 허필(許佖, 1709~1768)

by 박동욱

125. 가난 때문에 배운 것[澹泊], 허필(許佖, 1709~1768)

澹泊貧家事 가난한 집 담백함 일삼았으니

無燈待月明 등불 없어 달 밝길 기다리누나.

折花難割愛 꽃 꺾자니 사랑스런 것 베기 어렵고,

芟草忍傷生 풀 베자니 차마 생명 빼앗으랴.

白髮應吾有 흰 머리 응당 내가 차지했으니,

靑山復孰爭 푸른 산은 다시 뉘와 다툴 것인가.

狂歌當歲暮 미친 노래 부르다가 한 해 저무니

秋氣劍崢嶸 가을 기운 검처럼 서슬 퍼렇다.


[평설]

자신의 가난을 담백함이라 말했다. 등불조차 켤 수 없다는 고백에서 지독한 가난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는 지독한 가난을 담백한 생활을 통해 극복하려 한다.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살아 있는 것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가난하지 않았다면 보지 못하고서 스쳐 갈 풍경이었다. 남들은 청춘에 목을 매고 한양 땅을 기웃거려서 흰머리나 푸른 산을 외면한다. 이들이 모른 척한 흰머리나 푸른 산은 자연스레 자신의 차지가 되고 만다. 그러니 미친 노래[狂歌]나 부르면서 세월을 보낸다. 가난이 불편할 수는 있었지만 부끄러워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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