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오빠’를 부르지 않은 년

ㅡ 못난 년

by 사피엔




그 옛날, 제과점 한쪽 테이블에서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오빠”를 불렀다.


선배는 잘생겼고, 친근했고,

웃음은 테이블 위에서 부서지듯 흩어졌다.


그녀는 그 말을 입 안에만 굴렸다.

오빠.

목구멍까지 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삼킨 건 말이었는데

괜히 침이 많아졌다.


그날 그녀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얼굴은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흔들렸던 손끝,

부르지 않은 한 음절은

오늘도 그녀에게 남아 있다.


쥐구멍에도 볕은 든다.

세상이 선해서는 아니다.


완전히 봉쇄되기엔

이 세계의 구조는 늘 조금 엉성하다.


볕은 그 틈으로 들어온다.

새벽과 낮의 경계,

누군가의 그림자가 완전히 덮치기 전,

딱 그만큼의 시간.


여자는 그 볕을 오래 붙들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것을

운이 없다고 불렀고,

성격 문제라고도 했다.


그녀는 부르지 않은 호칭을 잃었고,

호칭 없이 견뎌야 하는 시간을 얻었다.


여자의 17번째 직장.


그날도 회식 자리는 흥겨웠다.

술잔이 부딪히고,

이름이 불리고,

웃음이 겹쳤다.


누군가는 벌써 얼굴이 붉었고,

누군가는 자기 얘기를 두 번씩 하고 있었다.


여자는 술을 혼자 따라 마셨다.

누가 잔을 채워주기 전에,

누군가 말을 걸기 전에.


고개는 끄덕였지만

맞장구는 치지 않았다.


웃어야 할 타이밍에서

한 박자 늦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 정도면

충분히 협조적인 태도였다.


상사가 잔을 들었다.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아, 그리고 말이야.”

그는 옆자리에 앉은 부하를 두드렸다.


“OO가 요즘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지?”


웃음이 돌았다.


“이렇게 고생하는 사람도 있는데,

여러분이 좀 협조해 줘야지.”


사람들은 잔을 들었다.

누군가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박수를 쳤다.


그때

여자가 말했다.


“돈 버는 일이 쉬운 게 어디 있어요.

다들 고생하는 건 마찬가지죠.”


말은

짧았고,

정확했고,

담백했다.


그리고 그 순간,

술잔이 공중에서 멈췄다.


웃음도 멈췄고,

박수도 멈췄다.


누군가는 삼키려던 술을 늦췄고,

누군가는 여자를,

누군가는 상사를 바라봤다.


공기는 정지했고,

시간은

그녀의 말 한 줄을 중심으로

흔들렸다.


상사는 잠깐 말을 잃었다.


그는 몇 해 전,

나이트클럽에서

그녀가 부킹했던 남자였다.


지금은 직장 상사였다.


그를 무시한 건 아니었다.


“자, 한잔 합시다!”


반대편 테이블에서

술잔이 다시 돌았다.


여자는

술잔을 테이블 모서리와

직각으로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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