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명시(絶命詩)-
청하같던 기이한 뜻 영원히 사라지리
宿願平生在玩心 평생의 오랜 희망 마음 씀에 있어서는,
高明峰下細硏尋 고명봉 아래에서 자세히 연구했네.
風埃老死東郊外 풍진 속에 동쪽 교외 밖서 늙어 죽으니,
奇意靑霞永鬱沉 청하같던 기이한 뜻 영원히 사라지리.
[高明峯在百淵 고명봉은 백연에 있다.]
김창흡(金昌翕), <絶筆 壬寅>
[평설]
이 시는 김창흡이 1722년에 지었으니, 그의 나이 70살이었다. 2월 19일에 이 시를 쓰고 21일에 세상을 떠났다. 평생에 숙원으로 삼았던 일은 마음 씀[玩心]을 공부하는 일이었다. 설악산 고명봉(高明峰) 아래에서 늘 이 문제를 연구했었다. 고명봉은 설악산의 백연(百淵) 곧 백담(百潭) 주변에 있는 봉우리이다. 김창흡은 일찍이 이곳에 집을 짓고 왕래하였는데, 1705년에 은거를 결심하고 벽운정사(碧雲精舍)를 지었다가 1708년 정사가 소실되자 조원봉(朝元峯) 아래로 옮겨 영시암(永矢菴)과 완심루(玩心樓)를 짓고 살았다.
청하같던 기이한 뜻은 남조 시대 제(齊)나라 시인 강엄(江淹)의 「한부(恨賦)」에 “푸른 노을의 기이한 뜻이 무성했으나 긴 밤의 어두움으로 들어갔네.[鬱青霞之奇意, 入脩夜之不暘.]”라고 한 말을 원용한 것이다. 이선(李善)은 “푸른 노을의 기이한 뜻은 의지가 높은 것이다.[青霞奇意, 志意高也.]”라고 풀이하였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삶을 마감하게 되어 높은 의지는 그렇게 영원히 사라져 간다. 죽음으로 인해 그렇게 모든 것이 아무 것이 아니게 된다. 세상을 떠나는 아쉬움과 미련을 내비쳤다. 삼연어록에는 그의 마지막 장면이 다음과 같이 그려져 있다.
선생이 처음에 머리를 서쪽에 두고 누웠다가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머리를 남쪽에 두고 자리를 바르게 펴 달라고 하셨다. 매번 말씀이 끝날 때마다 수염을 모으고 옷깃을 가다듬고 두 대(肚帶)을 묶고 공수하셨는데 이 순간에도 그렇게 하셨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귀에 들리는 것이 없는데도 정신이 또렷하기는 한곁 같으셨다.[先生始西首而卧, 臨逝命南首正席. 每語畢, 輒斂鬢整衿, 結肚帶, 乃拱手, 至是亦然. 目無所視, 口不能言, 而精神之昭昭一如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