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365일, 한시 365수 (400)

by 박동욱

400. 가을 소리 아닌 것이 없다[落葉], 서거정

나뭇잎에 바람 불어 어지러이 떨어져서

섬돌 치고 창 때리니 정 배어 있는 듯해

가을 소리 깃들 곳이 없다고 말을 마소

밤 깊으면 모든 사물 가을 소리 될 것이니

風吹木葉亂飄零 撲砌敲窓似有情

莫說秋聲無處著 夜深無物不秋聲


[평설]

가을 바람에 나뭇잎이 어지럽게 떨어진다. 낙엽은 섬돌을 치고 창을 때리는데 그 소리마다 깊은 정감이 서려 있다. 3~4구는 송(宋)나라 진여의(陳與義)의「가을밤[秋夜]」에 “가을바람 불어 잎새 다 떨구지 마오. 잎 없으면 가을 소리 깃들 곳 없으리[莫見西風吹葉盡 却愁無處著秋聲]”를 변용한 것이다.

진여의가 나뭇잎이 다 떨어져 가을 소리를 잃을까 걱정했다면, 서거정은 밤이 깊어지면 모든 사물이 가을 소리가 된다고 노래한다. 서거정은 진여의의 감성을 훌쩍 뛰어넘는다. 밤이 깊어지면 가을 소리를 안내는 사물은 없으니 그 모든 것이 가을이기 때문이다. 낙엽 하나로 가을을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물에서 가을을 읽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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