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7. 봄날의 두 모습[春寒卽事], 황준량(黃俊良, 1517~1563)
한기는 봄 가두고 눈은 숲 에워싸니
온 산에 화초들은 꽃망울 닫았다네.
봄기운은 냇가 버들에 먼저 옴 알겠으니
바람맞은 가지 희롱해서 연한 금빛 띠려 하네.
寒鎖春天雪擁林 滿山花卉閉芳心
方知陽氣先溪柳 已弄風條欲嫩金
[평설]
이 시는 꽃샘추위의 풍경을 포착했다. 한기는 가득하고 눈은 아직 남아 있다. 온 산에 있는 꽃들은 약속이나 한 듯 꽃망울을 닫아 버렸다. 아직 봄이 오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냇가에 있는 버들은 황금빛으로 물든다. 꽃들을 보면 봄이 아직 안 왔지만, 버들가지를 보면 봄은 분명 성큼 다가와 있다. 봄이라 해도 꽃을 보면 절망이 읽히지만 버들가지를 보면 희망이 읽힌다.
같은 계절인 봄에도 꽃과 버들가지는 이렇게 제각기 반응한다. 이처럼 꽃샘추위 속에서 누군가는 봄을, 다른 누군가는 겨울을 느낀다. 영화 '화양연화'의 한 관객이 남긴 말이 이 시와 묘하게 겹친다. "봄을 기다리던 겨울 같은 시절이 알고 보니 봄이었네." 그렇다. 봄은 그렇게 겨울처럼 조용히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