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명시(絶命詩)-
평생동안 시로 장난치다가
平生喜作徘諧句 평생에 우스개 시구 짓기를 좋아해서
惹起人間萬口喧 사람들 온갖 입에 숙덕거림 일으켰지.
從此括囊聊卒歲 이제부턴 입을 닫고 세상을 마치리라
向來宣聖欲無言 예전에 선성 또한 말 없고자 하셨나니
권필(權韠), <절필(絶筆). 선생이 하루는 평소에 지은 원고를 꺼내어 작은 보자기로 싸서 조카 심모(沈某, 심기원(沈器遠))에게 맡기고는 그 보자기 뒷면에 절구 한 수를 썼다. 그리고 사흘 뒤에 체포되어 금옥(禁獄)에 갇혔고 그길로 마침내 운명했다.[絶筆. 先生一日, 出所著詩稿, 裏以小袱, 付甥沈某, 仍書此一絶於袱背. 後三日, 被追諸理, 遂卒]>
[평설]
권필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줄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자신의 시고(詩稿)를 보자기에 싸고는 조카에게 맡기고 보자기 뒷면에다 시 한 편을 적어 두었다. 이 시가 결국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말았다. 권필은 외척의 전횡을 풍자한 궁류시(宮柳詩)를 지어 비방하다 필화(筆禍)를 입었다. 곤장을 맞고 귀양길에 올랐다가 동대문 밖 여관에서 사람들이 주는 막걸리를 마시고 장독이 올라 이튿날 죽었다. 4월 1일에 끌려가 형벌을 받았고, 3일에 유배가 결정되었다. 4일에 유뱃길에 나섰다가 4월 7일에 세상을 떴다.
평생토록 장난기 어리게 썼던 시 탓에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이제부터 공자님이 그랬던 것처럼 입을 닫고 말하지 않을 것을 다짐해본다. 그는 갑작스런 사건 탓에 서둘러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불의에 굴하지 않은 그의 정신은 작품 속에 온전히 남아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베개 밑에는 『근사록』과 『朱子書節要』만이 놓여 있었다. 그가 시 때문에 당한 화를 마지막 순간에 후회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석]
선성(宣聖) 또한∼하셨나니 : 선성은 공자(孔子)의 이칭이다.『논어』「양화(陽貨)」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말을 하지 않으련다.[予欲無言]’ 자공(子貢)이 아뢰었다. ‘선생님께서 만일 말씀하지 않으시면 저희들이 어떻게 도(道)를 전해 받겠습니까.[子如不言 則小子何述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이 무슨 말씀을 하시던가. 사시가 운행되고 온갖 만물이 생장하나니, 하늘이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라고 하였다.
[작가]
권필(權韠, 1569~1612):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여장(汝章), 호는 석주(石洲). 권벽(權擘)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시명이 높았다. 이정구(李廷龜)의 천거로 백의로 종사관에 임명되었다. 시정(時政)을 풍자하는 시를 많이 지어 권귀(權貴)의 미움을 받았다. 광해군의 어지러운 정치를 풍자하는 궁류시(宮柳詩)를 지었다가 그 때 일어난 무옥(誣獄)에 연좌되어 광해군의 친국을 받고 귀양 가는 도중에 죽었다. 허균은 그의 시의 아름다움과 여운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