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365일, 한시 365수 (396)

by 박동욱

396. 노인의 봄날[對花有吟], 서거정

온갖 꽃 피는 시절 다시금 풍류 겨워

온갖 꽃 마주하니 웃음이 터져 나와,

꽃가지 꺾어서는 흰머리에 꽂았지만

꽃이야 노인 머리에 오름을 부끄러워하리

百花時節更風流 坐對百花笑不休

爲折花枝簪白髮 花應羞上老人頭


[평설]

이 시는 노년의 마음을 읊은 작품이다. 모든 꽃이 뽐내는 봄은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래서 이 꽃 저 꽃을 쳐다보니 꽃이 하냥 좋아 웃음이 연신 나온다. 꽃이 만개한 봄날의 순수한 기쁨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래서 봄을 간직하고픈 마음에 꽃가지를 꺾어서 머리에 꽂아 본다. 꽃을 머리에 꽂는 행위는 한시에 흔히 등장한다. 봄 처녀에서 나무꾼에 이르기까지 봄 산에 오르면 꽃을 꽂는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노인의 흰머리와 대비되면서 청춘에 대한 그리움이자 노년에 대해 극명한 자각을 하게 된다.

소식(蘇軾)의 「길상사상모란(吉祥寺賞牡丹)」 시에 “사람은 늙어서도 꽃 꽂길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꽃은 응당 노인 머리에 오름을 부끄러워하리.[人老簪花不自羞 花應羞上老人頭]”라고 하였다. 꽃의 마음으로 자신의 노년을 보았다. 마음은 봄이지만 몸은 겨울에 접어들었다. 그러니 봄이 한창 물오른 꽃에게 까닭 없이 미안해진다. 그 미안함을 흰머리에 꽃이 꽂히는 것을 내켜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표현했다.

봄은 그저 아름답지만, 노인에게는 까닭 없이 미안한 계절이다. 그럼에도 염치 불고하고 머리에 꽃을 꽂아 봄을 잠시 머물러두며 청춘을 회억(回憶)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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