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 성묘객이 다 돌아간 뒤[秋夕登城樓], 정우량(鄭羽良)
284. 성묘객이 다 돌아간 뒤[秋夕登城樓], 정우량(鄭羽良, 1692∼1754)
황량한 한가위에 성 둘러 돌아가니
집마다 떡 빚어서 산소에 올리었네.
해 저물자 산은 비어 사람 다 돌아가고
백양나무 소리만이 쓸쓸히 들려오네.
荒凉秋夕繞城行 餻餠家家享祖塋
日暮山空人去盡 蕭蕭但有白楊聲
[평설]
추석날 성루에 올라 바라본 풍경이다. 명절은 사람들이 일시에 모였다가 금세 헤어진다. 그래서 명절에는 흥성거림과 쓸쓸함이 함께 공존한다. 시인은 추석에 느낄 수 있는 쓸쓸함에 집중했다.
집마다 떡을 빚어서 산소에 올린다. 그러다가 해가 저물면 그 많던 성묘객들이 썰물 빠지는 듯 사라진다. 온 산은 텅 빈 것 같아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백양은 무덤에 심는 나무로 무덤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바로 그 백양나무를 스친 바람 소리가 들려와 분위기를 한층 더 쓸쓸하게 만든다. 이처럼 시인은 삶의 그늘을 응시하여 포착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